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주간 금요일
제1독서
<많은 싸움을 견디어 냈으니 확신을 버리지 마십시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10,32-39
형제 여러분, 32 예전에 여러분이 빛을 받은 뒤에
많은 고난의 싸움을 견디어 낸 때를 기억해 보십시오.
33 어떤 때에는 공공연히 모욕과 환난을 당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그러한 처지에 빠진 이들에게 동무가 되어 주기도 하였습니다.
34 여러분은 또한 감옥에 갇힌 이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었고,
재산을 빼앗기는 일도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보다 더 좋고 또 길이 남는 재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35 그러니 여러분의 그 확신을 버리지 마십시오.
그것은 큰 상을 가져다줍니다.
36 여러분이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 약속된 것을 얻으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
37 “조금만 더 있으면 올 이가 오리라. 지체하지 않으리라.
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그러나 뒤로 물러서는 자는 내 마음이 기꺼워하지 않는다.”
39 우리는 뒤로 물러나 멸망할 사람이 아니라,
믿어서 생명을 얻을 사람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씨를 뿌리고 자는 사이에 씨는 자라는데, 그 사람은 모른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4,26-34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26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27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28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줄기가, 다음에는 이삭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이삭에 낟알이 영근다.
29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곧 낫을 댄다. 수확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30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
31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32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33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처럼 많은 비유로 말씀을 하셨다.
34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당신의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풀이해 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두 가지 비유로써 하느님 나라에 대해 가르치십니다. 먼저 첫번째 비유에 잠시 머무릅니다.
비유에 등장한 "어떤 사람"이 열심히 움직입니다. 씨를 뿌리고, 자고 일어나고 하면서 돌보고, 익으면 낫을 댑니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마르 4,27)고 합니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4,28) 한다고 하는데, 이 "저절로"라는 말씀에는 사실 창조주이시고 아버지이시고 농부이신 하느님의 부단한 노고와 수고의 땀냄새가 배어 있습니다. 그분은 지극히 겸손하셔서 당신의 업적을 드러내지 않으시고 우연인양, 자연의 원리 뒤에 머무르십니다.
그래서 "사람"은 모릅니다. 못 알아차리고 못 알아듣습니다. 알려고 하지도 않는 이도 많을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4,33) 말씀을 하시지만, 진리는 육신이 기관으로 듣는데 그쳐서는 그 표면을 뚫고 들어갈 수 없고, 마음의 귀를 거쳐야 그 정수에 가 닿을 수 있기에, 여전히 "사람은 ... 모릅니다."(4,27)
"그러나 당신의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풀이해 주셨다."(4,34)고 하네요. 주님 곁의 제자들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따로" 더 각별하고 더 친밀하게 그들에게 일러주시니 말입니다. 뭘 알려주셨을까요?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일하시는 방법이 이렇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지 않았을까요? 하느님께서는 세상창조 때부터 지금까지 성실히 일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조용히 드러나지 않게 직접 혹은 누군가를 통하여 일하십니다. 결코 우리처럼 생색을 내시지도 않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 힘으로 이룰 수 있는 이상향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능력으로만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그럼 우리는 할 것이 아무것도 없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느님이 이루시지만 우리의 소소한 협력을 필요로 하십니다. 씨를 뿌리고, 자고 아침에 일어나 돌보고, 익으면 낫을 대어 추수도 합니다. 이것이 하느님 나라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어도 우리의 보잘것없는 협력으로 하느님께서는 멋지게 당신의 나라를 성장시켜 열매맺게 하십니다.
벗님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매일 아침 일어나 기도하고 묵상하고 미사를 봉헌하고, 벗님들과 대화를 나누고 밥도 준비하고 청소도하고 공부도하고 심지어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조차도 하느님 나라 건설에 기여를 하는 것이랍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삶이 무료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보잘것없는 일거수일투족이 하느님 나라 건설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이미 빛을 보았습니다. 빛이신 하느님을 본 것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저자는 "빛을 본 뒤에 많은 고난의 싸움을 견디어 낸 때"(히브 10,32)를 기억하라고 합니다. 이렇게 "따로" 챙기시는 주님의 각별한 사랑과 은총 뒤에 따라오는 건 무엇일까요? 세상의 부귀영화가 아니라 모욕, 환난, 재산 몰수 등등의 고난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영적 성장을 한편으론 원하면서도 마음의 중심이 아직 세속에 치우쳐 있는 이들에게는, 어쩌면 "따로" 불러 쏟아주시는 주님의 각별한 사랑의 가르침이 적잖게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습니다. 부귀영화가 아니라 고난이라니... 하느님의 나라와 세상의 나라가 가치와 목적과 방향을 달리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그건 하느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이미' 와 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까닭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럼, 우리가 잘 모르는 사이에도 이렇게 확장되고 완성되어가는 하느님 나라에 대해 확신을 간직하고 믿음을 견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실 우리도 여느 군중과 진배 없이 여전히 못 알아듣습니다. 그런 우리를 제자들처럼 "따로" 불러 사랑의 언어를 조곤히 들려주시는 예수님께 기대어, 그분 심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어떨까요? 그분 심장에서 자비의 혈류가 흐르는 소리, 사랑의 박동이 뛰는 소리, 연민의 눈물이 넘치는 소리를 듣게 되면, "빛을 받은 뒤에 많은 고난의 싸움"(히브 10,32)이 있음을 체험으로 이미 안다고 한들, 그로인한 두려움에 주저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우리는 "그보다 더 좋고 또 길이 남는 재산"(히브 10,34), 즉 하느님의 나라를 이미 소유하고 있으니까요.
자연스레 두 번째 비유로 넘어가게 됩니다. 하느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답니다. 겨자씨를 본 적이 있으세요? 정말 작더라구요. 좀 굵은 밀가루 정도라고 할까요. 이 작은 씨앗 안에 이토록 큰 나무가 이미 담겨 있습니다. 사실 꽃씨들을 보고 그 꽃을 보면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잉태된 순간의 모습이 지금 우리의 모습이라니 상상이나 갑니까.
하느님 나라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그런 나라임에 틀림 없습니다. 보잘것 없는 씨앗 하나가 그렇게 크고 멋진 나무가 되고, 그 작은 꽃씨 하나가 그렇게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그 작은 씨앗 하나가 서른 배, 육십배, 백 배의 열매를 맺고, 그 작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 이렇게 멋진 사람을 만들어낸다면, 하느님의 나라는 얼마나 더 멋지고 아름답고 놀랄만한 것이겠습니까?
이런 작은 미물들 안에 숨어있는 생명의 신비를 간파하는 사람은 이미 하느님 나라를 보고 알게 된 것이나 진배 없습니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깨달은 자에게는 삼라만상이 부처"라고 하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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