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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성녀 축일 기념일등

+++ 성녀 히야친타 마리스코티 기념일 +++

축일 : 1월30일

성녀 히야친타 마리스코티

Santa Giacinta Marescotti Religiosa, TOR
Vignanello (VT), 1585 - Viterbo, 30 gennaio 1640
Etimologia: Giacinta = dal nome del fiore
Saint Hyacintha of Mariscotti
Born : 1585 near Viterbo, Italy
Died : 1640 at Viterbo, Italy of natural causes
Beatified : 1 September 1726 by Pope Benedict XIII
Canonized : 24 May 1807 by Pope Pius VII

 

 

 

히야친타는 1585년 비테르보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3회에 들어왔다.

심한 질병을 앓은 후에 엄격한 보속의 생활을 하면서 이웃사랑에도 열심이었다.

1640년 비테르보에서 선종했다.

 

하느님, 복된 동정녀 히야친타를 당신 사랑으로 불타게 하시고

끊임없는 극기의 모범으로 세우셨으니, 그의 전구를 들으시고

저희도 눈물로 죄를 뉘우치고 기쁜 마음으로 당신 사랑 안에 머물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재속프란치스코회 지침서-발자취를 따라서에서)

 

 

 

비냐렐로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그녀는 비떼르보의 프란치스꼬회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고,

비떼르보의 프란치스꼬 율수 3회에 입회하였다.

이때에 그녀는 히야친따라는 이름을 받고 서원하였다.

 

특히 그녀의 애덕은 수도원이란 한계를 뛰어넘을만큼 위대하였고,

따라서 병자와 노인, 가난한 이들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보였다.

그녀는 55세 때에 운명하였다.

 

시성 선언문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

"그녀의 고행은 자신의 삶 전체가 하나의 지속적인 기적임을 보여주고,

그녀의 사랑의 사도직은 수많은 설교보다도 영혼들을 하느님께 인도하는데 유익하였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이탈리아 비테르보(Viterbo) 인근 비냐렐로(Vignarello)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성녀 히야친타 마리스코티(Hyacintha de Mariscottis)는 비테르보의 성 베르나르디누스 수녀원에서 교육을 받았고, 자신과 혼담이 오가던 한 후작이 그녀의 여동생과 결혼하게 된 사건으로 크게 충격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성 베르나르디누스 수녀원에 입회한 그녀는 히야친타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그녀는 수도생활 초기 10여 년간 여전히 사치스럽고 개인적 생활로 수녀회에 나쁜 영향을 끼쳤다. 그러다가 어느 날 중병에 걸려 고해성사를 하면서 과거를 참회하고 진정한 수도자의 삶을 살게 되었다.

   성녀 히야친타의 가장 큰 덕은 애덕으로 수도원이란 한계를 뛰어넘을 만큼 위대하였다. 그녀는 병자와 노인, 가난한 이들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보였다. 비테르보 지역에 전염병이 돌았을 때 그녀는 병자 간호에 헌신하였고 두 개의 자선 단체도 설립하였다. 그러다가 1640년 1월 30일 비테르보에서 세상을 떠났다. 성녀 히야친타는 1726년 9월 1일 교황 베네딕투스 13세(Benedictus XI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807년 5월 24일 교황 비오 7세(Pius V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이때 시성 선언문에 이런 말이 나온다. “그녀의 고행은 자신의 삶 전체가 하나의 지속적인 기적임을 보여주었고, 그녀의 사랑의 사도직은 수많은 설교보다도 영혼들을 하느님께 인도하는데 유익하였다.”
(가톨릭홈에서)

 

*파티마의 복녀 히야친타 축일: 2월20일
*폴란드의 사도 성 히야친토 축일: 8월17일

*비테르보의 성녀 로사 축일:9월4일(3월6일)

 


 

 

 율수3회(Third Order Reguar)의 분리

13세기 말경을 거치면서 3회원들 중에서는 은둔생활을 함으로써 수도생활의 형태를 지니는 공동체가 생기게 되었다. 이에 1295년 교황 보니파시오 8세는 북독일에서 공동생활을 하는 회개의 형제들에게 성무일도를 바치는 경당을 가질 수 있다는 허락을 해주었다. 1323년 교황 요한 22세는 <Altissimo in divinis>(공경하올 지극히 높으신 분)이라는 칙서로 이들의 공동생활을 공식적으로 인준하였다. 이로써 재속3회와 율수3회가 법적으로 분리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재속3회 안에서 수도생활을 하려는 단체들이 많아져 보다 엄격한 조직과 규정의 통일성이 요구되었다. 그중 마르시아노의 안젤리나(Angelina)는 1397년 프란치스코 3회의 회칙을 지키면서도 엄격한 은둔생활을 하는 여성들만을 위한 공동체를 세우게 되었다. 이와 비슷한 5개의 여자 수도회가 생기자 안젤리나는 총장으로 일하게 되고 교황에게 인준을 신청했다. 그녀는 여성들만을 위한 율수3회의 창설자로 여겨진다.

