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1일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기념일 아침기도
11월 11일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기념일 저녁기도
11월 11일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기념일 끝기도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기념
316년경 판노니아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이교인들이었다. 세례를 받은 후 군인 생활을 청산하고 프랑스의 리구제에서 수도원을 세웠다. 거기에서 성 힐라리오의 지도하에 수도 생활을 했다. 신품을 받고 투르의 주교가 되었다. 신자들에게 착한 목자로서의 표양을 주고 다른 여러 수도원들을 세우며 성직자들을 교육시키고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였다. 397년에 세상을 떠났다.
술피치오 세베로의 편지에서
(Epist. 3,6. 9-10. 11. 14-17. 21: SCh 133,336-344)
가난하고 겸손한 마르티노
마르티노는 죽음을 맞이할 날을 오래 전부터 미리 알아 형제들을 보고 자기 육신이 사그라질 때가 임박해 왔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나 어떤 중대한 일이 일어나 칸데스의 교구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 교구 성직자들 간에 발생한 불화 때문에 마르띠노는 자기 생명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면서도 그 교구의 화목을 되찾게 된다면 그것이 자기 전 생애에 걸친 모든 수고의 월계관이 되리라는 그러한 희망으로 여행을 거절치 않았다.
그 도시의 성당에서 잠시 체류하면서 성직자들간의 화목을 이룬 후 자기 수도원에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육신의 기력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하여 형제들을 불러 자기 임종의 시각이 다가왔음을 전해 주었다. 그때 형제들은 한결같이 안절부절 못하면서 비탄 속에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 왜 우리를 떠나려 하십니까? 우리 이 고아들을 누구에게 맡기시렵니까? 잔인한 이리들이 당신의 양 떼를 칠 것입니다. 목자가 부상당하면 이리들의 공격에서 누가 우리를 보호 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께서 그리스도를 갈망하시고 계심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늦게 가신다 해서 받으실 상급을 잃을 우려가 없고 그 상급이 줄어드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떠나지 마십시오."
이때 마르티노는 그들의 눈물에 깊이 감동했다. 그는 늘 하느님과 일치되어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자비의 동정심이 흘러 나오고 있었으므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자기를 위해 애통하는 이들에 대한 응답으로 주님을 향하여 이렇게 기도했다. "주여, 아직 당신 백성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계속 일하는 것을 거절치 않겠습니다.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참으로 놀라운 사람이여! 수고도 죽음도 그를 굴복시키지 못했으니,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사는 것을 거절하지도 않았으며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하려 하지도 않았다. 눈과 손을 항상 하늘에로 드높인 채 그의 무적의 마음은 기도에 굳게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모여든 성직자들은 그의 불쌍한 몸을 돌려 편히 하시라고 청하였으나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냥 두시오. 땅보다 하늘을 더 바라보고 싶습니다. 이제 여행을 떠나려는 순간에 이 내 영혼은 하느님께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마치자 악마가 가까이 있는 것을 보고는 이렇게 소리쳤다. "피에 얼룩진 짐승아, 너는 여기서 무엇을 하는거야? 이 놈아, 네가 받을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아브라함의 품이 지금 나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이 마지막 말씀을 하고는 하느님께 자신의 영혼을 맡겨 드렸다. 기쁨 중에 아브라함의 품에로 영접되었다. 가난하고 겸손했던 마르티노는 부요한 이로서 천국에 들어갔다.
대림절에 만난 성인들 : 성 마르띠노전교활동 통해 '정의, 수덕' 강조
서구 수도정신의 전형이며 모범으로 알려져 있는 성마르띠노 (316-397)는 유럽 교회에서 대림시기에 기억되는 대표적 성인으로 꼽힌다. 9백년경까지 서구의 대림절은 성인의 축일인 11월 11일 다음날부터 시작됐을 정도다.
그 기원 중 하나는 마르띠노 성인이 젊은시절 자신의 외투를 반으로 잘라 추위에 떠는 걸인에게 주었던 실천적 자선행위가 바로 대림의 정신을 반영해 준다는데서 나왔다.
그 일화는 다음과 같다. 어느 추운 겨울날 군인이었던 마르띠노는 말을 타고 가다가 길바닥에 웅크리고 있던 한 걸인을 만났다. 그는 거의 벌거숭이였고 추위에 지쳐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는데도 누구하나 돕는 이가 없었다.
마르띠노는 어떻게든 그를 돕고 싶었지만 수중에는 돈도 없었고 좋은 묘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생각다못해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반으로 잘라 거지를 덮어주었다.
