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일 : 11월 6일
성 레오나르도 은수자
ST.LEONARD of Noblac
San Leonardo di Noblac Eremita
Gallia, inizio VI sec. ? Noblac (Limoges), 6 novembre 545 ca
Died:c.559 of natural causes(491-559)
Leonardo = forte come leone, dal latino e dal tedesco
서유럽에서 널리 알려진 성인이지만 그의 생애가 기록으로 남은 것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는 프랑크 귀족으로서, 성 레미지오에 의해 크리스챤으로 개종하였는데,
국왕 클로비스 1세가 대부였다고 한다.
그 후 그는 오클레앙으로 가서 미씨의 수도원에서 얼마를 지내다가
리모쥬에서 과히 멀지 않은 곳에서 은수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조그마한 움막을 손수 짓고, 채소와 과일로 연명하면서 하느님만 관조하며 생활하였다.
어느날, 클로비스 국왕이 사냥을 왔다가 여왕이 죽을 곤경에 빠졌을 때,
그의 기도로 인하여 여왕이 목숨을 건지자 왕은 감사의 표시로 많은 토지를 하사하였다.
그는 이곳에다 공동체를 세웠는데, 이곳이 노블락 수도원이다.
이때부터 그는 인근 마을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성바오로수도회에서)
프랑크 국왕 클로비스가 하느님의 도움으로 아레만족을 격파하여 대승리를 얻자
그는 가톨릭에 입교하였는데 그때 같이 입교한 장군중에 레오나르도 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명문 출신이며 무술이 능하고 모든 사람의 선망에 대상이었던 훌륭한 장군이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국왕의 장군으로써 충성을 다바친 그는 개종하여
이제는 하느님의 병사가 되어 하느님께 봉사하기로 결심하였고 세속을 버리고
성 레미지오주교를 찾아 그 밑에서 열심히 덕행을 연마하였다.
하느님께서는 그의 행실을 기꺼이 여기시어 기적을 보여주셨다.
하루는 그가 기도할때 수정같은 맑은 샘이 땅에서 솟아나는 일이 생겼다.
그의 영적인 힘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먼곳에서 찾아온 난치병 환자들이
즉석에서 완쾌되어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성바오로딸수도회에서)
프랑스 국왕 클로비스가 하느님의 도움으로 보기 좋게 게르만족을 격파해 대승리를 얻자
가톨릭에 입교했는데, 그때 같이 입교한 장군중에 레오나르도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명문 출신으로 무술이 능하고 기풍이 늠름했기 때문에
궁중에서도 모든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으로 훌륭한 장군이었다.
그는 왕과 다른 귀족과 더불어 세례를 받았는데,
그 중에서 진실로 가톨릭의 진리를 해득함에 있어서는 그를 따를 자가 없었다.
지금까지는 국왕의 무장으로서 충성을 다 바친 그가
이제는 하느님의 병사가 되어 여생을 하느님께 봉사하기로 결심하여,
세속을 버리고 레미지오 주교를 찾아 그 밑에서 열심히 학문과 덕행을 연마했다.
레미지오 주교는 이를 매우 기꺼이 여기고 그에게 성품 성사를 주어
국내 비신자를 회개시킬 책임을 맡겼던 바,
모든 면에 철저한 성격인 레오나르도는 그야말로 헌신적인 노력으로 놀라운 전교 성적을 올렸다.
그의 성덕이 천하에 알려지자 클로비스 왕은 그를 궁정 책임 신부로 초청하던가
또는 주교로 승격시키기를 바랐다.
그러나 겸손하게 그는 그 호의를 모두 사양했는데,
왕은 "다른 무슨 소원은 없는가? 내 힘으로 가능한 것이라면 무엇이나 들어주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때 레오나르도는 "그러면 한가지 소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감옥에 가서 제 마음속에 있는 죄수를 지적할 터이니 그들을 석방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리하여 국왕의 승낙을 얻고 즉시 감옥에서 수명의 죄수를 석방시켜 주고,
수덕 생활을 하기위애 인기척 없는 조용한 곳을 찾아서 길을 떠났다.
레오나르도는 오를레앙 근처의 어느 수도원에 들어갔다.
