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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욱현 신부님

~ 사순 제 2주일 / 조욱현 신부님 ~

사순 제2주일나해


복음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2-10
그 무렵 2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다.
3 그분의 옷은 이 세상 어떤 마전장이도 그토록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
4 그때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5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6 사실 베드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제자들이 모두 겁에 질려 있었기 때문이다.
7 그때에 구름이 일어 그들을 덮더니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8 그 순간 그들이 둘러보자 더 이상 아무도 보이지 않고
예수님만 그들 곁에 계셨다.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10 그들은 이 말씀을 지켰다.
그러나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저희끼리 서로 물어보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마르 9,1-9: 예수님의 모습이 그들 앞에서 변했다.


오늘 전례는 제자들에게 부활의 영광을 미리 보여줌으로써고통과 죽음은 예수께 파스카로 가는 길임을 보여준다만일그리스도께 성금요일이 없었다면 환호하는 부활의 기쁨도 없었을 것이다사순절의 여정이 비록 광야를 거쳐 피곤하고 어려운 길로 우리 자신을 끊고 극복해야 하는 험난한 과정이지만 결정적으로는 부활의 쇄신과 변모의 기쁨과 빛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새기도록 한 것이다창세기에서 이사악의 희생의 의미는 다름 아닌 생명의 포기와 희생은 사랑에서 왔다는 것이다아브라함의 하느님께 대한 신앙과 사랑에 대한 증명이었다그것이 결정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천사의 말씀이었다(창세 22,12). 하느님께서는 이어서 아브라함에게 무수한 자손을 약속하신다(창세 22,16-17). 이렇게 생명의 포기와 희생에 의미를 주는 것은 사랑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변모는 십자가의 죽음의 여정을 시작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예시해준다그러나 그 영광은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을 통해서 얻어진다우리도 이 미래의 영광을 기대하고 지향해 가면서삶의 어두운 나날들에 의미를 부여하도록 하여야 한다그러므로 그 영광은 고통과 시련의 시기를 생략할 수는 없다베드로가 엉겁결에 스승님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하나는 모세께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5하고 소리치는 것처럼그 시기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초막의 의미는 결정적으로 하느님 안에 쉬는 종말론적 안식의 환희와 기쁨을 예시한다예수께서는 지상에서의 싸움을 시작하실 때이다하느님의 아들은 수난과 죽음의 시련을 거쳐 우리보다 먼저 천상 영광에 오르셨다.


예수님의 변모 때의 찬란히 빛나는 옷은 신적 세계의 표지이며 기쁨과 승리를 상징한다부활 때 천사는 순백의 옷으로 나타난다(마르 16,5). 구름은 하느님의 신비로운 현존의 상징이다세 사도에게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에 대해 예외적이고도 형언할 수 없는 체험을 하게 해 주셨다이 찬란한 변모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있다우선은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4)와 구름 가운데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7)는 소리다


구약의 위대한 두 인물은 하느님의 구원계획이 단계적으로 그리스도에게서 완성된다는 것을 말해준다구약성경의 이 두 인물은 그리스도와 함께 마지막 때가 도래하는 그 순간에 실현되고 있음을 말해준다구름 속에서 들려오는 아버지의 말씀은 십자가를 향해 가시는 예수가 누구인지를 계시해주는 말씀이다사도들에게 그 신비를 이해하고 구원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라는 권고이다갈바리아 산 위에서 예수께 일어날 사건은 바로 그분이 하느님한테서 나오셨다는 것에 대한 증명이다하느님의 마음을 닮은 사람만이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할 수 있다십자가 밑의 백인대장이 고백한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15,39)라는 말은 오늘 아버지의 말씀의 반향일 것이다.




로마서에서도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당신의 친 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로마 8,31-32). 이사악의 사건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실현되었다그리스도께는 대신 희생될 수양이 없었다이렇게 하느님은 당신의 아들을 아끼지 않으셨다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의 죽음을 통하여서까지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신 것이다여기서 또 한 가지 분명한 것은사랑은 죽음을 넘어서도 영구히 지속된다는 것이다. “돌아가셨다가 참으로 되살아나신 분또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 분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로마 8,34). 이렇게 보면 항상 주제는 같다모든 행위의 궁극적 목표는비록 사랑의 고통스러운 시련은 겪어야 한다고 하더라도기쁨과 아름다움과 생명을 달성하는 것이다.


주님의 변모는 그분의 고통과 기쁨능욕과 영광의 신비이며우리 인생의 신비를 더 잘 이해시켜주는 빛의 순간이라는 것을 말해준다우리는 그리스도를 아버지께서 사랑하는 아들로서 받아들이고 그분의 말씀을 귀담아들을 때말씀을 실천할 때우리 자신의 존재도 변모될 것이다우리의 삶 속에서 모든 일에 있어서 의미를 발견하고 그 체험을 하면서구원을 체험하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변모를 이루게 될 것이다이것이 사순절의 근본 의미이다우리 자신의 변화를 이룰 수 있는 은총의 때가 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조욱현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