The Guardian Angel-PIETRO DA CORTONA
1656.Oil on canvas, 225 x 143 cm.Galleria Nazionale d’Arte Antica, Rome
축일:10월 2일
수호 천사 기념일
Feast of Guardian Angels
Santi Angeli Custodi
수호천사 守護天使 custos angelus. guardian angel
하느님의 명에 따라 사람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은 천사.
하느님의 섭리는 피조물을 통하여 다른 피조물을 다스리는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부모를 통하여 자식을 기르고 스승을 통하여 학생을 교육시키는 경우가 그 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은 각 사람들에게 날 때부터 수호천사 하나씩 정하여 주어 사람을 보호하게 하였다(마태 18:10).
또한 국가나 교회 같은 단체에도 수호천사를 준 것 같다(다니 10:21-12:1, 출애 23:20).
수호천사는 사람이 가는 길마다 지켜 주고(시편91:11) 사람의 시중을 들어 주며(히브 1:14)
기도를 하느님께 전달해 준다(토비 12:12).
그러므로 각 사람은 마치 성조 야고보가 마지막으로 자손들에게 강복할 때
"모든 어려움에 서 구해 준"(창세 48:16) 천사를 불렀듯이 수호천사의 도움을 구하며,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도록 마음속으로 권고하는 그의 말을 듣고자 노력해야 한다.
교회에서는 10월 2일에 수호천사를 기념하는 축일로 지내고 있다.
이는 일찍이 교황 글레 멘스 10세가 규정한 것이다.
이보다 앞서 1667년 교황 글레멘스 9세는 9월 첫 주일을 그 축일로 정한 적이 있고
13세기 스페인에서는 3월 1일에 그 축일을 지내기도 하였다.
(가톨릭 대사전에서)
9월29일에 지내는 대천사들의 축일에는 우리가 하느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천사들과 만나 어우르게 된다.
하느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것은 천사들의 핵심 소명이다.
오늘 입당송과 영성체송에서는 하느님을 계속해서 찬미하도록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은 모든 피조물과 교회의 가장 기본 사명이다.
그러나 오늘 지내는 수호 천사 기념일에는 천사들의 또 다른 역할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수호 천사들은 사람들을 곁에서 지켜 준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놀라운 섭리로 긴 여행길에서 선조들을 인도하거나 하느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에
그 백성을 지켜 주려고 파견되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려 준다.
그리고 오늘 화답송은 "주님께서 너를 두고 천사들을 명하시어, 너 가는 길마다 지키게 하셨도다."(시편 91,11) 하고 노래한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안전을 보장해 주는 천사들의 도움에 관하여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이들의 품위를 말씀하시면서 "하늘에 있는 그들의 천사들이 내 아버지를 항상 모시고 있다."(마태 18,10)고 선언하신다.
우리는 주님께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 달라고 간절히 기도한다.
수호 천사는 바로 이러한 기도에 응답하는 하느님의 힘이다.
우리는 천사들의 끊임없는 보호를 받아 현세의 모든 위험을 이겨 내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된다.
*Saints Michael, Gabriel, and Raphael Archangels:9월29일
The Guardian Angel with Sts Anthony of Padua and Gaetano Thiene
- PIAZZETTA, Giovanni Battista
c. 1729.Oil on canvas, 250 x 112 cm. San Vitale, Venice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의 강론에서
(Sermo 12 in psalmum Qui habitat, 3.6-8:Opera omnia, Edit. Cisterc. 4[1966],458-462)
천사들이 너 가는 길마다 지켜 주시기를
“주께서 너를 두고 천사들을 명하시어 너 가는 길마다 지키게 하시리라.”
인간 자녀들을 위한 그분의 놀라운 업적과 그분이 보여 주신 자비에 대해 모든 이가 주님께 감사 드리고 주님을 찬미하면서
“주께서 뭇 민족 가운데 큰일을 이루셨다.”고 말했으면 합니다.
주여, 인간이 무엇이길래 당신께서 그를 그토록 생각하시고 당신의 마음을 그에게 두시옵니까?
당신은 당신의 마음을 그에게 두시고 그를 염려해 주시며 그를 돌보아 주십니다.