그 수도원 원장은 막시미아노로 그는 그 밑에서 웃어른의 덕행을 본받아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며
오로지 수덕에만 전심하였다.
다른 동료 수사들은 레오나르도의 성덕을 칭송하며 그의 덕을 본받을 정도였다.
성스러운 원장이 세상을 떠나자, 그 후임을 맡게 될 것을 짐작한 레오나르도는 훌쩍 길을 떠나
사람의 자취 없는 적막한 곳을 찾아들었다.
그 여행 도중에도 기회 있는 대로 전교를 하며 많은 사람을 회개시켰다.
그는 리모쥬 근처에 거처를 정하고 그때부터 은수 생활을 시작했다.
먹는 것이라곤 잡초와 과일뿐이었고 아무도 모르게 심한 고행을 하며 끊임없는 기도와 묵상으로 날을 보냈다.
그러나 성덕의 빛은 언제까지나 감출 수 없는 것이니,
어느 사이에 그곳을 알고 그의 지도와 위로의 말을 갈망해 모여드는 신자들의 수가 날로 늘어갔다.
그중에는 비신자까지도 많이 끼여 있었으며, 레오나르도의 열렬한 권면에는
모두 마음을 가다듬어 맑은 샘물로 세례를 받았고,
이들 개종자 중에는 그대로 머물러 그 지도하에 경건한 생활을 열망하는 사람들도 생겨
레오나드로는 그들을 위해 소성당과 초막을 마련했다.
이것이 훗날 유명한 노블락 수도원의 요람이 되었다.
하느님께서도 그의 행실을 기꺼이 여기시어 그의 기도에 기적으로 보답하여 주셨으니,
하루는 그가 기도할 때 수정같이 맑은 샘이 땅 속에서 솟아난 일이다.
또한 그의 기적의 힘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먼 곳에서 찾아온 난치(難治)의 환자가 완쾌되어
하느님을 찬미하면서 돌아갔으며
영혼의 병자인 죄인들도 회개해 훌륭한 생활로 다시 살아난 자의 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이렇듯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일생을 보낸 레오나르도가 천국으로 떠난 때는 559년 11월 6일이었다.
(대구대교구홈에서)
성 레미지오 주교 축일:10월1일
성녀 셀리나(실리니아) 축일:10월21일
축일:11월6일
로드랑엔의 복녀 마르가리타
Beata Margherita di Lorena Vedova
Bl. MARGARET of Lorraine
Born: 1463 in Vaudemont Castle, Lorraine, France
Died : 2 November 1521 at Argentan, Brittany, France of natural causes
Beatified: 1921 by Pope Pius XI (cultus confirmed)
마르가리타(Margarita)는 25세 때에 알랑송의 공작인 르네와 결혼했으나,
남편은 3명의 자녀를 남기고 4년 후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 후 그녀는 모베스 성으로 물러가서 영적인 일과 영지를 돌보면서 고독한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때 그녀는 바울라의 성 프란치스코의 지도를 받으며
철저한 고행과 수덕생활에서 놀라운 성과를 얻었다.
1513년 자녀들에 대한 부양 의무가 끝났을 때,
그녀는 자유롭게 되어서 가난한 이와 병자들을 돌보게 되었다.
그녀는 클라라회 규칙을 따르는 수녀원을 그곳에 세우고 공동체를 이루었는데,
자신은 1519년에 서원하였다. 그녀는 원장직을 끝까지 사양하고 평수녀로서 일생을 마쳤다.
(가톨릭홈에서)
제주성글라라수도회 홈에서
우리 수도회의 영성
성 클라라 수도회는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의 정신을 따라 성교회 안에서 거룩한 복음을 그대로 본받음을 생활양식으로 하고, 산 위에서 기도하신 그리스도를 모방하는 기도생활로써 하느님의 영원한 계획인 그리스도 신비체의 완성을 위해 봉헌된 관상 수도회이다. 성 클라라 수도회, 또는 가난한 자매 수도회라고 불리며, 프란치스코회의 제2회를 이루고 있다.
본 수도회의 생활양식이란 교회생활, 형제애, 가난, 관상이다.
