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일:6월 3일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 St. Carolus Lwanga St. Charles Lwanga and Companions San Carlo Lwanga e compagni Martiri Born:1865 at Bulimu, Buganda, Uganda Died:burned to death in 1886 at Namugongo, Uganda Canonized:18 October 1964 by Pope Paul VI at Rome, Italy Patronage:African Catholic Youth Action, Catholic youth, converts, torture victims Carlo = forte, virile, oppure uomo libero, dal tedesco arcaico = strongly, it turns them, or free man, from the archaic German 1885~1887년 사이에 우간다의 무왕가왕은 종교를 증오하여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죽였다. 이 중에 어떤 이들은 왕의 궁전에서 일하던 사람이었고 또 어떤 이들은 왕의 개인 수행원들이었는데, 그 가운데 가롤로 르왕가와 21명의 동료들이 있었다. 그들은 가톨릭 신앙을 열렬히 신봉하여 왕의 불순한 요구를 묵묵히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기에 몇몇은 참수형으로, 또 다른 이들은 화형으로 순교했다. 우간다의 순교자 시성식에서 행한 교황 바울로 6세의 강론에서 (AAS 56[1964], 905-906) 순교자들의 영광은 재생의 표지입니다. 이 아프리카의 순교자들은 승리자들의 목록인 이른바 순교록에 지극히 비극적이면서도 아름다운 한 페이지를 더해 줍니다. 이들은 옛 아프리카의 그 놀라운 이야기들과 참으로 어울리는 합당한 페이지를 더해 주고 있습니다. 미약한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결코 되풀이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는 이야기들입니다. 실리의 순교자들, 카르타고의 순교자들, 성 아우구스띠노와 프루덴시오가 말해 주는 우티카의 "흰 군대"라는 순교자들, 성 요한 크리소스또모가 큰 공경심으로 기록하는 에집트의 순교자들, 그리고 반달족의 박해 시에 순교한 분들- 이분들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 후에 이에 못지 않게 용감하고 찬란한 새로운 행위가 뒤따르리라고 누가 짐작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프리카의 순교자와 성인들, 즉 치쁘리아노, 펠리치따스, 뻬르뻬뚜아, 그리고 위대한 아우구스따노와 같은 뛰어난 역사적 인물들에다 오늘날 우리가 그토록 사랑하는 가롤로 르왕가, 마티아 물룸바 칼렘바와 그 동료 20명의 이름을 더하리라고 누가 예측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를 위해 죽어 간 성공회의 다른 형제들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들 아프리카의 순교자들은 참으로 새시대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종교 박해와 종교적 충돌의 시대가 아닌 새로운 그리스도 생활, 새로운 사회 생활로 이룩된 새 시대를 말합니다. 새 시대의 첫 열매인 이 순교자들의 피로 물든 아프리카 대륙은 자유를 얻어 독립된 아프리카로 일어서고 있습니다. 나는 하느님께서 너무도 참혹하고 너무도 보배로웠던 이 희생이 마지막 희생이 되게 해주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들을 앗아간, 일찍이 들어 보지 못하고 깊은 뜻을 지닌 이 비극은 새로운 민족의 윤리교육과 새로운 영신적 전통의 기초를 위해 충분한 몇 가지 대표적인 요소들을 제공해 줍니다. 이 비극은 위대한 인간 가치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나약한 타락으로 노예가 되어 얼룩지고 병들어 버린 원시적인 생활 방식으로부터 더 나은 정신적 표현과 더 나은 사회형태를 향해 열려 있는 새로운 문명에로의 전환을 상징해 주고 또 증진시켜 줍니다. (가톨릭홈에서) 성 카롤루스 르왕가(Carolus Lwanga, 또는 가롤로)와 요셉 무카사(Josephus Mukasa)와 동료 순교자들은 일명 우간다의 순교자들이라고 불리는데, 이분들의 이야기는 하느님의 은총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알 수 있는 참으로 감동적인 순교사이다. 중앙아프리카 내륙지방에 살던 미개한 부족들에게 처음으로 가톨릭 선교사를 파견한 것은 1879년의 일이다. 라비제리 추기경의 화이트 파더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리고 우간다에서는 극히 우호적이었던 무테사(Mutesa) 추장의 도움으로 약간의 진전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후계자인 무왕가(Muwanga)는 자기 부족 가운데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뿌리 뽑으려고 하였다. 그들 중에는 열심한 부하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요셉 무카사였다. 추장은 그의 첫 희생자로 무카사를 참수하였다. 이때가 1885년 11월 15일이었다. 무카사의 지위를 승계한 카롤루스 르왕가는 추장 몰래 4명의 예비신자에게 세례를 주었는데, 그중에는 13세의 소년 성 키지토(Kizito)도 있었다. 추장은 또 다시 박해를 일으켜 모든 신자들을 색출하여 잡아들였다. 1886년 주님 승천 대축일인 6월 3일에 모든 신자들은 옷이 벗겨진 채 꽁꽁 묶였고, 사형 집행자들은 밤이 새도록 노래를 부르며 그들을 괴롭히다가 모두 살해하였다. 또 다른 순교자는 성 마티아 무룸바(Matthias Murumba)인데, 그는 처음에 프로테스탄트 선교사의 영향을 받았으나 끝내는 리빈하크 신부에게 영세를 받았다. 또 다른 사람은 키고와의 추장 성 안드레아 카그와(Andreas Kagwa)인데, 그는 아내의 영향으로 개종하고 주위의 사람들에게 교리를 가르쳐 영세시켰다. 카롤루스 르왕가와 마티아스 무룸바 등 19명의 순교자들은 1920년 6월 6일 교황 베네딕투스 15세(Benedictus XV)에 의해 성대하게 시복되었다. ‘순교자들의 피는 그리스도인들의 씨앗’이란 말처럼, 그들의 순교 이후 즉시 500명 이상이 영세하고 3천 명 이상의 예비신자들이 쇄도하여 오늘의 우간다 교회를 꽃피우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분들은 모두 1964년 10월 18일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성되었다. 