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인, 성녀 축일 기념일등

+++ 코리의 성 토마스 기념일 +++

 

 

축일 1월11일(1월19일)
코리의 성 토마스, Observant
San Tommaso Placidi da Cori Sacerdote 
Cori (Latina), 4 giugno 1655 - 11 gennaio 1729
Etimologia: Tommaso = gemello, dall'ebraico= binoculars, from the Hebrew
Tommaso morì a 74 anni, l’11 gennaio 1729.
La causa di beatificazione fu introdotta il 15 luglio 1737, auspici le Diocesi di Subiaco, Velletri e Sabina.
Beatificato da papa Pio VI il 3 settembre 1786.
Canonizzato da papa Giovanni Paolo II il 21 novembre 1999.
Saint Tommaso da Cori
Also known as Francesco Antonio Placidi
Born : 1655 as Francesco Antonio Placidi
Died : 1729 of natural causes
Beatified : 29 April 1990 by Pope John Paul II
Canonized  : 21 November 1999 by Pope John Paul II 



   이탈리아 벨레트리(Velletri)의 코리에서 태어난 성 토마스는 매우 가난한 집에서 자라났지만 자비심 많은 어느 사제 덕분에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부모를 도와서 여러 가지 일을 도왔고 또 로만 캄파니아(Roman Campania)에서 양치는 일에 오랫동안 종사해야만 하였다. 그는 양치는 동안에 친구들과 잡담하는 대신 혼자 조용한 곳에서 하느님을 관조하며 묵상하였다. 이 때문에 그에게는 기도와 관상하는 습관이 붙었다. 

   양친을 잃은 뒤 성 토마스는 22세의 나이로 코리에 있던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여 6년 뒤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수련장으로 임명되었으나 항상 한적한 곳을 찾아 그곳에서 관상생활에 몰두하기를 원하였다. 마침내 그는 허락을 받고 수비아코(Subiaco)와 인접한 치비텔라(Civitella)로 갔다.

   그가 한 번은 성당에서 성체를 영하던 중에 탈혼에 빠져들었는데 성합을 손에 든 채로 천장까지 떠올라 잠시 있다가 밑으로 내려와서 형제들에게 성체를 영하여 준 적이 있었다. 또 그는 식탁에 놓인 빵을 모두 걸인들에게 나누어 주기 때문에 그 공동체의 회원들이 식탁에서 빵을 모두 치우곤 했다고 한다. 그는 이런 말을 자주 하였다. "만일 마음이 기도하지 않으면, 혀는 헛수고만 할 뿐이다." 그는 1990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된 후 1999년 11월 21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같은 교황으로부터 성인품을 받았다. 그는 코리의 톰마소(Tommaso da Cori)로도 불린다.
(가톨릭홈에서)








* 참고

3) 옵세르반트의 확장

요한 22세의 교황기가 끝나자 공동체 형제들의 대수도원주의(Con- ventualismo) 를 반대하여 회칙의 ‘총체적인 준수’를 열망하는 여러 그룹들이 이탈리아와 스페인과 프랑스에 나타났다. 영적 형제들과 그들의 ‘개혁’ 의지가 암암리에 각 지역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1334년 발레의 요한은 교황의 회칙을 준수하며 살 수 있는 허락을 총봉사자로부터 얻어냈다. 이것은 초기 단순성으로 돌아가려는 운동의 시발이었다. 1350년 스폴레토의 젠틸레는 회칙 준수 보장과 수련자들을 받을 수 있는 권한을 클레멘스 6세로부터 얻었다. 그러나 1354년 총회는 개혁운동과 반대노선을 지향했다. 젠틸레는 이단자로 고발되었고 쇄신의 첫 시도는 무산되었다. 젠틸레 그룹의 바올루쵸가 은둔소 생활을 하자 움브리아 지방의 버려진 은둔소에 형제들이 살기 시작했다. 1373년에 이 개혁운동은 12개의 집을 갖게 되었다. 이 운동은 1390년경 이탈리아 전역에 확산되어 있었다. 개혁운동의 초기형제들은 교육을 받지 못한 평형제들이었다. 그러나 우수한 개혁자들이 직접 회칙 준수파에 들어왔다.
 