우리 수도회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성모 마리아의 발자취를 따라 성령의 정배가 되어 오직 하느님만을 소유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과 겸손, 삼위일체의 친교 안에 가족적 일치를 이루며,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은 삶을 살아가는 봉쇄 안에서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하느님께 그 마음을 두는 관상생활을 한다.
그러므로 “성자를 당신 마음에 꼭 들어하시는” 성부와 함께 산 위에서 관상 중에 계시는 그리스도(마태 17,5)를 본받아 증거하며 살아가는 관상 수도회이다.
침묵 안에 끊임없이 회개의 정신을 새롭게 하여 그리스도의 얼굴을 끊임없이 바라봄으로써 모든 사람과 사물과 모든 사건 속에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를 발견하게 되어 찬미와 감사를 드린다.
이 찬미와 감사는 성체신비의 거행에서 절정을 이루며, 교회의 심장 역할을 다한다. 이로써 교회는 이 생명의 샘에서 한없이 새로워진다.
이렇게 자매들은 자신의 삶 전체로 온 누리의 찬미를 수행하며 다가오는 하느님 나라의 축제에 들어감으로써 하느님을 위해서 함께 일하는 일꾼이요, 그 영광스러운 몸의 연약한 지체들을 받치는 받침대가 된다.
▒ 복음적 교회생활
성녀 클라라는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에 절대 순명하며 교회에 종속됨을 근본가치와 이 성소의 주춧돌로 삼았다.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심장 안에 살면서 그리스도의 생명의 맥박이며 교회를 존재케 하고 유지시켜주는 전례, 특히 성체성사에 이 공동체생활의 중심을 두고 있다. 교회의 딸로서 자녀를 양육하는 어머니와 같이 성체성사를 통해 한 빵을 나누어 먹음으로써 그리스도와 결합되고 그리스도의 생명과 사랑으로 그의 신비체인 교회의 전 지체와 일치함으로써 교회를 지탱시켜 나아가고, 특히 나약하고, 버림받고, 고통받는 지체들의 보조자로서 영적 봉사를 하는 것이 본회의 주요 소명이다. 이에 교회에 충성함으로써 교회의 어느 지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교회정신과 완전히 일치하여 복음을 생활함을 기본원칙으로 한다.
▒ 복음적 형제애
성녀 클라라는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거울삼아 상호 형제적 일치를 깊이 보존하며 복음 이상의 완성을 향해 나아감을 핵심으로 삼았다. 또한 이 심오한 자매적 일치를 이루는 사랑의 생활을 통해 그리스도와 일치되고 전 공동체가 하나되어 전 지체, 교회에 형제애 일치의 표징이 되고 활력을 주며, 이로써 누리는 기쁨은 복음적 생활의 결실이며 참의미를 지닌다. 이와 같이 자매애 안에 복음 정신은 구체화되고, 그리스도의 지체인 교회는 그리스도 사랑 안에 모두 하나되는 구원의 신비를 실현하게 된다.
▒ 복음적 가난
성녀 클라라에게 복음적 생활은 성령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는 절대적 가난의 생활이다. 가난은 그 자체에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법에 의한 복음적 가난이다. 즉 구유에서 가난하게 나셨고, 십자가 위에서 맨 몸으로 달리신 가난한 주님께 대한 사랑 때문에 개인적으로만 아니라 공동체적으로 가난하신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생활로써 따름이 본 회의 영성에 근본을 이룬다.
순례자로서 단순과 겸손으로 온전히 주님께 의존하며 기쁜 마음으로 만물의 주인이신 하느님께로부터 필요한 모든 것을 받아 살아가는 가난한 자, 작은 자의 생활이다. 즉 모든 것은 은총이며 하느님의 선물임을 의식하는 성 프란치스코의 청빈(가난. 겸손)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자신을 철저히 비우고 성령의 자유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된 참된 자유인으로서 이 세상에 집착하지 않고 장차 도래할 하느님 나라에 마음을 두고 모든 것의 원천이신 하느님께 절대적 신뢰 안에서 늘 감사하는 참된 의미의 복음적 가난이다.
