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9일 연중 제18주간 금요일
제1독서 <불행하여라, 피의 성읍!> ▥ 나훔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2,1.3; 3,1-3.6-7 1 보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 평화를 알리는 이의 발이 산을 넘어온다. 유다야, 축일을 지내고 서원을 지켜라. 불한당이 다시는 너를 넘나들지 못할 것이다. 그는 완전히 망하였다. 3 약탈자들이 그들을 약탈하고 그들의 포도나무 가지들을 망쳐 버렸지만, 정녕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영예처럼 야곱의 영예를 되돌려 주시리라. 3,1 불행하여라, 피의 성읍! 온통 거짓뿐이고 노획물로 가득한데 노략질을 그치지 않는다. 2 채찍 소리, 요란하게 굴러 가는 바퀴 소리, 달려오는 말, 튀어 오르는 병거, 3 돌격하는 기병, 번뜩이는 칼, 번쩍이는 창, 수없이 살해된 자들, 시체 더미, 끝이 없는 주검. 사람들이 주검에 걸려 비틀거린다. 6 나는 너에게 오물을 던지고 너를 욕보이며 구경거리가 되게 하리라. 7 너를 보는 자마다 너에게서 달아나며, “니네베가 망하였다! 누가 그를 가엾이 여기겠느냐?” 하고 말하리니, 내가 어디서 너를 위로해 줄 자들을 찾으랴?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24-28 2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5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26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27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올 터인데,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이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자기 나라에 오는 것을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정복했던 아시라의 니네베의 멸망을 예고하십니다. “유다야, 축일을 지내고 서원을 지켜라. 불한당이 다시는 너를 넘나들지 못할 것이다. 그는 완전히 망하였다. 약탈자들이 그들을 약탈하고 그들의 포도나무 가지들을 망쳐 버렸지만, 정녕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영예처럼 야곱의 영예를 되돌려 주시리라.”(나훔 2,2-3)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북부 왕국을 멸망시키고 혼합종교를 통하여 야훼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위협했던 아시리아 제국을 후대의 바빌론 제국과 함께 반대했던 것입니다. 예언자들은 한결같이 하느님께 대한 신앙이 흔들린 우상숭배가 이스라엘 왕국을 멸망시킨 원인으로 꼽고 있습니다. 예언자는 천하를 호령하던 아시리아도 멸망의 때가 있고 그 역사를 주도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심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아시리아는 북부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도 수시로 남부 유다 왕국까지고 침략하며 위협했던 것입니다. 예언자는 포도나무 가지를 비유로 하며 유다 왕국의 건재함을 또한 예언하고 있습니다. 마태오는 제자들에게 해주신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마태 16,24-25) 여기서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을 무슨 의미일까요? 자신을 버린다는 것의 반대 의미로는 ‘자기 자신을 위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강조하시는 소외된 이들에게는 관심도 없고 자기와 자기 가족만을 챙기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자기와 가족 챙기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하지요. 그러다보면 가족 외에 다른 이들에게 무관심하게 대할 수밖에 없겠지요. 그리고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일에만 관여하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라는 말을 자동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면 의리도 또 옳고 그름도 따지지 않는, 그야말로 자기 중심의 판단을 갖고 사는 것이지요. 그러한 바탕에서는 진정한 평화가 있을 수 없지요. 나라와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즈음 힘이 없는 나라는 전쟁으로 가난으로 악순환을 거듭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세계의 정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무고하고 힘이 없는 나라의 어린이들이까지도 희생되는데도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는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지를 따지고 침묵을 지키는 요즈음 세태입니다. 자본주의가 인간의 경제 발전에 많은 기여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물질적 풍요와 소비가 과연 인간을 참다운 행복으로 이끌어 주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대답에 더 비중을 싣고 있습니다. 인간 이기가 만들어 낸 쓰레기 더미만 보아도 그렇고 또 핵 폐기는 이 지구상에서 풀기 힘든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이 세상을 진정으로 구원으로 이끌어 주실 분은 주님이시고 십자가의 희생과 사랑만이 그 모두를 해결하는 열쇠라 하겠습니다. 자기를 버린다는 것은 소중한 생명까지도 주님과 복음을 위해서 바친다는 뜻이지요. 신앙에는 자기희생이 바탕을 이루기에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것입니다. 그런데 참다운 생명은 자기를 버리고 주님으로부터 받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머무는 신앙이 아니라 자기의 소중한 것 까지도 자기 십자가와 함께 주님께 바치는 자기희생과 순교의 삶이야말로 진정한 신앙의 의미를 갖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자기와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며 뜻 깊은 하루를 맞읍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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