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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경호(프란치스코) OFM

~ 주님 공현 대축일 전 금요일 / 기경호 신부님 ~

주님 공현 전 금요일

 

제1독서

<우리는 형제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습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3,11-21
사랑하는 여러분, 11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말씀은 이것입니다.
곧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2 악마에게 속한 사람으로서 자기 동생을 죽인 카인처럼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가 무슨 까닭으로 동생을 죽였습니까?
자기가 한 일은 악하고 동생이 한 일은 의로웠기 때문입니다.
13 그리고 형제 여러분, 세상이 여러분을 미워하여도 놀라지 마십시오.
14 우리는 형제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는 것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죽음 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습니다.
15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모두 살인자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알다시피,
살인자는 아무도 자기 안에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16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 목숨을 내놓으신 그 사실로
우리는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17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 그에게 마음을 닫아 버리면,
하느님 사랑이 어떻게 그 사람 안에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18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
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해 있음을 알게 되고,
또 그분 앞에서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20 마음이 우리를 단죄하더라도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마음보다 크시고 또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21 사랑하는 여러분, 마음이 우리를 단죄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43-51
그 무렵 43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기로 작정하셨다.
그때에 필립보를 만나시자 그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이르셨다.
44 필립보는 안드레아와 베드로의 고향인 벳사이다 출신이었다.
45 이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만나 말하였다.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시오.”
46 나타나엘은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였다.
그러자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47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48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다.
49 그러자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50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51 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우리는 형제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습니다.” (1요한 3,14)




더불어 사랑으로 건너는 죽음의 다리♣

 

오늘 제1독서는 삶의 방향을 명쾌하게 알려줍니다. "우리는 형제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는 것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죽음 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습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 목숨을 내놓으신 그 사실로 우리는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1요한 3,14-16)

우리의 일상은 죽음과 생명 사이를 오가는 ‘다리 건너기’입니다. 어리석고 연약한 인간은 생명을 간절히 갈구하면서도 정작 생명으로 가는 다리를 건너지 못한 채 늘 죽음 언저리에서 서성입니다. 건너려 해도 마음뿐 세상의 달콤함이 뒤에서 붙들며 주저 앉아버리곤 하지요. 왜 우리는 아들 이사악을 바친 아브라함이나 목숨을 기꺼이 바치신 예수님처럼 행동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하느님보다 현세의 것들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 아닐까요? 말로는 주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그 믿음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기 때문이겠지요. 그러기에 우리 안에는 늘 번민과 갈등, 혼돈과 어둠이 일어나고 고통이 이어지는 것임을 다시 상기해야겠습니다.

요한 1서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는 유일하고도 가장 확실한 길은 사랑뿐임을 알려줍니다. 사랑하지 않는 한 그 무엇을 한다 하여도 죽음 안에 머무른다는 것이니(1요한 3,14)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습니다. 주님께서는 공허한 사랑의 메아리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품은 나의 실제 얼굴을 보고자 하십니다.

죽음의 다리를 건너 생명의 땅으로 가기 위해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 그에게 마음을 닫아 버리거나,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3,17-18) 마음의 문을 닫아버릴 때 영원한 행복으로 갈 수 있는 ‘생명의 다리’는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나아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생명의 길이요 구원으로 가는 다리이신 예수님을 알게 된 필립보의 태도를 본받아야겠습니다. 나타나엘은 필립보가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시오.”(요한 1,45) 하고 알려주지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자 필립보는 다시 그에게 “와서 보시오.”(1,46) 하고 말합니다. 생명으로 건너가는 길을 말과 행동을 통해 실제로 체험하도록 이끌어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써 죽음의 다리를 건너 영원한 행복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나 혼자가 아니라 사랑을 거부하며 죽음에 머물고 있는 다른 이들과 더불어 그 다리를 건너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서로에 대한 사랑이 메말라 가는 오늘입니다. 우리 서로 서로 참 생명과 행복으로 건너갈 수 있는 사랑의 티켓을 얻어 실천하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됩시다. 마음을 열고 예수님처럼 서로를 위해 목숨을 내놓음으로써 죽음의 다리 저편에서 펼쳐지는 ‘생명과 행복의 축제’에 함께 참여하는 우리였으면 좋겠습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