남자들의 공동 생활도 발전해 갔다. 1401년 1월18일 보티파시오 9세는 남자 공동체에서 자신들의 총장을 선출하고 수도서원을 발할 권한을 주면서 남자수도3회를 인가하였다. 1413년에는 요한 22세 교황이 마려해준 규칙에 따라 가난,순명,정결 서원을 하였으며, 성당과 회색수도복, 숙소등이 마련되었다. 또한 서원 전에 1년의 수련기를 갖게 되고 정기적인 회합 및 자신들의 시찰자를 선출하게 되었다.

1443년에 리제(Liege)의 주교는 그동안 지역적으로 생활하던 수도공동체가 제퍼런(Zepperen) 공동체를 모원으로 가지도록 요구하였고 소집하였다. 이리하여 하나로 일치된 남자들의 공동체도 구성되었다. 1447년 니콜라오 5세 칙서<Pastoralis officii>로 이탈리아에 있는 모든 3회 은둔 공동체는 율수3회로 통합 할 것을 명하였다.

1521년 교황 레오 10세는 니콜라오 회칙(1289년)에 성대서원을 할 수 있는 10개의 장을 첨가한 회칙을<Inter coetera> 칙서로 인준해 주었다. 이로써 재속3회의 생활 양식과 다른 수도서원의 생활 양식을 사는 율수3회는 비로소 법적으로나 생활양식으로나 재속 3회와 완전한 분리가 이루어졌다.
(김창재다미아노ofm, 강의록 간추린 프란치스칸 역사, 2006프란치스칸 영성학교, 83-84쪽에서)

 

율수3회(Tertius Ordo Regularis,  T.O.R.)
13세기 부터 재속 3회 내에서 수도 생활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들은 단체를 구성하고 자선사업을 하며 공동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1413년 교환 요한 22세가 칙서를 보내서 총회를 가질수 있도록 하였다.
1회와 똑같은 서원을 하며, 1회와 3회의 이상을 결합한 고유의 회칙을 갖고 있다.
1회 세가족과 함께 재속프란치스코회의 영적. 사목적 보조를 한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진출하지 않았다.
 

성 프란치스코의 영적 가족들
1회: 작은형제회(O.F.M.).꼰벤뚜알프란치스코수도회(O.F.M.conv.),카푸친작은형제회(O.F.M.cap.)
2회: 클라라회(O.S.C.)
3회: 재속프란치스코회(O.F.S.), 율수3회(T.O.R.), 수도 3회
(재속프란치스코회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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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우리가 원치 않는 일을 하도록 강요당할 때, 두 가지로 반응할 수 있다.

하나는 힘껏 저항해서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단 그것을 받아들인 후 최선의 상황으로 바꾸어 가는 것이다.

성녀 히야친타는 전자를 선택했다.

그는 막내 여동생이 자기보다 먼저 결혼한 것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했다.

보다 못한 가족들이 그를 프란치스코 수녀원에 강제로 입회시켰는데,

그는 그곳에서도 제멋대로 생활함으로써 주위 사람들에게 크나큰 어려움을 주었다.

 

그렇게 지낸 지 10년쯤 되던 해에 히야친타는 심각한 질병을 앓게 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되었고,

삶의 방법을 바꾸어 마침내는 자기 수련과 자선가의 모델이 되었다.

 

성녀 히야친타는 ‘아무리 늦어도 변화는 가능하다.’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변화는 결코 쉽지 않다.

철저한 자기 성찰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영혼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 안에 이기심, 교만, 탐욕처럼 온갖 부정적인 것들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가장하기보다는 억지로라도 그것들을 직시해야 한다.

자신의 어두운 면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변화의 첫 단계다.

성녀 히야친타처럼 그것을 직시하고 인정할 때,

우리의 어두운 내면에 진리와 희망, 그리고 사랑의 빛이 채워질 수 있다.

나는 변화를 두려워하는가?

변화하지 않고 이대로 산다면 어떻게 될까? 자신을 정직하게 성찰하자.

(까리따스수녀회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