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제1독서
<주님은, 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 34,4ㄱㄷ-6.8-9
그 무렵 4 모세는 주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대로 아침 일찍 일어나
돌판 두 개를 손에 들고 시나이 산으로 올라갔다.
5 그때 주님께서 구름에 싸여 내려오셔서 모세와 함께 그곳에 서시어,
‘야훼’라는 이름을 선포하셨다.
6 주님께서는 모세 앞을 지나가며 선포하셨다.
“주님은, 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다.”
8 모세는 얼른 땅에 무릎을 꿇어 경배하며 9 아뢰었다.
“주님, 제가 정녕 당신 눈에 든다면,
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가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백성이 목이 뻣뻣하기는 하지만,
저희 죄악과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저희를 당신 소유로 삼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 13,11-13
11 형제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자신을 바로잡으십시오. 서로 격려하십시오.
서로 뜻을 같이하고 평화롭게 사십시오.
그러면 사랑과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12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
모든 성도가 여러분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빕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6-18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미사의 말씀에는 성삼위 하느님의 현존이 가득합니다.
제1독서는 새 증언판을 받으러 시나이 산에 올라온 모세에게 하느님께서 나타나시어 당신을 선포하시는 대목입니다.
"주님은, 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다"(탈출 34,6).
하느님께서 당신 스스로를 이렇게 밝히십니다. 한낱 인간이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면 허황된 자기 인식이나 착각 혹은 교만이 지나치다고 봐야지요. 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모든 덕목의 최대치, 극대치가 곧 하느님의 속성이니까요.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요한 3,16).
그런 하느님께서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십니다. "너무나"는 사실 "지나치다"는 의미가 내포된 단어라서 엄밀히 따지면 부정적 표현과 호응하는 수식어지요. 그럼에도 이 구절에서 "매우, 아주, 대단히" 등의 표현대신 굳이 "너무나"를 쓴 것은, 그만큼 "하느님 사랑"의 엄청난 강도를 강조하려는 의도 같습니다.
성삼위 하느님께서 성자의 강생을 결심하시고 강행하신 것은, 예수님을 당신들에게서 분리해 떼어내신 것이라기보다, 그렇게 세상에 보내져서 육화하신 예수님을 통해 당신들도 이 세상에 함께하시려는 마음이십니다.
성삼위 하느님은 예수님의 현존을 통해 이 세상에 함께하십니다. 또 완전한 신성과 완전한 인성을 지니고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님 덕분에 성삼위 하느님의 사랑 또한 무한히 확장되지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그 사랑 안에 머무르려는 우리 모두가 감히 성삼위 하느님의 사랑 안에 참여하기 때문입니다. 이 참여가 곧 구원이지요.
"하느님이 당신 아드님의 영을 너희 마음에 보내셨다. 그 영이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신다"(영성체송).
우리 안에 오신 성령께서 아버지께 기도하십니다. 하느님과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모르는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지요. 성령에 힘입어 우리는 기탄없이 아버지를 부르고 마음을 송두리째 열어보일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자신보다 우리의 필요와 결핍을 더 잘 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분 이름으로 아버지께 바치는 기도 안에서 우리는 성삼위 하느님과 일치를 이룹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빕니다"(2코린 13,13).
미사의 시작 예식 때 자주 듣는 인사입니다. 얼마나 완전하고 충만한 인사인지요! 은총과 사랑과 친교는 우리를 성삼위 하느님 안에 머무르게 하고, 그분들에 맞갖도록 거룩하게 해 줍니다.
은총과 사랑과 친교는 우리 안에 심어진 하느님 모상성을 극대화하여 결국 우리를 하느님처럼 되라고 이끕니다. 우리 영혼은 교부들이 말하는 신화(神化, Deificatio)의 여정 안에 있음을 감지하고 전율합니다.
비록 삼위시지만 한분이신 하느님의 신비를 온전히 다 이해할 수 없다 해도, 성삼위 하느님을 사랑할 순 있습니다. 또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참여할 수 있지요. 성삼위 하느님 안에 머무르는 이는 세상 안에서 성삼위 하느님의 현존을 봅니다. 온 우주, 세상 곳곳을 가득 채우고 계신 하느님을 감지하고 소통하며 서로를 넘나들고 관통하지요. 충만함에는 빈곳도 경계도 없으니까요.
사랑하는 벗님! 삼위일체 하느님 안에서 한껏 사랑하는 행복한 축제의 날 되시길 기원합니다. 그 기쁨과 평화 속에서 '신비'가 얼굴을 보여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벗님을 너무나 사랑하시어 예수님을 보내 주셨으니, 그건 벗님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시어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랍니다. 그러니 벗님이 하실 일은 그 사랑을 믿기만 하면 된답니다(요한 3,16-18 참조). 하느님께서 특별히 그토록 극진히 사랑하시는 벗님을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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