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부활 제 6주간 금요일 / 오상선 신부님 ~

부활 제6주간 금요일


제1독서
<이 도시에는 내 백성이 많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8,9-18
바오로가 코린토에 있을 때,
9 어느 날 밤 주님께서는 환시 속에서 그에게 이르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잠자코 있지 말고 계속 말하여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아무도 너에게 손을 대어 해치지 못할 것이다.
이 도시에는 내 백성이 많기 때문이다.”
11 그리하여 바오로는 일 년 육 개월 동안 그곳에 자리를 잡고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쳤다.
12 그러나 갈리오가 아카이아 지방 총독으로 있을 때,
유다인들이 합심하여 들고일어나 바오로를 재판정으로 끌고 가서,
13 “이자는 법에 어긋나는 방식으로
하느님을 섬기라고 사람들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4 바오로가 입을 열려고 하는데 갈리오가 유다인들에게 말하였다.
“유다인 여러분, 무슨 범죄나 악행이라면 여러분의 고발을 당연히 들어 주겠소.
15 그러나 말이라든지 명칭이라든지 여러분의 율법과 관련된 시비라면,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시오. 나는 그런 일에 재판관이 되고 싶지 않소.”
16 그러고 나서 그들을 재판정에서 몰아내었다.
17 그러자 모두 회당장 소스테네스를 붙잡아 재판정 앞에서 매질하였다.
그러나 갈리오는 그 일에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았다.
18 바오로는 한동안 그곳에 더 머물렀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프리스킬라와 아퀼라와 함께 배를 타고 시리아로 갔다.
바오로는 서원한 일이 있었으므로, 떠나기 전에 켕크레애에서 머리를 깎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20-23ㄱ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울며 애통해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21 해산할 때에 여자는 근심에 싸인다.
진통의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으로 그 고통을 잊어버린다.
22 이처럼 너희도 지금은 근심에 싸여 있다.
그러나 내가 너희를 다시 보게 되면 너희 마음이 기뻐할 것이고,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23 그날에는 너희가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에게 변치 않을 기쁨을 약속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다시 보게 되면 너희 마음이 기뻐할 것이고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요한 16,22).

떠나신다는 스승의 말씀에 근심이 가득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재회를 언급하십니다. "다시 봄." 제자들은 반드시 잃었던 스승을 다시 만날 것이고 기쁨에 넘칠 것입니다.

"다시 봄"이 당시 제자들에겐 예수님의 부활을 의미하고, 우리에게는 예수님 재림의 때를 가리킬 것입니다. 이 "다시 봄"의 효과와 위력이 얼마나 큰지 이후에는 어떤 고통과 환난이 닥쳐도 일희일비하지 않고 그 기쁨을 굳게 간직할 것입니다.

"그날에는 너희가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요한 16,23).

이 말씀은 우리를 티베리아스 호숫가의 아름다운 장면으로 데려갑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아침식사에 부르셨을 때, "제자들 가운데에는 '누구십니까?' 하고 감히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요한 21,12)라고 하지요. 제자들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주님을 감지합니다. 그들의 기억과 사랑이 확신하니까요.

더 이상 물을 필요가 없는 상태는 서로에 대한 앎이 충만한 상태, 곧 사랑의 상태입니다. 관심이 없어서 물음조차 침묵해버린 상태와는 완전히 다른 얘기지요. "언제", "왜", "어떻게"를 물어대던 두려움과 조바심 가득한 제자들이 처참하게 잃었던 주님을 "다시 봄"으로써 하나의 앎, 하나의 사랑 안에 잠겨듭니다.

제1독서에서는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선교가 계속됩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잠자코 있지 말고 계속 말하여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아무도 너에게 손을 대어 해치지 못할 것이다"(코린 18,9-10).

주님께서 환시 속에서 바오로를 친히 격려하십니다. 서간 어디에도 바오로가 느낀 감정적 반응이 언급되지 않지만, 낯선 곳에서 적대자들에 둘러싸여 주님을 전하는 그가 이 말씀으로 얼마나 힘을 받고 기뻤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실 환시만 해도 어마어마한 신비적 은총인데 주님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 역시 크나큰 위로의 내용이니 말입니다.

"이 도시에는 내 백성이 많기 때문이다"(사도 18,10).

이 말씀은 어쩌면 오늘의 격려 중 백미일 것 같습니다. 사람들에게 극심한 거부와 배척을 당하더라도 바오로가 끝까지 사람들을 경계하거나 피하지 않고 기꺼이 형제자매로 인식할 수 있게 해 주었을 것 같지요. 바오로는 실제적이고 또 잠재적인 주님의 백성 틈에서 살아가며 의혹과 불신의 눈초리가 아닌 사랑과 신뢰의 눈길로 모두를 대했을 겁니다.

"바오로는 한동안 그곳에 더 머물렀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프리스킬라와 아퀼라와 함께 배를 타고 시리아로 갔다"(사도 18,18).

바오로는 한 바탕의 소요를 겪으며 동족 손으로 재판정까지 끌려갔지만, 성경 저자는 이에 대한 반응에 관해서도 환시 체험 때와 마찬가지로 침묵합니다. 그저 할 일을 묵묵히 수행하고는 다른 선교지를 향해서 떠나는 담담하고 초연한 모습이 보일 뿐입니다.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바오로가 보여준 태도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증명합니다. 바오로 안에 차곡차곡 쌓여온 죄와 용서, 섭리와 만남과 환시의 체험들이 그를 가벼이 흔들리지 않는 존재로 무게중심을 잡아 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벗님! 오늘은 각자 주님을 체험한 원체험의 순간을 떠올려 봅시다. 그분 사랑에 전율하고 그 자비에 눈물 흘리며,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터져나오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해, 세상에 대고 '주님 안에서 사랑한다'고, '주님과 함께 함께 행복하자'고 외치고 싶었던 환희의 체험 말입니다.

세파에 밀려다니느라 그 기쁨을 혹 잊고 있었다면 다시 찾아내어 머물러 봅시다. 없는 듯, 잃은 듯 보여도 분명 있습니다. 그 기쁨은 잊을 수도 없거니와 누구도 빼앗지 못하는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영혼의 골방을 샅샅이 뒤져 그 기쁨을 찾아내고 사랑을 회복하는 오늘 되시길 축원합니다.


◆ 출처:  원글보기; ▶ 작은형제회 오 상선 바오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