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0주간 월요일.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님.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마태 5,3)
오늘 <복음>은 “참 행복”에 대한 선언입니다. “행복하여라”(μακαριοι)는 용어는 <성경>에서는 단순히 인간의 행복을 말한다기보다 ‘하느님의 인정을 받았다.’는 점에 강조를 둡니다. 특히, 이 용어는 주님의 길을 걸으며 그분께 피신하는 이들에게 선언됩니다. 또한, ‘행복한 사람, 복된 사람'은 어떤 특정 상황이나 특정 태도가 지니는 가치 기준을 가리는데, 여기 “참 행복”에서는 영적 가난, 슬픔, 온유, 자비, 깨끗한 마음, 의로움 등 인간적 특정한 상황에서의 특정한 태도를 강조합니다. 결국, ‘참 행복’은 ‘복음적 인간’, ‘복된 인간’이 되는 방식에 대한 선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참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이들은 우선,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그들은 한 마디로,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된 사람들입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마태 4,10) 하셨으니, 회개한 이들이야말로 하늘나라를 차지하는 가난한 이들입니다. 비록 세상 안에서는 부유하지 못할지라도, 하느님 안에서는 부유하게 된 이들입니다. 당신을 이미 차지한 까닭에 더 이상 아무 것도 차지할 것이 없는 까닭입니다.
이들은 ‘슬퍼할 줄을 아는 이들’입니다. 가엾이 여기는 당신의 마음에 가슴이 찔린 까닭입니다.
이들은 ‘온유한 이들’입니다. 당신의 품에 안겨 다독거려진 까닭입니다.
이들은 ‘의로움에 주리고 목말라하는 이들’입니다. 참된 음료인 당신께 맛 들인 까닭입니다.
이들은 ‘자비를 베풀 줄 아는 이들’입니다. 당신의 마음을 선사받은 까닭입니다.
이들은 ‘마음이 깨끗한 이들’입니다. 당신의 손길에 매만져진 까닭입니다.
이들은 ‘평화를 위해 일하는 이들’입니다. 당신 손이 이끄는 까닭입니다.
이들은 ‘의로움 때문에 모욕을 받으면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이들’입니다. 그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주님의 것이 된 까닭입니다.
이들은 언제나 주님 앞에 있기에 강해지기보다는 약해질 줄을 알고, 능력을 갖추기보다는 무력해질 줄을 알고, 현명하기보다는 어리석을 줄을 아는 이들입니다. 주님 면전에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해결 받기를 즐겨하고, 자신이 해결사가 아니라 해결 받아야 할 존재임을 깨달은 이들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주인공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님 되시도록 하는 이들입니다.
이들이 참 제자들입니다. 자신이 부서져 사라지는 것이 생명의 길이요, 옳고도 지는 것이 사랑의 길인 까닭입니다. 그렇습니다. 이토록, “참 행복”을 따라 사는 이들이 참으로 복된 이들입니다. 참 제자들인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행복하여라. ~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1-12)
주님!
가난을 살게 하소서. 당신을 이미 차지한 까닭에 더 이상 아무 것도 차지할 것이 없게 하소서.
슬퍼할 줄을 알게 하소서. 가엾이 여기는 당신의 마음에 제 가슴이 찔리게 하소서.
온유해 지게 하소서. 당신의 품에 안겨 다독거려지게 하소서.
의로움에 주리고 목말라하게 하소서. 참된 음료인 당신께 맛 들어지게 하소서.
자비를 베풀게 하소서. 측은히 여기는 당신의 마음을 선사받게 하소서.
제 마음을 깨끗하게 하소서. 당신의 손길에 매만져지게 하소서.
평화를 위해 일하게 하소서. 당신 손이 저를 이끌게 하소서.
의로움 때문에 모욕을 받으면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소서.
제가 그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주님의 것이 되게 하소서.
이 복된 삶이 제게는 참된 행복이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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