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성령 강림 대축일 / 오상선 신부님 ~

성령 강림 대축일(사도2,1-11)(1코린 12,3ㄷ-7.12-13)(요한20,19-23)

 

제1독서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2,1-11
오순절이 되었을 때 사도들은 1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2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 안을 가득 채웠다.
3 그리고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 갈라지면서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4 그러자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성령께서 표현의 능력을 주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5 그때에 예루살렘에는
세계 모든 나라에서 온 독실한 유다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6 그 말소리가 나자 무리를 지어 몰려왔다.
그리고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저마다 자기 지방 말로 듣고 어리둥절해하였다.
7 그들은 놀라워하고 신기하게 여기며 말하였다.
“지금 말하고 있는 저들은 모두 갈릴래아 사람들이 아닌가?
8 그런데 우리가 저마다 자기가 태어난 지방 말로 듣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인가?
9 파르티아 사람, 메디아 사람, 엘람 사람,
또 메소포타미아와 유다와 카파도키아와 폰토스와 아시아 주민,
10 프리기아와 팜필리아와 이집트 주민,
키레네 부근 리비아의 여러 지방 주민,
여기에 머무르는 로마인,
11 유다인과 유다교로 개종한 이들,
그리고 크레타 사람과 아라비아 사람인 우리가
저들이 하느님의 위업을 말하는 것을
저마다 자기 언어로 듣고 있지 않는가?”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우리는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2,3ㄷ-7.12-13
형제 여러분,
3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습니다.
4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5 직분은 여러 가지지만 주님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6 활동은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활동을 일으키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7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12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
13 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모두 한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19-23
19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21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기쁨으로 지내온 50일간의 부활 시기는 오늘 성령 강림 대축일로 막을 내립니다. 제1독서인 사도행전에서는 제자들이 성령을 받은 오순절 체험을 이야기하고, 제2독서는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하느님 백성으로 새롭게 탄생한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요한 복음은 세상 창조 때 성부 하느님께서 하셨듯, 인간에게 숨을 불어넣으시는 성자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늘 미사 때 듣게 되는 성경 구절들을 잘 귀기울여 듣다 보면 "가득"이라는 말씀이 자주 반복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온 세상을 채운 주님의 영(입당송), 온 집안을 가득 채운 성령의 현존(제1독서), 성령으로 가득 찬 제자들(제1독서), 온 세상이 당신이 지으신 것으로 가득하다는 시편 저자의 고백(화답송), 우리 마음을 성령으로 가득 채워달라는 청원(복음환호송),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찼다는 영성체송까지...

이 말씀들에 머무르며 온 세상 만물, 공기와 사물, 사람, 모든 존재를 가득 채우고 계신 성령께 머무릅니다. 과연 온 누리는 성령과 함께 새로워지고 기쁨이 넘실대고 있습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 곁을 떠나신 후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주시고, 그렇게 오신 보호자, 주님의 영께서는 우리와 모든 피조물, 온 누리 어디든 현존하시고, 무엇이든 가르치시며, 만물을 지탱하십니다

"성령을 받아라!"(요한 20,22)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며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으로 예수님의 숨이 그분에게서 우리에게로 옮겨옵니다. 숨이 곧 영입니다. 진리의 영, 사랑의 영, 평화의 영, 용서의 영... 그분 육신과 존재 안을 내밀하게 채워 흐르던 숨이 고스란히 내게로 흘러들어와 나를 채웁니다. 나의 것이 됩니다. 숨을 나누어 받는 것은 호흡을 주고 받는 것이고, 생명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사랑은 이처럼 근원적이고 절실합니다. 숨이 곧 생명이니까요.

주님께서 내게 숨을 불어넣을 때 그 거룩하고 복되고 선한 숨을 최대한 많이 받아들이려면 나의 내부가 가능한 최대로 비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비운 만큼 주님의 숨결, 주님의 영이 가득 채워질 수 있으니까요. 그분으로 가득 찬 여기에 지금 "우리가 있습니다!"

"가득"이란 말씀에서 성령의 속성을 봅니다. 가득 찼다는 건 빈 곳이 없다는 뜻이지요. 온전함을 가리킵니다. 일부만, 절반만, 거의... 처럼 부분적으로 점유된 상태가 아니라, 그야말로 통째로, 싸그리(몽땅), 남김 없이 채운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성령과 함께 주신 "평화"(요한 20,19)에도 적당선은 없습니다. 조금만 평화롭게 살자든가 약간 평화롭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평화는 성령의 속성처럼 온전해야 하고 가득 채워야 평화인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성령과 함께 주신 "용서"의 권한도 마찬가지입니다. 반쯤 용서한다든가 조금만 용서할 수는 없습니다. 용서는 그 자체로 온전히 베풀어져야 하고, 한 존재를 해방과 감사의 영으로 가득 채우는 힘입니다.

"새로움", "사랑의 불", "기쁨"... 이처럼 다양한 성령의 자취는 선하고 진실되고 아름다우며 복됩니다.

"성령"에 힘입어 "성자"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1코린 12,3 참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곧, 우리가 성령을 통해 얻은 은사와 직분과 활동이 "공동선을 위한"(1코린 12,11)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성령으로 가득 찬 이는 그 숨결이 내게 불어넣어지기 전에 거쳐 온 모든 이웃, 모든 피조물, 온 누리의 기쁨과 행복은 물론 고통과 슬픔에도 함께 감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온 존재가 이미 한 성령의 숨결로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현실에는 처절한 비극과 고통어린 절규, 집단이기주의적 정치 다툼이 여전한데도 온 우주가 성령으로 가득 차, 그 사랑의 기운이 나의 세포 속속들이 머금어지는 것은 놀라운 신비가 아니겠습니까? 부족한 나에게도 오시는 성령께 마음을 활짝 열고, 그분께서 내 안에 사랑의 불을 놓으시기를, 그 불이 온전히 나를 차지하시기를 함께 청합시다. 용서와 화해와 치유가 필요한 곳으로 흘러드는 새 창조의 숨이신 성령께서 나와 모든 이웃, 모든 피조물, 온 누리를 사랑의 끈으로 이어주실 것입니다. 성령의 특별한 은사가 벗님을 가득 채워주시길 축원합니다. 아멘. 교회의 생일이요 우리 모두의 생일인 오늘 기쁨 가운데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