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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스테파노) 신부님 말씀 강

~ 연중 제 7주간 화요일 / 양승국 신부님 ~

2024년 5월 21일  연중 제7주간 화요일


제1독서
<청하여도 얻지 못한다면 잘못 청하기 때문입니다.>
▥ 야고보서의 말씀입니다.4,1-10
사랑하는 여러분,
1 여러분의 싸움은 어디에서 오며 여러분의 다툼은 어디에서 옵니까?
여러분의 지체들 안에서 분쟁을 일으키는 여러 가지 욕정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까?
2 여러분은 욕심을 부려도 얻지 못합니다.
살인까지 하며 시기를 해 보지만 얻어 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또 다투고 싸웁니다.
여러분이 가지지 못하는 것은 여러분이 청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3 여러분은 청하여도 얻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욕정을 채우는 데에 쓰려고 청하기 때문입니다.
4 절개 없는 자들이여, 세상과 우애를 쌓는 것이
하느님과 적의를 쌓는 것임을 모릅니까?
누구든지 세상의 친구가 되려는 자는 하느님의 적이 되는 것입니다.
5 아니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살게 하신 영을 열렬히 갈망하신다.”는
성경 말씀이 빈말이라고 생각합니까?
6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더 큰 은총을 베푸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이들에게는 은총을 베푸신다.”
7 그러므로 하느님께 복종하고 악마에게 대항하십시오.
그러면 악마가 여러분에게서 달아날 것입니다.
8 하느님께 가까이 가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가까이 오실 것입니다.
죄인들이여, 손을 깨끗이 하십시오.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이여, 마음을 정결하게 하십시오.
9 탄식하고 슬퍼하며 우십시오.
여러분의 웃음을 슬픔으로 바꾸고 기쁨을 근심으로 바꾸십시오.
10 주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십시오. 그러면 그분께서 여러분을 높여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30-37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30 갈릴래아를 가로질러 갔는데,
예수님께서는 누구에게도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다.
31 그분께서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면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계셨기 때문이다.
32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분께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33 그들은 카파르나움에 이르렀다.
예수님께서는 집 안에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너희는 길에서 무슨 일로 논쟁하였느냐?” 하고 물으셨다.
34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길에서 논쟁하였기 때문이다.
35 예수님께서는 자리에 앉으셔서 열두 제자를 불러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36 그러고 나서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에 세우신 다음,
그를 껴안으시며 그들에게 이르셨다.
37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겉으로는 주님과 가장 가까이 있지만, 실제로는...


오늘 예수님께서는 두번째 수난 예고를 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마르 9,31)
당신 입으로 직접 수난과 죽음을 예고를 하시는 예수님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묵상해봅니다. 예견되는 끔찍한 상황이 눈앞에 떠올라 마음이 엄청 산란하셨을 것입니다. 피할 수만 있으면 피하고 싶다고까지 말씀하실 정도로 두려우셨습니다.


이런 스승님의 마음과는 달리 제자단의 반응은 한심할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스승님의 수난과 부활에 대한 예고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에 대해 질문하는 것조차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제자들은 예수님의 수난 예고가 그간 자신들이 꿈꿔왔고 상상해왔던 길이 아니었기에 때문에 일부러 부정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수님께서 추구하고 있는 왕국과 제자들이 기대하고 있는 왕국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하나 자리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보이고있는 극단적 미성숙과 스승님의 정체와 사명에 대한 몰이해는 점점 커져만 갑니다. 카파르나움에 위치한 베드로와 안드레아의 집에 도착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너희는 길에서 무슨 일로 논쟁을 하였느냐?” 앞서 걸으시던 예수님께서 뒤따라오던 제자단의 분위기를 눈치채셨던 것입니다. 계속 티격태격하며 뒤따라오던 제자들의 대화를 가만히 들어보니, 예수님 당신 얼굴이 다 화끈거릴 정도였습니다.


제자들은 부끄럽게도 누가 제일 높은 사람인가 하는 문제로 길에서 한바탕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들은 노상에서 서열다툼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제자들은 주님과 동고동락하고 있었지만, 아직도 주님과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이 대목은 교회 깊숙한 곳으로 들어와 봉사하는 성직자 수도자들이 깊이 성찰해야 할 부분입니다.


매일 교회 안에 머물면서, 매일 거룩한 성찬례를 거행하면서, 겉으로는 주님과 가장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이나, 정작 마음과 정성이 없기에, 그저 타성과 매너리즘에 빠져있기에 가장 주님과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은가 진지하게 돌아봐야하겠습니다.


제자들은 부지런히 스승님을 따라가고 있었지만, 허깨비같은 몸만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정신과 영혼을 전혀 따라가고 있지 않았습니다. 말로만 제자, 무늬만 제자였던 것입니다.


수난과 죽음을 앞두고 마음이 심란해진 예수님이신데, 그래서 이미 두 번씩이나 제자들에게 수난 예고를 하셨는데, 그렇다면 스승님이 걸어가실 그 길이 어떤 길인지에 대해 함께 진지하고 숙고하고 고민할 법도 한데, 제자들은 스승님의 수난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일말의 양심이 있는 제자라면 스승님이 겪고 계신 고뇌에 조금이라도 참여하기 위해 노력할텐데, 그래서 스승님을 따뜻한 말로라도 위로해드리고자 노력할텐데, 제자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누가 큰 사람인가? 스승님의 나라가 서면 누가 오른쪽 왼쪽에 앉을 것인가에만 관심이 가득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직도 갈길이 까마득한 제자들에게 다시 한번 절대로 굽힐 수 없으며, 어쩔 수 없는 당신의 운명과 사명, 핵심 사상에 대해서 가르치십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르코, 9,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