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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스테파노) 신부님 말씀 강

~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기념일 / 양승국 신부님 ~

2023년 11월 11일 토요일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기념일

 

복음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6,9ㄴ-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9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
10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하고,
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하다.
11 그러니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12 또 너희가 남의 것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너희의 몫을 내주겠느냐?
13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14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이 이 모든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비웃었다.
1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
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라는 표현을 자주합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똑같은 제목으로 쓴 책들이 돌아다닙니다. 길지 않지만, 그렇다고 짧지도 않은 우리네 인생, 누구에게나 삶이 크게 전환되는 반전의 기회가 몇 번씩 찾아옵니다.

 

때로 한 존재와의 만남을 통해, 때로 예기치 않았던 사건 사고를 통해, 때로 깊은 바닥 체험을 통해, 생각지도 못한 고통과 십자가를 통해, 우리네 삶은 크게 출렁거리지만, 그로 인해 우리 삶이 크게 변화되기도 하고, 크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기도 합니다.

 

돌아보니 제 경우도 여러분 그런 순간이 있었습니다. 사방이 높은 벽으로 가로막힌 듯한 느낌 속에 삶이 온통 짙은 회색빛이던 젊은 시절, 한 고마운 존재와의 만남은 저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어놓았고, 절망 속에서 희망을 갖게 했습니다.

 

난데없이 내게 다가온 병고라든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가까운 사람들과의 사별, 그로 인한 쓰디쓴 바닥 체험은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임을 알게 해주었고, 인생에 있어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알게 해주었습니다.

 

돌아보니 하느님께서는 우리네 인생 여러 길목에 꼭 필요한 순간, 꼭 필요한 맞춤형 터닝 포인트들을 준비해주셨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오늘 축일을 맞이하시는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님의 생애 역시 이런저런 인생의 티닝 포인트들이 즐비했습니다. 보통 주교님들은 독실한 그리스도교 신앙인 가정 출신이 대부분인데, 마르티노 주교님은 이교인 가정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젊은 시절 마르티노의 꿈은 군인으로서 성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마 유학을 끝낸 다음 장교가 되어 승승장구하는 장밋빛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의 인생을 확 뒤집어놓는 터닝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 말을 타고 가던 청년 장교 마르티노는 추위에 와들와들 몸을 떨고 있던 걸인을 만나게 됩니다. 따뜻한 측은지심의 소유자였던 그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다는 것을 알고 좌절합니다.

 

그러자 마지막 방법을 선택합니다. 자신의 허리에 차고 있던 장검을 꺼내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를 반으로 자른 다음, 반은 자신이 걸치고, 반은 그 걸인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마르티노의 꿈에 예수님이 나타나셨는데, 자신이 반으로 잘라 걸인에게 준 바로 그 옷을 걸치고 계셨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그는 큰 충격에 사로잡혀 자신의 삶을 스스로 뒤집습니다.

 

이 특별한 사건은 마르티노의 삶을 성직에로 이끌었습니다. 사제가 되고 파리 근처 투르의 주교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특별한 체험이 남긴 교훈을 평생토록 잊지 않고 자신의 사목 생활에 충실히 반영했습니다.

 

한평생에 걸친 마르티노 주교님의 모토는 마태오 복음 25장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마태 25, 34-36)

 

사제가 된 마르티노는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이웃 사람들을 개종시키는데 헌신했습니다. 당시 아리아파와 같은 이단이 횡행하던 시절이었기에 그의 복음 선포 활동은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교도들에게 매를 맞고 쫓겨나는 봉변도 부지기수로 당했습니다. 이교도들의 탄압이 극심할 때면 그는 깊은 산속에 들어가 기도 생활에 전념했습니다. 이때 그의 탁월한 인품과 영성에 대한 소문을 듣고 많은 청년들이 찾아와 수도공동체가 형성되기도 했습니다.

 

마르티노 주교님이 지니셨던 가난한 이웃을 향한 따뜻한 마음, 큰 측은지심이 오늘 우리네 마음 깊은 곳에 큰 울림으로 남아, 작은 사랑의 실천을 계속해나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