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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스테파노) 신부님 말씀 강

~ 사순 제 4주간 토요일 / 양승국 신부님 ~

2024년 3월 16일  사순 제4주간 토요일


제1독서
<저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순한 어린양 같았습니다.>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11,18-20
18 주님께서 저에게 알려 주시어 제가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당신께서 저에게 그들의 악행을 보여 주셨습니다.
19 그런데도 저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순한 어린양 같았습니다.
저는 그들이 저를 없애려고 음모를 꾸미는 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저 나무를 열매째 베어 버리자. 그를 산 이들의 땅에서 없애 버려
아무도 그의 이름을 다시는 기억하지 못하게 하자.”
20 그러나 정의롭게 판단하시고 마음과 속을 떠보시는 만군의 주님
당신께 제 송사를 맡겨 드렸으니
당신께서 저들에게 복수하시는 것을 보게 해 주소서.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7,40-53
그때에 예수님의 40 말씀을 들은 군중 가운데 어떤 이들은,
“저분은 참으로 그 예언자시다.” 하고,
41 어떤 이들은 “저분은 메시아시다.” 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42 성경에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그리고 다윗이 살았던 베들레헴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았는가?”
43 이렇게 군중 가운데에서 예수님 때문에 논란이 일어났다.
44 그들 가운데 몇몇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그분께 손을 대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45 성전 경비병들이 돌아오자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왜 그 사람을 끌고 오지 않았느냐?” 하고 그들에게 물었다.
46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고
성전 경비병들이 대답하자,
47 바리사이들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도 속은 것이 아니냐?
48 최고 의회 의원들이나 바리사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그를 믿더냐?
49 율법을 모르는 저 군중은 저주받은 자들이다.”
50 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전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코데모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51 “우리 율법에는 먼저 본인의 말을 들어 보고
또 그가 하는 일을 알아보고 난 뒤에야,
그 사람을 심판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52 그러자 그들이 니코데모에게 대답하였다.
“당신도 갈릴래아 출신이라는 말이오?
성경을 연구해 보시오.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소.”
53 그들은 저마다 집으로 돌아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은 혹시라도 진지한 성찰과 회심이 생략된 신앙,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이 배제된 값싼 신앙이 아닌지요?


인류 역사 안에는 예수님의 이름을 빙자한 숱한 사이비 교주들이나 거짓 목자들이 많이 등장했고, 그로 인한 피해자들이 속출했습니다. 아직도 그 사악한 무리들은 약하고 선량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피정 센터에서 사목하면서 피해자 부모님들을 가끔 만납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들이, 세상 사랑스러운 딸이 거기 들어간 지 삼 년, 오 년, 십 년입니다. 어떻게서든 빼내 보려고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백약이 무효입니다.


사이비 교주로부터 자녀를 한번 구해보겠다고 별의별 방법을 다 강구해보지만, 보편적인 우리 머리 꼭대기에 있는 그들을 이겨낼 방법이 없습니다. 이리저리 자녀를 따라 전국을 헤매다 보니 가정은 폐가망신이요 풍비박산입니다.


사이비 교주들과 그들의 추종자들의 사악한 계약 앞에 선량한 백성들을 속수무책으로 넘어집니다. 간당간당한 재산을 다 털어 갖다 바칩니다. 혈연까지 결연히 끊어가며 사악한 무리 속으로 깊숙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인생의 중차대한 결정 앞에 정확한 판단력이며 식별력입니다. 사실 종교라는 것, 별것 아닌 것처럼 여겨지지만, 우리네 인생에 종교는 큰 부분이요, 더 나아가서 삶의 전부입니다.


어떤 종교를 선택할 때, 중요한 기준이랄까 지침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신앙과 이성이 잘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진지한 성찰과 회심이 생략된 신앙,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이 배제된 값싼 신앙, 고통과 십자가는 철저하게 외면하면서 현세적 성공과 축복만을 청하는 싸구려 신앙, 우리가 목숨 걸고 반대해야 할 웃기는 신앙입니다.


,예수님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바로 보는 관점에 있어서 천차만별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사기꾼으로 바라봤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예언자 중에 한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자신을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게 할 메시아, 구세주 하느님으로 바라봤습니다. 우리네 인생 여정 안에서 누군가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어떤 관점에서 대상을 바라보는가?


예수님께서는 당대 거짓 예언자들이나 사이비 교주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완전 다른 존재이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즉각적으로 알아보기 위한 식별력이 필요합니다.


오늘 제 신앙을 성찰해봅니다. 자신의 동굴 안에 깊숙이 갇힌 나머지, 세상의 고통이나 슬픔, 눈물이나 아픔에는 단1의 측은지심도 없는 것은 아닌지요?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이라는 열매는 하나도 없이 그저 말로만, 결심으로만 끝나는 것은 아닌지 깊이 묵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