▒ 복음적 관상생활
성녀 클라라의 복음적 생활양식은 관상이다. 봉쇄된 수도원 안에서 깨끗한 마음과 주님의 정신으로 철저하게 성령의 지시를 따르는 고요와 침묵의 기도 생활에 있어 산 위에서 기도하신 그리스도는 이 고요와 관상적 고독의 모범이다. 관상 중에 끊임없이 그리스도를 뵈옵고 추구하는, 특히 그리스도의 탄생, 수난과 죽음, 성체성사의 신비를 묵상하며 이 안에 나타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과 우리의 아버지되심을 모든 것 위에 감사하며 기쁨과 평화 중에 끊임없는 찬미의 제물을 바치는 것이 본 회의 사도직이며 이는 하느님의 영원한 만민 구원계획과 영광을 위한 것이다. 이러한 관상생활은 교회가 그 현존을 드러내기 위한 중요한 본질적 표징이 된다.
▒ 활동분야
우리의 사도직은 관상생활이며, 사도적 활동은 없다. 자급자족을 위한 한 수단으로 봉쇄 구역 안에서 소규모의 밭농사를 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생활 양식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는 나눔의 실천이며, 인근 주민과 같은 형태의 육체적 노동을 성 프란치스코의 가난의 정신에 따라 택한 서민적 생활 수단이다.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 안에서 이 육체 노동은 낮은 자들의 수고를 함께 하는 것이며 고통 당하고 굶주리며 억압 당하는 그리스도의 지체들과 함께 실생활로써 이 낮은 자되는 어리석음을 받아들여 창설자의 정신으로 복음적 가난과 단순의 길을 걷는 것이다. 이러한 복음지향적 삶은 육체적 노동에서뿐 아니라 각자의 소임과 고유한 분야 안에서도 한 맥이 되어 기도와 침묵으로 살아 움직인다.
세라핌적 가난의 특전
교황 그레고리오 9세가 성녀 클라라에게 허가한(1228. 9. 17.) 세라핌적 가난의 특전
하느님의 종들의 종 그레고리오 주교는 아시시 교구의 산 다미아노 성당에서 수도적 공동생활을 하는, 그리스도 안에서 경애하는 딸들인 그리스도의 시녀들, 클라라와 그 자매들에게 인사하며 사도적 강복을 보내노라.
1.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그대들은 오직 주님께만 자신을 봉헌하기 위하여 세속의 모든 부귀 영화를 포기하였소. 그리하여 그대들은 모든 소유를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여지신 그분,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 14,6)이신 분의 발자취를 모든 점에서 따르며 어떠한 경우에도 그 길에서 떠나지 않기 위하여, 더 이상 어떠한 재산도 결코 소유하지 않기로 결심하였소.
2. 이러한 그대들의 결심은 어떠한 물질적 곤란을 당하더라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오. 왜냐하면 사랑의 마땅한 도리로 결심하고 스스로를 영의 법에 굴복시킨 그대들 육신의 허약함은 임의 왼손이 머리 받쳐 도와 주실 것이기(참조: 아가 2,6; 8,3) 때문이오.
3. 뿐만 아니라 하늘의 새들을 먹이시고(참조: 마태 6,26) 들의 꽃들을 입히시는(참조: 마태 6,26) 그분께서는 그대들에게도 무엇이건 모자람이 없게 보살펴 주실 것이며, 그분을 마주뵈올 영원의 나라에서는 당신 바른손으로 그대들을 안아주시고(참조: 아가 2,6; 8,3), 그분의 식탁에 자리한 그대들 사이를 오가며 손수 시중들어(참조: 루가 12,37) 주시리이다.
4. 이렇게 우리는 그대들의 간청을 받아들여 지극히 높은 가난에의 결심을 사도적 호의로 뒷받침하고 보증하며, 어느 누구도 그대들에게 재산 받아들이기를 강요할 수 없게 이 문서를 통하여 사도적 권위로 확인하는 바이오.
5. 어느 누구도 우리가 인준하고 확인하는 이 기록을 훼손하거나 이에 대해 무모한 반대를 하지 말 것입니다. 누가 무엄하게도 이런 행동을 하려고 하면 전능하신 하느님과 복되신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의 진노를 부르게 되리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페루지아에서 교황 즉위 제2년 9월 17일
(제주성글라라수도회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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