참고자료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상) -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29-32쪽.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4권 - '르왕가, 가롤로',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1997년, 2290-2291쪽. L. 폴리 저, 이성배 역, 매일의 성인, '성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 서울(성바오로), 2002년, 133-134쪽. (가톨릭홈에서) 22명의 우간다 순교자들 가운데 한 사람인 가롤로 르왕가는 대부분의 아프리카 열대 지방에서 청년들과 여러 가톨릭 활동 단체의 수호자이다. 그는 바간단 지도자인 므왕가의 "동성애 요구"로부터 동료 시종들을 보호했고, 그들이 동성애 요구를 거절했다고 해서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가톨릭 신앙으로 그들을 격려하고 가르쳤다. 자기 자신이 부도덕한 행위에 복종하고자 하지 않았으며 또 자기 친구들의 신앙을 보호하려는 노력 때문에 가롤로는 므왕가의 명령으로 1886년 6월 3일 나무공고에서 화형되었다. 가롤로는 처음에 마울루궁구 추장의 거처에 있는 두 명의 시종으로부터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배웠다. 그가 예비 신자로 있을 때 그는 추장의 시종장인 요셉 무카소의 조수로 추장의 거처에 들어 갔다. 무카소가 므왕가에게 저항하도록 아프리카의 청년들을 격려했다는 이유로 순교하게 된 날 밤, 가롤로는 세례를 자청하여 받았다. 그의 친구들과 함께 감옥에 갇힌 가롤로의 하느님께 대한 신앙과 용기는 그들이 정결하고 충실하게 머물러 있도록 힘을 불어 넣어 주었다. 22명의 순교자들은 1964년 10월 18일 교황 바오로 6세 때 시성되었다. 가롤로 르왕가처럼 우리는 모두 우리 생활의 표양으로써 그리스도인 생활에 대한 증인이 되고 스승이 된다. 우리는 모두 말로든 행동으로든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하기 위하여 불림을 받은 것이다. 윤리적, 육체적 유혹을 당할 때 우리 신앙을 용감하고 흔들림 없이 유지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생활하신 것처럼 생활하는 것이다. 1969년 아프리카의 순방에서 교황 바오로 6세는 22명의 젊은 우간다 개종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언제나 쉬운 일은 아니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영적 나이 현재 우간다에 속하는 부간다 왕국의 므왕가 왕은 1885년 시종장인 요제프 무카사가 왕의 불멸성을 부인하고 성공회 선교사를 살해한 것에 대해 비판하자 그를 죽이고 가롤로 르왕가를 그 자리에 임명하였으나 그 역시 그리스도인이었다. 몇 개월 후 왕은 부도덕한 행위에 가담하기를 거부한 한 시종과 그에게 그리스도교를 전한 데니스 세부그와오라는 기사를 사형시켰다. 그러고 나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시종들을 모두 소환하여 배교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사형을 선고하였다. 그때 순교한 사람들은 거의 10대 후반이거나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었는데 그들은 혹독한 고문 끝에 산 채로 화형을 당하거나 참수당하였다. 가롤로 르왕가와 다른 순교자들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기꺼이 참아 받고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영적인 성숙함을 보여 주었다. 우리에게도 영적인 나이가 있다. 육체의 나이는 한 해가 지나면 자연적으로 한 살을 더 먹게 되지만 영적인 나이는 그런 자연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얼마나 진리를 갈구하고 있으며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열정을 바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영원한 세계에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 영적인 성숙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다. 내 영적인 나이는 몇 살인가? 내년 이맘때쯤 내 영적인 나이는 몇 살쯤 될까? 날마다 조금씩이라도 영적으로 성숙해 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까리따스수녀회홈에서) 축일:6월3일 성녀 클로틸다 Santa Clotilde Regina dei Franchi Lione (Francia), ca. 474 - Tours (Francia), 3 giugno 545 Born: 475 at Lyons, France Died: 545 at Tours, France of natural causes; buried in the church of Saint Genevieve, Paris, France Clotilde = illustre in battaglia, dall'antico franco(illustrious in battle, from the ancient franc) 성녀 클로틸다(Clotildis)는 부르고뉴(Burgundy) 공국의 국왕 칠페릭의 딸로서 프랑스의 리옹(Lyon)에서 태어나 492년에 프랑크 왕국의 초대 국왕 클로비스(Clovis)와 결혼하였다. 그녀는 국왕인 남편을 그리스도인으로 개종시켰는데, 이 일은 왕이 ‘클로틸다의 하느님’께 기도하여 패할 듯한 전쟁을 승리로 이끈 496년 성탄절을 기하여 일어났다. 클로비스 국왕이 511년 사망하자 그녀는 네 아들과 함께 살다가 투르(Tours)로 가서 병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다가 여생을 조용히 마쳤다. 참고자료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하) - '성녀 클로틸다 왕후',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379-382쪽. (가톨릭홈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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