더욱이 그에게 당신 외아드님을 보내시고 당신의 영을 부어 주시며 또한 당신의 얼굴을 보여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하늘에는 우리를 돌보는 이에 관심을 두지 않는 그런 존재가 하나도 없도록,
당신께선 그 복된 영들을 우리의 봉사자로 보내 주시어,
우리를 지키는 소임을 그들에게 맡기시고 우리의 수호자가 되라고 명하셨습니다.
“주께서 너를 두고 천사들을 명하시어 너 가는 길마다 지키게 하시리라.”
이 말씀은 사람에게 참으로 큰 공경심과 신심과 신뢰심을 불러일으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신은 그들의 현존에 대해 공경심을, 그들의 자애에 대해 신심을, 그들의 보살핌에 대해 신뢰심을 품어야 합니다.
그들은 현존하고, 당신의 동반자로서만이 아니고 수호자로소 당신 앞에 있습니다.
그들은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 당신을 도와주기 위해 현존합니다.
비록 그들에게 임무를 준 것은 주님이시지만,
그들이 그렇게 할 때 큰 사랑으로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뿐만 아니라 어려울 가운데 있는 우리를 돌보아 주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수호자들에 대해 신심을 가지고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에 대한 그들의 사랑에 보답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또 마땅히 해야 하는 만큼 그들에게 공경심을 바치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모든 사랑과 공경심은 주님께로 돌려져야 합니다.
우리도 천사들도 우리가 사랑하고 공경할 수 있는 자격과 사랑과 공경을 받을 자격의 밑바탕을 그분께 두고 있기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이여, 우리는 그분 안에서 천사들을 열렬히 사랑하도록 합시다.
그들은 장차 어느 날엔가 우리의 공동 상속자들이 될 것이며,
현재에는 아버지께서 우리를 담당하도록 세우신 수호자들이요 보호자들입니다.
아직 어린이로서 노예와 다를 바 없는 상태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우리는 이제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여하간 우리는 어린이들이고 또 우리 앞에 가로놓인 길은 매우 멀고 또 먼 것만이 아니고 위험하기까지 하지만,
이런 위대한 수호자들의 보호 하에 있는 동안 두려워할 것이 뭐 있겠습니까?
그들에겐 정복당하는 일도 속는 일도 있을 수 없으며,
더더구나 우리의 모든 길에서 우리를 지켜 주는 동안 우리를 속일 수 없습니다.
그들은 충실하고 슬기로우며 또 능합니다. 그렇다면 두려워 할 것이 있겠습니까?
다만 우리는 그들을 뒤따르고 그들에게 매달리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보호 밑에 머물도록 합시다.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축일:8월20일
◎ 주님께서 너를 두고 천사들을 명하시어, 너 가는 길마다 지키게 하셨도다.
1. 지존하신 임의 두둔 아래 사는 너, 전능하신 임의 그늘 아래 머무는 너는, 주님께 아뢰어라,
"하느님께서는 저의 요새, 저의 피난처, 저는 당신께 의탁하외다."하고. ◎
2. 주님께서 정녕 너를 사냥꾼의 올무에서, 모진 괴질에서 구하여 주시리라.
그 나래로 너를 휩싸 주시리니, 그 깃 아래로 너는 숨어 들리라.
그 진실하심은 손방패와 몸방패이시니이다. ◎
3. 너는 밤의 무서움도, 대낮에 날아오는 화살도,
어둠 속을 싸다니는 역질도, 한낮에 쳐 오는 재앙도 무섭지 않으리라. ◎
4. 불행이 너에게는 오지 못하고, 재앙도 네 막사에 얼씬하지 못하리라.
주님께서 너를 두고 천사들을 명하시어, 너 가는 길마다 지키게 하셨도다. ◎
수호 천사 축일을 맞이하여 우리는 하느님의 크신 자비심을 다시 한 번 간절히 느끼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그 자비심에서 거룩한 천사를 우리의 친구요, 안내자요, 보호자로서 우리에게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과 천사들에게 감사를 드리기 위해 10월 2일에 우리의 수호 천사를 기념한다.
하느님께서 사람을 수호하기 위해 천사들을 보내신 것은 이미 구약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
토비아가 그 여행 중 라파엘 천사에게 인도되었다는 것은 그 예이며,
또 그와 같은 이야기는 야고보, 유딧, 다니엘, 엘리야 및 기타 많은 사람들에게 대하여서도 볼 수 있다.
또는 신약 성서를 펴 보더라도 으뜸 사도 베드로가 옥중에서 천사의 구원을 받은 사실이 있다.