그날밤 마르띠노는 꿈속에서 자기에게 말을 건네오는 그리스도를 만났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리스도는 자신이 거지에게 잘라 주었던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 그리스도는 '마르띠노 당신은 아직 세례도 받지 않았는데 이 옷으로 나를 입혀 주었오'라고 말했다. 이를 계기로 마르띠노는 세례를 받고 교회에 입문하게 되었다. 마르띠노성인은 이후 프랑스 린제 마르몽띠르 등에 수도원을 세웠는데 프랑스 전역뿐 아니라 알프스 산맥 북부 여러나라 교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으며 수많은 주교들을 배출하기도 했다. 활발한 전교여행을 통해 정의와 수덕을 강조하고 여러 가지 기적도 베푼 것으로 알려진다.
서구교회에서 이 성인은 가난한 이의 친구요, 보호자로서 또한 조류와 가축과 목동의 수호자로 잘 알려져 있고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독일 남쪽에서 그의 축일에는 큰 축제가 열렸다.
아직도 유럽교회에서는 마르띠노 행렬을 거행하며 어린이들을 축복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어린이들은 가지각색의 등불을 만들어 손에들고 행렬에 참여하는데 이 빛은 마르띠노 성인의 사랑의 모습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이 행렬은 위령의 날로부터 시작, 주의 봉헌축일까지도 계속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약8백년경까지 이 마르띠노축제를 아주 거창하게 지냈고 축일 다음날부터 시작되는 대림절에는 인간적 쾌락과 기쁨을 절제했고 참회와 보속으로 성탄을 준비한다는 의미로 11월 11일에는 더욱 성대하고 풍성한 축제를 벌였다고 전해진다.
[가톨릭신문, 1998년 12월 6일]
[금주의 성인] 투르의 성 마르티노(St. Martin of Tours, 11월 11일)
걸인에게 망토 잘라줘
군인에서 사제로...이교도 개종에 헌신
316-397. 헝가리 출생, 주교, 프랑스의 수호성인.
성인은 이교도를 믿는 군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15살에 억지로 군에 입대해 로마에 가게 된 성인은 군에서 예비신자 교리를 받으며 거의 수도자 같은 생활을 했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 날 걸인이 성문 앞에서 구걸을 하고 있었다. 성인은 그 걸인을 도와주고 싶었지만 자신이 가진 것이라곤 입고 있던 옷과 허리춤에 차고 있던 칼밖에 없었다.
성인은 즉시 칼을 뽑아 자신의 망토를 반으로 잘라 걸인을 덮어 줬다. 그날 밤 성인 꿈에 걸인에게 준 망토를 걸친 예수가 나타나 “아직 예비신자인 마르티노가 내게 이 옷을 입혀 주었다”고 말했다.
이 꿈은 성인에게 큰 영향을 줬고 성인은 사제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 성인은 제대 후 곧바로 사제품을 받았고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주위 사람들을 개종시키는데 헌신했다.
당시 아리아파와 같은 이단이 횡행하던 터라 성인의 복음 선포 활동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교도들에게 매를 맞고 쫓겨나는 봉변을 당하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성인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하느님 말씀을 전하고 또 전했다.
성인은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했는데 이교도들의 탄압을 받을 때면 산속에 들어가 기도생활에 전념했다. 이때 성인의 명성을 익히 들은 이들이 성인을 찾아와 수도 공동체가 형성되기도 했다.
성인은 사람들의 추대로 투르의 주교가 됐고 열정적으로 사목활동에 임했다. 성인의 강론은 수많은 이교도들을 개종시켰고 신자들을 하느님 말씀에 따라 기쁘게 살도록 이끌었다.
