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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욱현 신부님

~ 연중 제 16주일 / 조욱현 신부님 ~

 

연중 제16주일: 나해

 

오늘의 전례는 지난주의 “선교사명”의 주제를 발전시키고 있다. 목자와 양 떼라는 상징적 표현들이 이것을 말해주고 있다. 예레미아 예언자는 당시의 왕들과 지도자들이 ‘목자’들이라고 하기에는 부당하다고 비난한 후, 이스라엘 백성을 귀양살이에서 돌아오게 하시고 그들에게 당신 마음에 맞는 목자들을 주심으로써 돌보아 주시리라는 것을 예언한다(예레 23,3-4 참조). 그리고 마지막 날 이상적인 왕이며 목자이신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에게 성덕과 정의를 펼쳐 보이시리라고 예고한다. 그분은 ‘정통 왕손’, ‘야훼, 우리를 되살려주시는 이’로 불릴 것이라고 한다.

 

복음: 마르 6,30-34: 그들은 목자 없는 양과 같았다.

 

복음에서는 사도들이 선교활동의 결과를 예수께 보고하고 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사도들에게 따로 한적한 곳으로 가서 좀 쉬자고 하신다(31절). 군중들이 많이 밀려들었기 때문에 한적한 곳을 찾아 떠났지만, 군중들은 이미 알고 앞질러 그곳으로 갔기 때문에 실패하고 만다.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33-34절). 측은히 여기시는 주님의 모습은 양 떼가 흩어지는 것을 보살필 뿐 아니라, 양 떼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시고, 기적의 빵으로서 양육시키고자 애쓰시는 그런 목자를 의미한다.

 

예수님은 이런 의미에서 이상적인 목자이시다. 왜냐하면 첫째로 목자는 자기의 양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마음 깊이 느낄 수 있을 만큼 사랑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힘보다는 사랑과 헌신과 부드러움으로 나타나는 예수님이시다(요한 10,11-12 참조).

 

두 번째는 양 떼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함께 느껴 그들과 하나가 되는 분이시다. 예수님은 군중들에게 빵의 기적을 통하여 그들과 완전히 하나가 되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마르 6,37 이하 참조). 이 빵의 기적에서 사도들의 태도는 바로 교회 안에서 우리의 봉사정신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말해주고 있다. 즉 다른 사람들이 하느님의 은총으로 성장하고 강해지도록 그들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고 봉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양 떼의 주인으로서가 아니라 그들을 위한 종으로 느낄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마태 20,25-28 참조).

 

세 번째로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홀로 있는 것과 휴식의 필요성을 실천하시는 분이시다. 예수께서는 하느님과의 일치를 통해 하느님의 뜻을 더 잘 이루실 수 있었고 또 필요한 빛과 지혜를 얻기 위하여 침묵과 기도를 위한 휴식을 필요로 하셨다(마르 6,45-47 참조).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봉사자로 일하는 사람들은 하느님 말씀의 충실한 해석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과 대화할 시간과 공간을 가져야 한다. 즉 기도와 묵상이 없는 봉사활동은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유다인들과 이방인들을 화해시켜 ‘한 몸을’ 이루게 하셨다고 한다(에페 2,14-16 참조). 즉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을 통해 이루신 화해의 의미를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즉 서로 대립하는 두 민족으로부터 “하나”(에페 2,14), “새 인간”(에페 2,15), “한 몸”(에페 2,16)이 생겨난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씀은 교회 안에서 모든 것이 하나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사목자들은 먼저 자신이 사랑 안에서 성장하고 또한 그들이 맡은 신자들이 사랑 안에서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증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목자들이든 신자들이든 모두가 다 같이 서로 노력하는 여기에 우리 교회의 미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도록 우리를 그분께 맡겨드려야 한다. “그래서 그분을 통하여 우리 양쪽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되었습니다.”(에페 2,18).

 

오늘 복음의 내용은 설교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신자들을 제외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목자는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모범에 따라 행동해야 하고, 또 신자들은 사랑으로 충실히 목자의 소리에 응답하여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군중들과 한데 어우러져 그들과 하나가 되신 것처럼 그들을 사랑하고 하나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주님의 말씀을 듣는 군중들의 마음의 자세가 중요하다. 우리가 비록 여럿이지만, 다양성을 표현하고 있지만, 하느님 안에, 주님의 이름 안에 진정한 하나, 일치를 이룰 수 있는 우리가 되는 것이 오늘 독서와 복음을 올바로 알아듣고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삶이 우리 안에 항상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표징이 되어 드러날 수 있도록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