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9일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제1독서
<나는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라.>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3,9-15.20
사람이 나무 열매를 먹은 뒤, 주 하느님께서 그를 9 부르시며,
“너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10 그가 대답하였다.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
11 그분께서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따 먹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12 사람이 대답하였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
13 주 하느님께서 여자에게 “너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하고 물으시자,
여자가 대답하였다.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따 먹었습니다.”
14 주 하느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너는 모든 집짐승과 들짐승 가운데에서 저주를 받아
네가 사는 동안 줄곧 배로 기어 다니며 먼지를 먹으리라.
15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
20 사람은 자기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하였다.
그가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가 되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하느님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1,3-6.11-12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5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6 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11 만물을 당신의 결정과 뜻대로 이루시는 분의 의향에 따라 미리 정해진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몫을 얻게 되었습니다.
12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가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6-38
그때에 26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27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28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29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30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31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32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33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35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36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37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38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미사의 말씀들 안에는 죄와 구원, 절망과 희망이 교차합니다.
먼저 첫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너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창세 3,13)
제1독서는 우리를 원죄의 현장으로 데려갑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어긴 인류의 조상과 하느님의 가슴 아픈 대면의 현장입니다. "어찌하여..." 하시는 하느님 마음은 왜 그랬는지를 꼭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추궁의 심정이 아니라 오히려 탄식에 가까울 겁니다. 오직 그들의 행복을 위해 공들인 모든 게 무너지는 아픔과 그들이 짊어져야 할 결과를 예견하는, 안타까움 가득한 한탄처럼 들립니다.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에페 1,4).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먼 옛날 하느님 앞에서 고개 숙인 채 슬픈 선고를 듣던 "첫 사람"의 처지를 반전시키는 놀라운 사실을 전합니다. 원죄에 물든 우리가 다시 하느님 앞에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오늘의 이 길지 않은 제2독서 내용 안에 거의 모든 절마다 "그리스도"의 이름이 불리웁니다. 첫 사람의 죄는 새 아담인 "그리스도"를 통해 사해지고, 우리는 그 덕분에 거룩하고 흠 없는 본성을 되찾았습니다.
다음은 하와의 이야기입니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창세 3,12).
죄의 책임을 전가하면서 하와의 불순종이 드러납니다. 그녀 역시 뱀의 꾐에 넘어갔지요. 이 구차하고 누추한 발뺌의 행태는 누가 먼저냐의 문제라기보다 신뢰와 결속이 무너지는 죄의 결과를 보여 줍니다. 아마도 하느님께는 이 모습이 더 아프셨을 것 같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마리아께서 천사를 통해 하느님께 드렸던 응답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부르심 앞에서 내린 어린 소녀의 이 순수한 결단은 원죄의 결과로 죄악에 물든 세상에 새 희망을 던집니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잉태되는 순간부터 원죄에 물들지 않으신 마리아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아드님을 모실 수 있도록하느님께서 미리 예비하신 존재이십니다. 그녀는 거룩하고 흠 없는 태 안에 자신을 만드신 창조주를 모시도록 준비된 새 하와이십니다. 마리아는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창세 3,20)를 넘어 모든 존재의 어머니가 되십니다.
아담의 불순종과 새 아담인 그리스도의 순종, 화와의 불순종과 새 하와인 마리아의 순종. 얼핏 대비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신비로운 인과관계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다"(로마 5,20)는 사도 바오로의 단언처럼, 스스로 범한 죄 때문에 시들어가는 인류를 두고 보실 수 없는 하느님께서 이 모두를 회복할 특단의 조치를 감행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극단의 현실은 우리 안에 고스란히 들어 있고 또 매순간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같은 몸, 같은 존재 안에 아담의 범죄와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동시에 지니고 살아가지요. 또 하와의 불순종과 마리아의 순종 또한 나날이 체험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저마다 죄와 은총, 어둠과 빛,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길을 찾아나가는 순례자에 비길 수 있습니다. 가망 없는 죄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온전한 의인도 못되는 가련한 실존을 입고 살아가는 나그네와 같은 존재말입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 1,37).
그래서 천사의 이 단언은 그날 마리아에게는 물론 오늘의 우리에게도 커다란 희망이 됩니다. 죄인인 우리가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룬다는 자체가, 엘리사벳의 늙은 나이의 잉태나 동정녀의 잉태 못지 않게 우리 힘만으로는 불가능의 영역이지만, 하느님께는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율법과 제도가 아니라 주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거룩하고 흠 없다"고 해 주시니, 우리는 부정하고 불결하고 부족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잉태하고 품고 출산해 키우는 소명에 기꺼이 응답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마리아와 함께 기뻐해도 좋습니다. 아니 기뻐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니 한껏 기뻐하십시오.
▶ 작은형제회 오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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