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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성녀 축일 기념일등

+++ 포르테노네의 복자 오도리코 / 성녀 마크리나 / 놀라의 성 펠릭스 기념일 +++

축일 1월14일(2월3일)
포르데노네의 복자 오도리코, 1회
Beato Odorico da Pordenone Sacerdote
Villanova di Pordenone, 1265 – Udine, 14 gennaio 1331
Etimologia: Odorico = assai ricco, dal tedesco
Blessed Odoric Matiussi of Pordenone
Moved by the many miracles that were wrought at the tomb of the great missionary,
Pope Benedict XIV, in the year 1775, approved the veneration which had been paid to Blessed Odoric.


 
 

성 오도릭은 프리울리 뽀르데노네에서 태어나 15세 때에 우디네에서 프란치스칸이 되었다.

그러나 한적한 곳에서 하느님만 섬기려는 사명을 느끼고 원장의 허락을 받아 은수생활을 시작하였다.

그후 그는 다시 우디네로 돌아와서 주민들에게 설교했는데

수많은 군중들이 몰려다닐 정도로 그의 설교는 성공적이었다. 

1321년경에 그는 서인도에 상륙했고,

1322년과 1328년에는 중국 북구 그리고, 1331년에는 우디네에서 선종하였다.

이 모든 것은 그가 하느님의 계시를 받고서 영혼을 구원하려는 열망 때문에 이곳 저곳을 다녔던 것이다.

(가톨릭 성인 사전에서)
 



   오도리쿠스(Odoricus, 또는 오도리코)는 이탈리아의 프리울리(Friuli)에서 태어나 15세 때에 우디네(Udine)에서 작은 형제회의 회원이 되었다. 그러나 한적한 곳에서 하느님만을 섬기려는 사명을 느낀 그는 수도원장의 허락을 받고 은수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후 그는 다시 우디네로 돌아와서 주민들에게 설교했는데 수많은 군중들이 몰려다닐 정도로 그의 설교는 성공적이었다.
   1321년경에 그는 서 인도에 상륙했고, 1322년과 1328년에는 중국 북부 지방에서 선교활동을 하였으며 1331년에 우디네에서 선종하였다. 이 모든 것은 그가 하느님의 계시를 받고서 영혼을 구원하려는 열망 때문에 이곳저곳을 다녔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공경은 1775년에 승인되었다. 그는 오데리쿠스(Odericus)로도 불린다.
(가톨릭홈에서)

축일 1월 14일
성녀 마크리나
St. Macrina

St. MACRINA the Elder
Santa Macrina l'Anziana
270-340년 

 

성녀 마크리나는 성 대 바실리우스(Basilius, 1월 2일)와
니사(Nyssa)의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3월 9일)의 할머니로서
이들의 성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마크리나 부부는 소아시아의 네오카이사레아(Neocaesarea)와 폰투스(Pontus) 등지에서 살았는데,
갈레리우스와 막시미누스의 황제의 박해 때문에 수많은 고생을 하였다.
그들은 박해자들의 손길을 피하기 위해 숲 속에서 7년이나 은거했으므로 수없이 굶주렸다고 한다.


로마 순교록에는 마크리나가
성 그레고리우스 타우마투르구스(Gregorius Thaumaturgus, 11월 17일)의 제자였다고 한다.
(가톨릭홈에서)

 

*성 대 바실리오 축일:1월2일

*니사의 성그레고리오 축일:3월9일

 

 

축일: 1월 14일
놀라의 성 펠릭스
St. Felix
San Felice da Nola Confessore e martire
Nola, III sec. – 14 gennaio 313 ? (260년경)
Felice = contento, dal latino 

 

 


시리아인으로서 로마 군인이던 헤르미아스(Hermias)의 아들로 태어난 성 펠릭스는
이탈리아의 남부 나폴리(Napoli) 교외인 놀라에서 자랐다.


부친이 사망하자 그는 아버지의 유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놀라의 성 막시무스(Maximus, 1월 15일) 주교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 후 그는 성 막시무스의 보좌로 활약하다가 그의 스승이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를 피하여 사막으로 갔을 때
스승 대신에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다.
그러나 그는 기적적으로 한 천사의 인도를 받고 감옥 문을 나섰다고 한다.

 

데키우스 황제 사후에도 성 펠릭스는 수배 인물이었으나 박해가 종식될 때까지 피신하는데 성공하였다.


성 막시무스 주교가 서거했을 때 신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를 주교로 모셨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연로한 사제이던 퀸투스(Quintus)에게 기울어지자
그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다가 그곳에서 운명하였다.
그러나 그의 무덤은 즉시 많은 기적이 일어나는 곳으로 유명해졌다.


성 바울리누스(Paulinus, 6월 22일)가 놀라의 주교가 되었을 때
그의 선임자인 성 펠릭스에 대한 자료들을 많이 보완하였다.
(가톨릭홈에서)

 

 

 

시리아인으로서 로마 군인이던 헤르미아스(Hermias)의 아들로 태어난 성 펠릭스는 이탈리아의 남부 나폴리(Napoli) 교외인 놀라에서 태어나 자랐다. 부친이 사망하자 그는 아버지의 유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놀라의 성 막시무스(Maximus, 1월 15일) 주교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 후 그는 성 막시무스 주교의 보좌로 활약하다가 그의 스승이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를 피하여 사막으로 갔을 때 스승 대신에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다. 그러던 어느 날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 가서 주교를 도와 주라고 지시하였다. 그러자 그의 몸을 감고 있던 사슬이 풀리고 감옥 문이 열려 마침내 그는 주교에게 갈 수 있었다. 성 펠릭스가 성 막시무스 주교를 찾아갔을 때 주교는 추위와 배고픔으로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데키우스 황제 사후에도 성 펠릭스는 수배 인물이었으나 박해가 종식될 때까지 6개월 동안 마른 우물 속에 숨어 지내다가 이듬해에 박해가 그치자 다시 사제 직무로 돌아왔다. 성 막시무스 주교가 서거했을 때 신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그가 주교가 되기를 원했지만, 그는 자신의 선배 사제인 퀸투스(Quintus)를 주교품에 올리도록 그들을 설득하였다. 그 후 그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다가 260년 1월 14일에 선종하였는데, 서거한 연도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성 펠릭스를 기념하여 봉헌된 성당 중 대표적인 곳이 놀라에 세워진 성당으로, 이곳에 그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성 바울리누스(Paulinus, 6월 22일)가 놀라의 주교가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선임자인 성 펠릭스의 무덤 위에 큰 성당을 지어 성서 내용의 벽화로 내부를 장식하였고, 성인에 대한 자료들을 많이 수집, 정리하여 이후에 만들어진 전기의 자료가 되도록 하였다.

 

*놀라의 성 바울리노 주교 축일:6월22일

 


*로마의 성 펠릭스

축일:1월14일
로마의 사제인 성 펠릭스에 대해 알려진 내용은 거의 없다.
그는 종종 같은 날 기념하는 놀라(Nola)의 성 펠릭스와 혼동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