성 요셉이 천사의 말씀을 듣고 이집트에 피난했으며, 후에 다시 팔레스티나에 귀국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모든 성인들의 일새이나 일반인 각자의 생활에서도 천사의 보호를 실지로 증거할 수 있는 것이 적지 않다.
우리는 육안으로 천사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의 보호하심으로 많은 위험에서 구호되었음을 생각지 못한다.
세상에서는 신기하게 위험을 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특히 그것은 순박한 아이들에게서 많이 볼 수 있다.
우리의 신앙에 의하면 그 대답은 매우 간단하다. 더구나 주님께서는 천사가 아이들을 수호하고 있는 것을 명백히 하셨다.
"당신들은 이 보잘것없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를 하늘에서 항상 모시고 있다는 것을 알아두시오"
(마태 18, 19).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된 천사를 수호 천사라고 부른다.
이 수호 천사들도 다른 천사들과 마찬가지로 하늘에 계시며 육체를 갖지 않으므로 우리의 육안으로는 볼 수가 없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를 보며 우리를 돕는다. 수호 천사는 우리의 행위의 증인으로 우리가 행하는 선악을 낱낱이 목격하고 있다.
만일 우리는 혼자가 아니고 항상 곁에 천사가 따르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욱 선에 열심하고 악을 피하게 될 것이다.
무슨 악을 저지르려 할 때에 일어나는 주저심, 혹은 양심에 가책을 받는 것은 수호천사의 암시인 것이다.
수호천사는 우리의 임종때나 혹은 심판 때에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확실히 우리를 위해 하느님의 자비를 간청할 것이 틀림없겠지만,
만일 우리가 생전에 그의 인도하심을 따르지 않고 그에게 대한 생각을 잊었다면
그의 도우심도 헛되이 끝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축일을 뜻있게 잘 보내야 할 것이다.
천사 天使 angelus. angels
천사라는 말은 하느님의 심부름을 하는 영적 존재들의 직명(職名)이지 그들의 본성(本性)을 가르키는 말이 아니다.
그래서 중국과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천신(天神)이라는 본성을 가르키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본래 메신저를 뜻하는 천사라는 말인 중세초기부터 일반화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구약성서에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중개하는 존재로서 하느님의 심부름꾼으로 파견되어(창세 16:7, 19:1-22, 민수 22:22-35)
사람을 보호하거나(창세 24:7, 시편 91:11) 사람을 처벌한다(2사무 24:16, 시편 78:49).
또 그들은 하느님을 모시는 신하요 군대로 인식되었으며(여호 5:14, 1열왕 22:19, 호세 12:6, 아모 3:13),
때로는 하느님의 발현이라고 생각되었다(창세 16:!0, 출애 3:2-14).
아직은 천사라고 불리지 않는 케루빔(Cherubim)은 하느님의 어좌 노릇을 하고(1사무 22:10, 출애 25:18-20, 1열왕 6:23-28),
세라핌(Seraphim)이라는 존재도 거론되어 있다(이사 6:2). 바빌론 유배시기 이후부터 하느님의 절대 초월성이 강조되면서
하느님의 명을 받아 이 세상의 많은 자연현상과 인간역사를 운전하는 천사관이 발전하였다.
욥기, 다니엘서, 토비트서 등 정경과 헤녹서 등 위경과 묵시문학을 통하여 천사론이 전개되었는데,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들(욥기 1:6, 2:1, 다니 3:92, 지혜 5:5),하늘의 아들, 거룩한 자, 거룩한 사자, 수호자, 귀인, 영(靈) 등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그들은 하느님의 피조물이요, 순전한 영체이므로 음식이 필요 없고(토비 12:19),
그들은 수가 대단히 많고(욥기 33:23, 다니 7:10) 4∼7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진다.
천사들의 역할에 대한 사상은 그 전 시대와 비슷하여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인간을 보호하고, 인간을 도와 주고,
인간을 위하여 하느님께 기도하고 때로는 사람을 벌주기도 한다.
그리고 이 시기부터 착한 천사와 악한 천사 즉 악마의 구별이 생기고, 개인이나 도시나 나라의 수호천사라는 개념이 발전하였다.
이렇게 하여 그리스도 직전 시대에 사두가이파는 천사를 부정하고, 바리사이파와 에세파들은 천사를 믿고 있었다.