이탈리아에서의 개혁 그룹인 리포르마티(Riformati)는 1402년에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디노, 1414년에는 카페스트라노의 성 요한, 1415년에는 살테아노의 성 알베르토, 1416년에는 마르카 관구의 성 야고보가 입회를 했다. 이들은 모두 옵세르반트의 방향을 결정짓는 인물들이었다.
 

스페인에서의 옵세르반트(Alcantarini, Discalceati, Guadalupesi)는 통합성은 부족했지만, 아비뇽의 교황 보호 아래 이탈리아보다 더 열정적으로 일어났다. 이 개혁 그룹들은 제각기 독자적으로 움직였다. 이들은 은둔소 칩거의 형태로 살았다. 1415년에는 12개나 되는 은둔소가 설립되었다. 알칼라의 성 디에고(+1463)가 1441년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한 것도 이 은둔소였다.
 

프랑스에서의 옵세르반트(Recollect) 개혁 운동은 은수적 생활이 아닌 학문과 사도적 활동에 큰 비중을 두었다. 또 교황은 회칙의 영적 준수를 위해 집짓는 일을 허락하였다. 15세기 초에 프랑스 관구의 여러 수도원은 개혁을 받아들였다.
 

그 후에 개혁 공동체들은 자신들의 관구봉사자들로부터 큰 고통을 당했다. 이들은 1415년에 자신들의 사정을 콘스탄츠공의회에 상정하여 교황들의 초기 해석을 가지고 회칙을 준수할 권리를 주장했다. 그리고 모든 관구의 옵세르반트 수도원들에게 개혁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모든 수도자들을 받을 수 있는 자유와 독자적인 장상을 달라고 요청했다.
 

공의회는 1415년 9월 23일 칙서 <Supplicationibus personarum> 에서 옵세르반트에게 그들이 요청한 모든 것을 허락해 주었다. 더구나 관구 내 속관구들은 해당 관구봉사자들의 재치권 아래에 있지 않으며 나름의 총장 대리를 가지고 총봉사자는 시찰할 권한만 있다고 선언했다. 어떤 수도자라도 본인이 원하면 회칙 준수파 형제들에게 넘어갈 수 있게 되었다.
 

옵세르반트 조직 체계를 확장시켜나간 그룹들 외에도 많은 다른 개혁 그룹들이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생겨났는데, 그들은 자치를 누리면서도 법적으로는 형제회에 속한 채 남아 있었다. 프랑스 북부와 독일의 콜레타니(Coletani), 이탈리아의 아매디테(Amaeditae), 클라레니(Clareni) 등이 있다.
(김창재다미아노ofm,이현주ofs 엮음,재속프란치스코회역사,한국재속프란치스코회출판부,2011,123-125쪽)

 

 

◆ 탈혼 ◆        한자  脫魂  라틴어  ecstasis  영어  ecstasy  출처 : [가톨릭대사전] 

 
   
일반적 의식이나 오관(五官)의 기능이 일시 정지된 상태. 이는 일반적으로 심리적 원인으로 인한 자연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으로 대별된다. 초자연적인 탈혼은 무속의 강신술(降神術)이나 악마 등에 의한 경우와 하느님의 능력에 의한 것이 있다. 교회에서 논의되는 바는 하느님의 능력에 의한 초자연적인 탈혼 즉 인간 영혼이 일시적으로 하느님과의 밀접한 일치에로 드높여진 결과 부수적으로 감각기관이 정지되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예언자적 탈혼과 신비적 탈혼이 그것이다. 예언자적 탈혼(prophetic ecstasy)은 하느님이 한 개인을 통하여 메시지를 대중에게 전달하고자 할 때 그 개인의 지성을 열어 줌과 아울러 메시지를 오해하거나 그릇 전달하는 일이 없도록 지각기관을 구속함으로써 일어나는 현상이다. 예언자 에제키엘이 성령으로 인도되었을 때(에제 11:24) 탈혼된 경우가 그 적례이다. 이러한 탈혼은 무상으로 주어진 은혜이며 사죄(死罪) 중에 있는 자에게도 허락된다. 한편 신비적 탈혼(mystical ecstasy)은 깊은 묵상의 경지에서 묵상자의 영혼이 하느님께 드높여짐으로써 일어난다. 탈혼자의 얼굴은 빛나는 것이 보통이며 듣거나 볼 수 없으나 하느님과의 일치를 의식한다. 이 탈혼 중에 성령은 그의 선물 특히 지혜와 이해력을 통하여 작용한다. 신비적 탈혼을 경험하고 나면 생활이 성스러워지고 사랑과 기쁨이 커지며 인내심, 참회의 정이 솟아나 신앙이 굳어지고 완덕을 지향하는 열정이 뜨거워진다. 신비적 탈혼은 묵상 중 하느님의 계시를 감당할 만한 육체적인 힘이 부족하여 일어나는 수가 많으므로 건강이 회복되면 탈혼도 그치는 게 보통이다.
(가톨릭홈에서)
 

