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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욱현 신부님

~ 사순 제 5주일 / 조욱현 신부님 ~

사순 제5주일: 나해

 

매일미사 말씀 보기

 

제1독서

<나는 새 계약을 맺고 죄를 기억하지 않겠다.>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31,31-34
31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과 새 계약을 맺겠다.
32 그것은 내가 그 조상들의 손을 잡고 이집트 땅에서 이끌고 나올 때에
그들과 맺었던 계약과는 다르다.
그들은 내가 저희 남편인데도 내 계약을 깨뜨렸다. 주님의 말씀이다.
33 그 시대가 지난 뒤에 내가 이스라엘 집안과 맺어 줄 계약은 이러하다.
주님의 말씀이다. 나는 그들의 가슴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겠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34 그때에는 더 이상 아무도 자기 이웃에게, 아무도 자기 형제에게
“주님을 알아라.” 하고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모두 나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나는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순종을 배우셨고,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5,7-9
7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8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9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20-33
20 축제 때에 예배를 드리러 올라온 이들 가운데 그리스 사람도 몇 명 있었다.
21 그들은 갈릴래아의 벳사이다 출신 필립보에게 다가가,
“선생님, 예수님을 뵙고 싶습니다.” 하고 청하였다.
22 필립보가 안드레아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아와 필립보가 예수님께 가서 말씀드리자,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25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26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27 “이제 제 마음이 산란합니다.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합니까?
‘아버지, 이때를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하고 말할까요?
그러나 저는 바로 이때를 위하여 온 것입니다.
28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
그러자 하늘에서 “나는 이미 그것을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겠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29 그곳에 서 있다가 이 소리를 들은 군중은 천둥이 울렸다고 하였다.
그러나 “천사가 저분에게 말하였다.” 하는 이들도 있었다.
30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 그 소리는 내가 아니라 너희를 위하여 내린 것이다.
31 이제 이 세상은 심판을 받는다.
이제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밖으로 쫓겨날 것이다.
32 나는 땅에서 들어 올려지면 모든 사람을 나에게 이끌어 들일 것이다.”
33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으로,
당신께서 어떻게 죽임을 당하실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사랑 안에서 새로 태어남 ◎


사순절의 마지막 주일인 오늘의 전례는 파스카에 대한 고통스러우면서도 기쁨에 찬 묵상을 요구하는 사순절의 근본적인 주제들이 들어있다. ‘낮춤’의 신비보다 ‘고양’의 신비로 제시되는 십자가 사건에 대한 것, 자아 포기와 성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신 예수님을 따르라는 권고, 이러한 하느님의 사랑 앞에 취하여야 할 우리의 자세에 따라 나타나는 구원, 혹은 단죄 그리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베푸시는 사랑의 결정적인 선물로서 '새로운 계약' 등이다.



복음: 요한 12,20-33: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 생애의 마지막 파스카를 지내시기 위해 성대하게 메시아 입성을 했던 예루살렘에 와 계시다. 그것을 보고 감동을 받은 그리스인들이 “선생님, 예수님을 뵙고 싶습니다.”(21절) 하고 필립보에게 청한다.

여기서 ‘보다’라는 동사는 사물의 외적 형태를 넘어 그 내적인 의미를 파악한다는 말로, 예수님 안에 간직된 비밀, 즉 예루살렘 입성 때 군중들이 알아차리지 못한 그 비밀을 알고자 하는 원의를 나타내는 말일 것이다. 여기서 예수님은 당신 자신과 아버지를 향한 독백처럼 보이는 말씀을 하심으로써 그분의 신비스러운 점을 드러내셔서 그리스인들의 갈망을 채워주신다.