그리고 정경에는 미카엘(다니 10:13, 12:1) 가브리엘(다니 8:16, 9:21) 라파엘(토비 3:!7, 5:4) 대천사의 이름이 나타나 있고
위경(헤녹서)에느 우리엘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신약성서의 천사관은 후기 유다이즘의 영향을 받고 있다.
천사는 하느님의 메신저로 사람에게 파견되고(마태 1:20, 루가 1:!1, 사도 8:26), 꿈에 나타나고(마태 2:13),
흰 옷을 입은 사람으로 나타난다(마르 16:5). 그들은 창조된(골로 1:16) 영체이며(히브 1:14), 하느님의 군대요(마태 26:53),
그리스도를 섬기고(마태 4:11, 루가 22:43) 사도들에게 봉사하고(사도 5:19, 12:7-10), 어린이들을 보호한다(마태 18:10).
마침내 그리스도는 천사들에게 옹위되어 심판하러 오시고(마태 16:27, 24:31),
모든 천사들을 지배하신다(마르 13:32, 골로 1:16, 필립 2:10, 히브 1:5).
신약의 서간에는 구약의 묵시록에서는 천사들이 하느님의 도구로서 하느님의 심판의 천지개벽을 주관하고 있다.
교부들의 천사관은 성서와 유다이즘과 이교도들의 관념까지 혼합된 것이지만
차츰 천사의 본성은 창조된 영체요, 자유와 지혜를 가지고 창조되었으므로 그중 일부는 타락하여 악마가 되고,
착한 천사는 하느님의 사자요, 인간의 수호자가 되었다고 사유하였다.
고대 말기의 디오니시오(Dionusius Areopagita)는 네오플라토니즘적 도식과 성서에 나오는 천사들의 이름을 이용하여 구품(九品)의 천사 계보를 꾸몄다.
즉 세람핌(熾品), 케루빔(智品), 좌품(座品), 주품(主品), 역품(力品), 능품(能品), 권품(權品), 대천사, 천사의 아홉 등급이다.
물론 이 구품천사론은 그의 신학이자 교회의 교리는 아니다.
천사론에서 가톨릭 신자가 믿어야 할 교리는 꼭 한 가지밖에 없다.
즉 하느님께서 우리 감각의 대상인 세상과 우리의 감각을 초월하는 영의 세계도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교회는 천사의 존재를 신앙교리로 선언하였다[제4차 라테란 공의회(1215년), Denz. 428, 1차 바티칸 공의회(1870년), Denz. 1783].
그러나 천사의 본질이 무엇인지, 역할이 무엇인지, 사람마다 수호천사를 가지고 있다느니,
여러 계급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등등의 학자의 주장에 대하여 교회는 아무런 유권적 결정도 내린 일이 없다.
다만 교회는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천사의 이름 외에 다른 이름들을(위경에 나오는) 사용하는 것을 금하였고(745년, 라테란 공의회),
삼대(三大) 천사의 축일과(9월 29일) 수호천사의 기념일(10월 2일)을 제정하여 천사공경을 장려하고 있다.
(鄭夏權) 가톨릭대사전에서
축일:10월2일
복자 앙트완느 슈브리에 사제
Beato Antonio Chevrier Sacerdote
Lione, 16 aprile 1826 - 2 ottobre 1879
E’ stato beatificato a Lione da papa Giovanni Paolo II, il 4 ottobre 1986.
프라도사제회 창설자
복자 슈브리에 신부의 생애
1. 어떤 시대에 살았나?
복자 슈브리에 신부는 1826년 4월 16일에 프랑스 리용에서 태어났다. 그 당시 프랑스에서는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의 결과로 공업화가 한창이었고 그 중심은 리용이었다. 농촌을 떠난 많은 농민들이 리용의 변두리에 와서 공장에서 비참한 조건으로 일하며 생활하고 있었다.
