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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연중 제 2주간 월요일 / 오상선 신부님 ~

 1월 16일 연중 제2주간 월요일

 

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5,1-10
1 모든 대사제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뽑혀 사람들을 위하여
하느님을 섬기는 일을 하도록 지정된 사람입니다.
곧 죄 때문에 예물과 제물을 바치는 것입니다.
2 그는 자기도 약점을 짊어지고 있으므로,
무지하여 길을 벗어난 이들을 너그러이 대할 수 있습니다.
3 그리고 연약한 탓에 백성의 죄뿐만 아니라
자기의 죄 때문에도 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4 이 영예는 어느 누구도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라,
아론과 같이 하느님에게서 부르심을 받아 얻는 것입니다.
5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도 대사제가 되는 영광을 스스로 차지하신 것이 아니라,
그분께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하고
말씀하신 분께서 그렇게 해 주신 것입니다.
6 또 다른 곳에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
7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8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9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으며,
10 하느님에게서 멜키체덱과 같은 대사제로 임명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신랑이 혼인 잔치 손님들과 함께 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8-22
그때에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20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21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22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사제는 누구인가? 사제는 흔히 '착한 목자'로 비유하지만 언젠가 어느 신부님이 사제를 '버스 기사'에 비유한 이야기를 참 감동적으로 읽은 적이 있습니다.

1) 버스는 남녀 노소 모두를 위한 '대중교통 수단'입니다. 그러므로 버스 기사는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만이 아닌 모든 사람을 버스에 태웁니다. 마찬가지로 사제는 남녀 노소 불문하고 모든 이에게 자신을 열어 놓아야 합니다. 사제는 자기 혼자만 즐기기 위한 경기용 자동차, 스포츠 카의 운전자나 부자만을 위한 고급 승용차 기사가 아니고, 모든 사람을 위한 버스 기사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사제는 원하는 사람 모두를 차에 태우는 버스 기사처럼, 이 사람 저 사람 가리지 않고 모두 받아들여야 합니다.

2) 그런데 버스에 '노약자를 위한 특별석'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친절한 버스 기사는 노약자들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으면 승객들에게 권고를 해서라도 자리를 마련해 줍니다. 마찬가지로 사제는 모든 이를 위한 사람이 되어야 하지만, 특별히 늙고 병들고 약하고 소외 받는 이들을 위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3) 버스 기사는 기분 내키는 대로, 자기 편한 대로 운전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노선'을 충실히 따라가야 합니다. 그리고 노선을 따라 가면서 승객들이 불안하지 않게 조심스럽게 운전해야 합니다. 버스 기사가 기분 내키는 대로가 아니라 정해진 노선대로 운전하듯이, 사제도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최고의 규범으로 삼고 사셨듯이 사제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버스가 규정된 노선을 지키지 않고 난폭하게 달린다면 승객들이 불안에 떨게 되듯이, 사제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길에서 벗어나서 하느님의 뜻이 아닌 자기 뜻대로 산다면 신자들에게 두려움과 괴로움을 안겨 주게 됩니다.

4) 버스는 정해진 노선을 지켜가면서 '정류장'마다 정차해서 기다리던 사람들을 태우고 갑니다. 마찬가지로 사제는 인생 곳곳에 서 있는 이들을 교회라는 버스에 싣고 목적지인 하느님 나라로 향합니다. 시간에 쫓긴다고 정류장을 그냥 지나쳐서 간다거나 뛰어 오는 사람이 있는데도 그냥 출발해 버린다면 좋은 기사가 아닙니다. 좋은 버스 기사는 조금 늦게 오는 승객들을 친절하게 기다려 주듯이, 좋은 사제라면 인생 여정에 곳곳에서 신앙의 문을 두드리는 이들에게 언제라도 문을 활짝 열어주고, 조금 늦게 오는 이들을 짜증내지 않고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주기도 해야 할 것입니다.

5) 버스 기사가 출발 전에 버스를 잘 점검하고 기름도 충분히 넣어 두는 것은 '기본적 준비'에 속합니다. 중간에 기름이라도 떨어져서 버스가 서 버린다면 곤란한 일이지요. 마찬가지로 사제도 자신의 직무를 올바로 수행하기 위해 평소에 충분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기도와 영성 생활이 바로 그것입니다. 외적인 활동과 취미 생활에 정신을 빼앗겨서 기도와 영성 생활을 소홀히 한다면 언젠가는 기름이 다 떨어진 버스처럼, 고장난 버스처럼 중도에 서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식사마저 하실 수 없이 바쁜 중에서도 새벽이나 밤늦게 홀로 기도하셨다고 성서는 여러 번 전합니다. 기도는 예수님을 따르려는 이들에게는 필수적인 것으로서 기도 없는 활동은 오래가지 못하고, 기도하지 않고서는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어려움과 유혹을 이겨나갈 수 없습니다.

6) 버스 기사는 운전석에 '홀로' 앉아 있습니다. 오후나 밤 시간에는 피곤에 지쳐서 졸음이 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누구라도 옆에서 지켜봐 주고, 피곤하고 졸릴 때에는 말이라도 붙여 주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사제는 인생의 반려자가 없이 홀로 살아야만 합니다. 때로는 힘들기도 하고 외롭기도 할 것입니다. 예수님도 어렵고 힘들었던 순간에 홀로 계셨습니다. 사제 역시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보이지 않게 하느님께서 돌보아 주시고 신자들의 기도와 격려가 항상 뒤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약하면, 교회라는 버스의 기사는 사제이고 승객은 신자들입니다. 이 버스의 종점은 하느님 나라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 버스를 탈 수 있습니다. 이 버스에 탄 사람들은 모두 한 가족입니다. 이 버스에서는 노약자석이 유명 무실하지 않습니다. 기사인 사제는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 길이 막혀도 인내롭게 종점을 향해 갑니다. 승객인 신자들은 버스 기사가 운전을 잘 할 수 있도록 기도와 격려를 아끼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버스 기사는 때로는 피곤하고 힘들더라도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무엇보다도 보이지 않게 자신을 인도해주는 운전 기사, 예수 그리스도라는 유능한 분에게서 위로와 힘을 거듭 얻습니다.

오늘 히브리서의 저자는 사제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모든 대사제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뽑혀 사람들을 위하여 하느님을 섬기는 일을 하도록 지정된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도 약점을 짊어지고 있으므로, 무지하여 길을 벗어난 이들을 너그러이 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연약한 탓에 백성의 죄뿐만 아니라 자기의 죄 때문에도 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이 영예는 어느 누구도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부르심을 받아 얻는 것입니다."(히브 5,1-4) 예수님이 바로 그러한 대사제였고 사제들은 작은 예수님처럼, 만인을 위한 모든 것이 되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사제가 많아지기를 기도합니다.

사제는 하늘 나라의 율법을 잘 지켜야 하지만 율법주의에 빠져서는 안 되고, 율법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잘 헤아려 율법이 참으로 완성될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오늘 복음은 그런 의미에서 율법주의에 빠져 단식을 왜 하는지 이유도 모르고 하면서 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율법의 완성은 곧 사랑임을 가르치시는 대사제 예수님의 단호한 외침입니다.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마르 2,19)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마르 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