바로 예수님은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 죽어야 하는 한 알의 밀알처럼 생명을 주시는 분이다. 그러기에 우리의 삶의 신비는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르는 노력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생명을 버린다.’는 것은 죽음을 통해서만이 우리에게 주어질 수 있는 구원을 전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위한 헌신에의 초대를 말하는 것이지 죽기 위한 죽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의 풍요한 결실 능력을 확장시키기 위한 밀알의 죽음과 같은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을 때, 그리스도께는 최대의 영광이 돌아온다. 그리스도께 영광이 되는 이유는 우선 한 알의 밀알처럼 자신을 희생하는 것은 보다 더 큰 사랑을 표명하는 것이며, 또 이러한 행위가 인간을 구원하고 이끌어줄 능력을 갖기 때문이다. “나는 땅에서 들어 올려지면 모든 사람을 나에게 이끌어 들일 것이다.”(32절).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뵙고자 했던 그리스인들은 구원에로 이끌려 들어오는 이방인의 세계를 나타내는 첫 번째 표현이다. 십자가는 이미 그리스도의 얼굴을 빛나게 한다. 여기서 우리는 지난 주일의 복음의 ‘높이 들리다’라는 말을 만난다. 이 말은 바로 주님의 십자가와 죽음이라는 고통을 통해서 얻어진 영광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요한복음에 있어서는 십자가의 죽음이 부활이 되기 전에 이미 ‘높이 들리심’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나 ‘높이 들림’이라는 사실이 십자가의 죽음에 있어 예수님의 공포와 거부감을 조금도 경감시키지 못한다. 그래서 그 무서운 상황 앞에 두려움과 마음의 동요를 표현하시고 계시다. 그래서 성부께 기도하신다. 그러면서 당신이 느끼시는 괴로운 긴장감을 아버지께 온전히 의탁함으로써 마음의 분열을 극복하고 이 세상의 역사를 위한 그 결정적 순간의 주인공이 되신다. 그리고는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바라며, 당신의 죽음을 통해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시기를 바라신다.”(H. Van Den Bussche, Jean, Desclée de Brouwer 1967, p. 362).

“내가 이미 내 영광을 드러냈고 앞으로도 드러내리라.”(28절). 이 아버지의 계시는 예수님의 전 생애에 의미를 부여하는 하느님 아버지의 신비스러운 봉인이다. 즉 예수님의 지나온 생애, 죽음을 감수해야할 생애, 부활을 통해 더욱 빛나게 될 생애를 말한다. 이 모든 일을 통해 아버지의 영광이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와 동시에 세상에 대한 심판이 내려진다. 지난주일 복음에서 이미 빛이시며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 자체가 심판이라는 것을 말하였다. 예수님은 당신을 죽음에로 몰아가는 그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심판이 내려지는 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두 번씩이나 말씀하신다. 그분을 죽이는 것은 빛을 거스르는 결정적인 죄였다.

이렇게 빛을 거부하고 단죄를 받는 것은 사랑을 주고받을 능력이 없는 것에 대한 단죄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자신을 충실히 내 맡기고 그분의 사랑의 선물에 우리 자신을 개방하여야 한다. 사탄에 대한 승리는 결정적으로 여기서 이루어질 것이다.

제2독서: 히브 5,7-9: 예수님은 복종을 통해서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

이 모든 것은 하느님의 뜻에 항상 자유롭게 순명할 수 있는 내적인 결단을 요구한다. 비록 그것이 그리스도께 일어났던 것처럼 육체적인 정신적인 고통을 수반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실천함으로써만이 성취될 수 있다. 예수께서 인간으로 이 세상에 계실 때에 십자가의 고통 앞에 큰 소리와 눈물로써 기도하고 간구하셨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죽음에서 구해주지는 않으셨지만, 그분에게 십자가를 지워야 했던 당신의 뜻을 성취시킬 능력을 주심으로써 그의 간구를 들어주셨다. 이렇게 그리스도께서는 그 계약을 깨뜨리지 않으시고 무한한 아버지께 대한 사랑으로 완성하셨다.

예수님의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순명은 당신 자신이 영광을 받으실 뿐 아니라, 아버지의 영광이 됨을 알 수 있다. 그 영광은 아버지의 뜻에 철저히 순명하심으로써 나타난 것이다. 그 사랑의 결과로 세상은 구원을 받게 되었다. 이렇게 예수께서 당신의 죽음을 통해서 인간들과 영원히 결합되셨기에 인간은 그분께 결정적인 사랑의 응답을 드려야 한다. 이 결합에 사랑이 없다면 다른 어떤 것도 우리를 그분께 결합할 수 없을 것이다.

사순절의 여정은 우리를 하느님과의 만남의 마지막 단계에 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여기서 우리의 사랑 안에서 새로 태어남이 가능하고, 부활을 지내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매순간 그분에게 사랑의 응답을 드리려 자기 자신에게서 오는 자기를 끊는 아픔을 이겨내도록 주님께 우리도 기도하며 나아가자.

-조욱현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