2. 새로운 회심의 때, 1856년 성탄 밤
1846년 10월에 대신학교에 입학한 슈브리에는 교회가 가난한 대중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음에 대해서 마음 아프게 생각하였다. 1850년 5월 25일에 리용교구 사제가 된 슈브리에는 열심한 보좌신부로서 살아가고 있던 중에, 1856년 여름에 리용을 뒤덮은 대홍수 때 헌신적으로 동네 사람들을 도와주던 중에 그들이 매우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직접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같은 해 1856년 성탄 밤에 구유 앞에서 묵상하면서 자신의 회개를 위한 큰 빛을 받았다. ‘나를 회개시킨 것은 강생의 신비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은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또 죄인들을 회개시키기 위하여 땅 위에 내려오셨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세상에는 죄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사람들은 계속 버려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더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더 가까이 따르기로 결심했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여러분도 우리 주님을 더 가까이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3. 프라도 카바레에서 시작
그는 평신도 랑보를 만나서 가난한 사람들처럼 가난하게 생활하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점차적으로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직접 전하는 사명을 분명하게 의식하게 된다. 사제가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것이다. 1860년 12월 10일에 그는 리용 변두리에 있는 프라도 카바레를 인수하여서 성당에서 제대로 교리를 배우지 못한 동네의 비참한 아이들을 데려다가 6개월 동안 기숙사 생활로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면서 글을 가르치고 첫영성체 준비를 시켰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사랑하고 일치하게 하는 일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4.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가난한 사제 양성
그는 점차로 가난한 사람들의 복음화를 위한 가난한 사제들을 양성할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그래서 리용 교구장의 허락을 얻어서 댄스홀이던 그 프라도의 집에서 소신학생들을 받아들여서 양성하기 시작하였다. 자신이 활동하던 라기요띠에르 동네의 가난한 집안 젊은이들의 부모들에게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사제’의 성소에 대해서 잘 설명하고 그 젊은이들을 소신학생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렇게 시작한 프라도 사제들을 양성하는데 그는 온 힘을 기울였다. 그는 신학생들이 복음연구에 충실하여서 예수님으로부터 구원의 진리를 배우고 익히기를 원했으며, 그들의 양성을 위해서 ‘참다운 제자’를 저술하였다. 교구 사제들이 형제적 공동체를 이루기를 염원한 그는 교회와 세상을 위해서 새롭게 일해야 한다는 의식을 갖고 있었으며, 교회는 많은 결실을 거둘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5. 생퐁의 영성
프라도의 집에서 아이들의 첫영성체를 준비하고, 필요로 하는 재원을 마련하고, 신학생들을 양성하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슈브리에 신부는 리용의 남쪽 변두리에 있는 생퐁이라는 동네의 밭 한가운데 있는 한적한 곳으로 가서 피정을 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고 그분의 영을 따라서 가야할 길을 잘 정리해서 헛간의 벽에 기록해놓았다. 지금도 전 세계의 프라도 회원들이 그곳을 찾아가서 복음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구체적인 방법을 되새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제는 제2의 그리스도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요한 20,21), ‘내가 너희에게 모범을 보였으니 내가 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여라’(요한 13,15)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면서, 예수님의 구유의 가난과 십자가의 봉헌과 성체성사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제는 헐벗은 사람이고,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이며 먹히는 사람이어야 한다.
6. 하늘나라로
슈브리에 신부는 1879년 10월 2일에 27살의 젊은 후계자를 남겨두고 하느님 나라에 갔다. 가난하게 살고,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철저하게 자신을 특별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내어준 그는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이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1986년 10월 4일에 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리용에서 그를 시복했다.
(프라도사제회홈에서)
복자 앙트완느 슈브리에 사제(1826-1879)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세가지 사건
산업화가 진행되던 프랑스 공업도시 리용에서 태어나 1850년 사제로 서품된 후 리용의 변두리 ‘라 기요띠에르’라는 서민동네의 성 안드레아 본당 보좌신부로 부임한다.
1856년 5월 론강이 홍수로 범람하게 되어 비참한 상황에 놓이게 된 주민들의 생활상을 목격
1856년 6월 철저한 가난의 삶과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평신도 카미유 랑보와의 만남
1856년 12월 성탄밤 구유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을 묵상하며 온 인류를 위한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는 특별한 은총을 받으셨다.
슈브리에 신부님은 ‘프라도는 이순간에 태어났다’고 말한다.
“성탄절 밤, 우리 주님의 가난과 인간들 가운데서 그분의 낮추심을 묵상하면서 나는 모든 것을 버리고 될 수 있는대로 가장 가난하게 살고자 결심했습니다. 나를 회심시킨 것은 강생의 신비입니다.”
본당을 떠나 가난한 이들에게로(아기예수 마을에서)
자신과 뜻을 같이 할 동료 사제를 찾았으나 당시 부르주와적 생활에 익숙한 사제들의 반대에 부딪히게 되어 자신이 스스로 가난의 삶과 사도적 삶을 살게 된다.