[평화신문, 제1042호(2009년 11월 8일), 박수정 기자]
성 마르띠노
우리는 술피치오 세베로가 쓴「마르띠노의 생애」, 아마도 낭만적으로 꾸며진이 작품을 통해서 성 마르띠노에 대해서 알고 있다. 마르띠노의 출생연도는 확실치 않지만 대개 315년 혹은 336년이었다. 그렇다면 안또니오가 그보다 54세 혹은 85세 위였다. 그는 빤노니아(Pannonia: 오늘날의 헝가리)의 사브리아(Sabria)에서 출생하였는데, 그곳에서 군사령관이자 이교도였던 그의 부친은 이태리 빠비아(Pavia)로 파견되기 전에 수비대 임무를 맡고 있었다. 거기서 마르띠노 양육되었고, 아마도 그리스도교를 접했을 것이다. 그의 부친은 마르띠노가 자신과 같이 군대에 들어가 군인이 되기를 원했다. 마르띠노는 싫어하면서도 아버지의 뜻을 따랐는데, 그의 전기작가는 이를 두고 마르띠노가 그때 이미 그리스도를 따랐다고 확언하고 있다. 그가 아미앵(Amiens)에 있을 때 그는 한 겨울에 추위에 몹시 떨고 있었던 어떤 가난한 사람에게 자기 외투의 절반을 잘라 나누어주었다. 전설에 의하면 이 가난한 사람이 예수였다고 한다. 예비자였던 마르띠노는 354년 부활절에 세례를 받았다. 2년 후인 356년에 그는 군대를 떠나 부모에게로 갔다. 그의 어머니를 회개시켰으나 그의 부친은 회개시키지 못하였다. 그가 약 356년에 뿌아티에르(Poitiers)의 힐라리오를 만났을 가능성이 있다. 그는 357년과 360년 사이에 이태리에서 금욕생활에 대한 어떤 체험을 했을 수 있다. 힐라리오가 유배에서 돌아 온 후(360년) 그가 뿌아티에르 근처의 리귀제(Liguge)에 수도원을 설립했음이 확실하다. 거기서 그는 10년 동안 수도승생활을 하였고 제자들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371년에 그는 뚜르의 주교로 선출되었다. 그는 수도승으로 남아 있기를 원했고 주교관 밖에 자신을 위해 나무로 된 암자를 지었다. 제자들이 그 주위로 모여들었고, 그래서 그는 '대수도원'을 의미하는 마르무티에르(Marmoutiers)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그것은 사실 대 수도원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은수처들로 이루어진 한 무리였다. 마르무티에르에서의 삶은 가난했고, 상당히 융통성 있는 이 회수도승생활은 빠꼬미오 수도승생활에 비길 수 있었다. 갈리아-로마 가정 출신의 자녀들은 이집트의 젊은 농부들과는 달랐다. 책을 필사하는 일 외에 공적인 일이 없을 정도로 많은 시간이 관상에 주어졌다. 따라서 마르무티에르는 필사를 위한 작업장들을 소유한 중세 수도원들의 선구자였다.
우리는 마르띠노의 내적인 삶에 관한 그의 개인적 문서를 갖고 있지 않다. 술피치오 세베로가 쓴 마르띠노의 전기로부터 그의 영성에 대한 어떤 개념을 형성하기란 쉽지 않다. 마르띠노의 주된 특성은 그가 군인으로 남아 있었다는 점인 것 같다. 그는 자신의 공동체 안에서 순명을 강조하였다. 그에게 있어 수도승은 순교자들의 후예이며, 그는 그리스도를 따르는데 있어서 그의 고행과 겸손으로 이를 증거해야한다. 군인으로서 수도승은 악을 거스른 전투에 임해야 한다. 안또니오에게서와 같이 마르띠노에게 있어서도 내적인 투쟁은 확실히 악마와의 싸움이지만, 또한 이교 성소들의 파괴와 악마에 사로잡힌 사람들에 대한 치유와 같은 외적인 투쟁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는 이교 신앙을 악마의 활동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결국 마르띠노는 힐라리오를 통해서 양성된 목자였다. 활동적이면서 동시에 엄격한 그의 영성은 사목적으로 방향 지워졌고, 그의 금욕주의는 말씀 설교에 종속되어 있었다.
빠꼬미오와 같이 마르띠노는 탁월한 인물이자 카리스마적인 압바였다. 그러나 또한 빠꼬미오처럼 그는 그의 수도승생활에 충분한 신학적 영적 토대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가 살아있을 때조차 그의 수도원 안에는 논쟁들이 있었고, 397년 그가 죽자 모든 것이 붕괴된 것 같다. 술피치오 세베로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많은 수도승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몇 년 후에도 여전히 거기에 남아 있었는가?
독서기도 : http://info.catholic.or.kr/divine_office/default.asp?sunseo=1&gomonth=2020-11-11&stype=re
삼시경 : http://info.catholic.or.kr/divine_office/default.asp?sunseo=1&gomonth=2020-11-11&stype=mi1
육시경 : http://info.catholic.or.kr/divine_office/default.asp?sunseo=1&gomonth=2020-11-11&stype=mi2
구시경 : http://info.catholic.or.kr/divine_office/default.asp?sunseo=1&gomonth=2020-11-11&stype=mi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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