 
◆ 관상 ◆      한자  觀想  라틴어  contemplatio  영어  contemplation  출처 : [가톨릭대사전]  
 
   
하느님을 직관적으로 인식하고 사랑하는 행위. 하느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안에서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당신의 본성에 참여하여 친밀한 친교를 누리도록 부르시고 있다. 그 친교의 온전한 형태는 천국에서 지복직관(至福直觀)을 통하여 이루어지나 그리스도인은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 직관능력의 씨앗을 받게 된다. 관상은 그 씨앗을 이 세상에서 어느 정도 싹트게 하여 꽃피우게 하는 방법의 하나로서, 교회내 많은 성인들이 영성생활의 일치의 단계에 도달하여 기도하는 가운데 이를 실천하였다.
 

   관상은 염경기도나 일반적 묵상기도와 달리 단순 본질의 직관적 성격을 갖는 것으로 본질적인 것의 터득에서 오는 것이므로 직관의 기도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과의 친교가 직접적이고 내재적인 일치로 발전한 나머지 하느님을 단순히 바라보는 것이다. 자신 안에 특별히 긴밀한 양식으로 내재하는 하느님을 본질적으로 바라보고 직접적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하느님과 친교하기 위해서 우리는 여러 언어와 개념과 이미지 등에 매개수단을 사용한다. 그러나 친교가 깊어지고 하느님이 사람에게 가까이 현존하심에 따라 그러한 매체가 불필요해지며 마침내 하느님의 영(靈)이 사람 안에 직접 내재하여 활동하실 때에는 사람의 사고와 감정과 상상은 하느님과의 '침묵의 일치'를 방해하는 소음이 되기에 이른다. 더우기 인간의 언어와 개념 등은 하느님이 인간 안에서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계시하고 활동하시려는 자유를 제한하기에 이른다. 관상은 이러한 단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관상자는 인간의 자연적인 능력을 모두 침묵시키고 단순히 하느님을 바라보고 사랑하는 것이다. 이처럼 관상을 통하여 하느님과 친밀한 친교를 체험하는 가운데 사람은 자신 안에 내재하는 하느님의 존재가 본질적인 것임을 깨닫게 된다. 하느님은 그 사람에게 도달해야 할 목적이라기 보다는 삶의 주제요 내용이며 생명의 원리가 되기에 이른다.
 

   관상은 이에 도달하는 양식에 따라 수득적(修得的) 관상과 주부적(注賦的) 관상으로 나누어진다. 전자는 개인의 노력으로써 직관의 능력에 도달하는 것으로 능동적'관상이라고도 한다. 마음을 가다듬어 번뇌를 끊고 진리를 깊이 생각하여 무아정적(無我靜寂)의 경지에 몰입하는 불교의 선(禪)은 이에 해당한다 하겠다(비그리스도교 선언문 2). 한편 후자 즉 주부적 관상은 하느님의 은혜로 인하여 신적(神的) 영역을 체험하고 신비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얻는것으로 수동적 관상이라고도 한다. 일상생활 가운데 성령의 감화를 받아 하는님의 본성을 체험하는 경우가 이의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구분에 대하여 과연 인간의 노력으로 관상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의문스럽게 여기는 전해도 있어서 학설은 일치되지 않고 있다. 관상은 완덕에 도달하는 하나의 수단이지 완덕 자체가 아니다. 모든 사람들은 여러가지 모양으로 완덕에 부르시는 하느님은 일반 신자들의 일상생활이나 활동수도회의 활동생활 가운데 관상의 경지에 도달하게 도와주시기도 하고 교회내 관상기도 한다. 관상은 본직적인 것과 '단 한 가지의 필요한 것'(루가 10:41) 즉 하느님께 집중하게 함으로써 우리를 더욱 겸손하고 관대하게 하며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게 한다. 성 이냐시오의 영신수련에서 나오는 관상 및 관상기도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가톨릭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