평신도 카미유 랑보가 운영하는 아기 예수 마을(이재민과 빈민들을 위한 주택촌) 지도신부로 들어간다.
“불쌍한 꼬마들, 이 아이들은 정말 가련합니다. 벽돌이나 집은 제자리에 놓여 있지만 이 아이들은 다시 오지 않고 다른 데로 가버립니다. 우리는 다른 곳으로 못 가게 말리면서도 오히려 다른 곳으로 가게 강요하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그 아이들에게 있을 곳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봉사하는데 건축이 중요하다는 랑보에 반해 슈브리에 신부님은 무엇보다도 앞세워야 할 것은 가난한 사람들, 특히 마을에서 문제아들에게 복음을 전한는데 헌신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영혼과 교리교육이 우선이었던 슈브리에 신부는 랑보와의 이러한 의견차이로 마을을 떠나게 된다.
섭리의 집 '프라도'(Prado)
"하느님, 저에게 이집을 주시면 더 많은 영혼을 드리겠습니다.”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영혼들을 위해 영적계획을 내놓으면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물질적 인 것을 주신다는 신뢰심 밖에 없었지만 그 장소를 손에 넣게 되었습니다.”
1860년 12월 10일, 슈브리에 신부는 ‘라기요띠에르’의 평판 나쁜 캬바레 ‘프라도’를 얻게된다.
그는 이곳에서 초기부터 가졌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가난한 사제단’ 이란 이상을 간직한 채 우선 현실적으로 필요한 일, 즉 산업화에 종교교육의 기회를 빼앗긴 가난한 어린이들을 위한 ‘첫영성체 사업’을 시작한다.
“우리에게는 항상 안배가 따랐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이 사업은 우선 가난한 사람들의 손으로 유지되고 그 다음에 부자들이 왔습니다. 이것이 복음에 적합한 순서인 것입니다. 예수님도 우선 구유에서, 아주 보잘것없는 예물을 드린 목동들 틈에서 얼마를 보내셨고, 그 다음에야 지상에서 지체 높은 분들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습니다.”
가난한 아이들에게 무료로 운영되던 프라도집에 보이신 하느님의 섭리를 나타내는 말씀이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가난한 사제
슈브리에 신부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게 하는 매우 독특한 사제양성 방법을 고안했다.
프라도에 소신학교를 설립하면서부터 프라도사제회는 시작되었던 것이다.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 이것이 전부이다.
슈브리에 신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복음연구이다.
“우리는 우리 주님을 배우는 데서 참다운 빛을 발견한다. 그 가운데 이미 완성되고 준비된 삶의 법칙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찾고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복음서를 통해서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에 사로잡혀 프라도사업과 사제양성에 전념했던 슈브리에 신부는 그토록 많은 일에도 불구하고 생애의 많은 시간을 복음공부에 할애한다.
1879년 10월 2일 53세로 선종.
1986년 10월 4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복되었다.
(프라도수녀회홈에서)
프라도 사제회<역사적 기원>
프라도 사제회는 가난한 사람들을 복음화하기 위하여 성령께서 리옹 교구의 사제 ‘앙트완느 슈브리에’를 통하여 교회에 내려 주신 은총의 결실이다. 1850년 주교로부터 리옹의 변두리 동네 ‘라기요티에르’로 파견된 슈브리에 신부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열정에 사로잡혀, 그 동네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고 사랑하게 하려고 최선을 다하였다. 슈브리에 신부는 당시의 교회와 도시 변두리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 ‘무지한 사람들’, 그리고 ‘죄인들’ 사이에 있는 괴리를 보고 큰 고통을 느꼈다. 1856년에 일어난 홍수 때 다시 한 번 확인된 민중의 참상은 급기야 성 안드레아 본당 보좌 신부인 슈브리에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1856년 성탄절 밤에 강생의 신비를 묵상하던 앙트완느 슈브리에는 자신의 생애와 사제 활동의 방향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헌신하는 데로 고정시켜 주는 빛을 받게 되었다. 슈브리에는 이렇게 말했다. “프라도는 성 안드레아 본당에서 태어났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바라고 가능한 한 가장 가난하게 살기로 결심한 것은, 성탄절 밤에 우리 주님의 가난과 사람들 가운데서 자신을 낮추신 그분에 관하여 묵상하던 중의 일이었습니다.… 나는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은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또 죄인들을 회개시키기 위하여 땅 위에 내려오셨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세상에는 죄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사람들은 계속 버려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더 가까이 따르기로 결심했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여러분도 우리 주님을 더 가까이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프라도사제회홈에서)
한국 프라도사제회
[프] l'association des pretres du Prado
[영] Prado Priest Association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가난한 사람들의 복음화에 투신하는 교구 신부들의 공동체.
“프라도 사제회”는 하느님의 백성이 지닌 사도적 소명과 사명 안에서 자신의 소명과 사명을 실천하기 위하여, 재속회에 관한 교회법에 의해 지배를 받는 성좌 설립의 재속 사제회다. 본회는 사제들과 봉헌된 평신도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제들은 재속 사제로서 그 사도적 사명을 수행한다. 다시 말하면 세상 안에 있는 사제들로서, 주교들의 협력자들로서, 사제의 직분 안에서 하느님의 백성을 섬기는 사람들로서, 그들은 교구의 주교로부터 직접 교회법적인 사명을 받는다. 그리고 본회에 속한 봉헌된 평신도도 복음의 길에 자신의 전생애를 바치고 또 복음화 임무에 참여함으로써, 세상 안에서 이와 똑같은 소명을 수행한다.
오늘날 가난한 사람들과의 만남으로써 자극을 받고 재촉을 받게 된 프라도회 회원들은 앙트완느 슈브리에 신부를 영신적 지도자로 삼고서, 말씀이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께 자신을 “온전히” 바치며, 성령에 의해 인도를 받고 성령에 의해 우리 자신의 모습이 형성되도록 하는 데 투신하고자 한다. 우리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께 바치며, 그분과 함께 그분처럼 가난한 사람들, 억압받는 사람들 그리고 죄인들을 만나서 그들의 삶에 동참하고, 성령의 능력 안에서 그들 가운데 하느님 나라의 증거한다.
각 교구에서 서품을 받고 성사적 직분과 형제애를 함께 나누는 교구 사제단의 구성원들로서 프라도회의 사제들은 물질적, 영신적, 사목적인 면에서 교구 성직자 생활에 해당하는 모든 것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며, 주교의 사목적 직무에 협력한다. 프라도 사제회는 특수한 사도적 방법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우리를 특징지어야 할 사도적 방향을 가지고 있다. 그 방향이란 우리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려고 애쓰고 또 ‘가난한 사람들과 같게 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프라도사제회홈에서)
프라도의 표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전 생애를 표현하는
'구유- 십자가-감실' 을 형상화 한 것인데,
사제직에 관한 슈브리에 신부님의 영성이 요약되어 있는
'생퐁의 도표(Le tableau de St. Fons)'에서 유래합니다.
슈브리에 신부의 기도
말씀이신 그리스도님,
주님께서는 선하시고도 위대하시나이다.
누가 주님을 속속들이 알고 깨달을 수 있으리이까!
그리스도님, 주님을 알고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주님께서는 빛이시니,
이 가난한 영혼에 한 가닥 빛살을 보내주시어,
주님을 뵙고 주님의 마음을 깨닫게 하여 주소서.
무한히 선하신 주님,
단 한 번이라도 주님을 우러러 뵙게 하소서.
주님의 그 찬란한 광휘를 조금 낮추시어,
저의 눈이 주님을 우러러 뵙고
주님의 완전하심을 바라보게 하소서.
저의 귀를 열어 주시어, 주님의 거룩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주님의 가르치심을 묵상하게 하소서.
저의 정신과 지력을 열어 주시어,
저의 마음에 들어오시는 주님의 말씀을
맛들이고 올바로 알아듣게 하소서.
주님께 크나큰 믿음을 갖게 하소서.
그리하면 주님의 모든 말씀이 빛이 되어 저를 비추어 주고
주님께 나아가게 하며,
오로지 정의와 진리의 길을 거닐며 주님을 따르게 하리이다.
말씀이신 그리스도님,
주님께서는 저의 주님, 저의 유일한 스승이시나이다.
주님, 말씀하소서.
말씀께서 하늘로부터 내리심을 아오니,
주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리이다.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묵상하고 실행하리니
주님의 말씀에 생명과 기쁨, 평화와 행복이 있기 때문이나이다.
주님, 말씀하소서.
저의 주님, 저의 스승이시여,
오로지 주님의 말씀 듣기가 소원이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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