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7일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제1독서
<우리는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4,6ㄴ-15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6 ‘기록된 것에서 벗어나지 마라.’ 한 가르침을 나와 아폴로에게 배워,
저마다 한쪽은 얕보고 다른 쪽은 편들면서
우쭐거리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7 누가 그대를 남다르게 보아 줍니까?
그대가 가진 것 가운데에서 받지 않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모두 받은 것이라면 왜 받지 않은 것인 양 자랑합니까?
8 여러분은 벌써 배가 불렀습니다. 벌써 부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를 제쳐 두고 이미 임금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정말 임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도 여러분과 함께 임금이 될 수 있게 말입니다.
9 내가 생각하기에, 하느님께서는 우리 사도들을 사형 선고를 받은 자처럼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과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된 것입니다.
10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슬기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약하고 여러분은 강합니다.
여러분은 명예를 누리고 우리는 멸시를 받습니다.
11 지금 이 시간까지도, 우리는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매 맞고
집 없이 떠돌아다니고 12 우리 손으로 애써 일합니다.
사람들이 욕을 하면 축복해 주고 박해를 하면 견디어 내고
13 중상을 하면 좋은 말로 응답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쓰레기처럼, 만민의 찌꺼기처럼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14 나는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고 이런 말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나의 사랑하는 자녀로서 타이르려는 것입니다.
15 여러분을 그리스도 안에서 이끌어 주는 인도자가 수없이 많다 하여도
아버지는 많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내가 복음을 통하여 여러분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1-5
1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가로질러 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었다.
2 바리사이 몇 사람이 말하였다.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한 일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4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아무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집어서 먹고
자기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5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미사의 말씀은 안식일 법의 진정한 의미를 묻습니다.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바리사이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는 제자들을 보고 예수님께 항의합니다. 제자들의 행동을 추수에 준하는 노동으로 간주한 것이지요. 아마도 장정인 제자들이 긴 선교 여행 동안 허기가 져서 그랬을 것 같습니다. 남의 밀밭 사이를 이동 중이었으니 곡식을 거두어 이득을 취하거나 음식을 장만하는 노동의 의도도 아니었을 터이고요. 하지만 바리사이들은 사람 보호와 존중의 가치로 법을 활용하기보다 트집을 잡으려고 들이대고 있습니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한 일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루카 6,3)
예수님은 대답 대신, 유다인이 자랑으로 여기는 성왕 다윗의 일화를 상기시키십니다. 다윗 역시 굶주렸을 때 사제들만 먹게 되어 있는 제사 빵을 먹었던 일이 있으니까요(1사무 21,2-7 참조). 사실 모든 인간의 일거수일투족과 모든 상황에 적용할 수 있을 만큼 완벽하게 정교한 법은 없습니다. 오히려 그 법의 정신이 대부분의 상황을 해석하는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지요.
당시 유다 사회에는 크게 세 부류가 있었을 듯합니다.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는 것으로 나름 삶의 이득을 취하는 부류와, 안식일이나 평일이나 생활을 유지하는데 별로 부담을 느끼지 않는 부류, 그리고 안식일의 정지와 멈춤이 쉼은커녕 생계에 큰 위협이 되는 부류입니다. 사사건건 안식일 규정을 들어 예수님과 제자들을 공격하는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전자에 속할 것이고, 그들이 죄인이라 단죄하는 가난한 이들이 후자에 속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득권자라는 이유로 사회 종교 지도층을 소외시키지 않으셨지만, 가난한 이들에게 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사실 기득권자들은 예수님이 아니어도 사회적으로 이미 많은 관심과 위로와 이득을 충분히 받아 누리고 있으니 그들로서는 근본도 모르는 가난뱅이 예언자 설교가의 애정이 그다지 절실하지도 않았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가난한 이들은 다릅니다. 율법도 포기한 죄인이라는 손가락질과 멍에를 치우고 다가오시는 분은 예수님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들에게 예수님은 인격을 존중하고 존재 자체를 받아들여 주시는 아버지 같고 엄마 같고 친구 같은 스승입니다. 예수님은 배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은 이에게 법을 들이대기보다 "저런, 배가 많이 고팠구나." 하고 연민하는 분이시지요.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여전히 코린토 신자들을 꾸짖습니다.
"여러분은 벌써 배가 불렀습니다. 벌써 부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를 제쳐 두고 이미 임금이 되었습니다."(1코린 4,8)
사도는 그토록 열성을 다해 지도한 코린토 신자들이 자기들을 이끌어 준 사도들과 그들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스스로 이미 하늘 나라를 차지하여 하느님의 통치권을 함께 행사한다는 망상에 빠진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그냥 넘길 수 없었습니다.
"지금 이 시간까지도, 우리는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매 맞고 집 없이 떠돌아다니고 우리 손으로 애써 일합니다."(1코린 4,11)
사도는 주님의 제자들이 그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현실에서 겪어내고 있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상술합니다.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에게는 명예나 호의호식, 분파나 교만이 스며들 자리가 없습니다. 제자들이 닮고자 따르는 그리스도께서 공생활 동안 배고픔과 피로에 지칠 때까지 양떼를 찾아 먼 길을 오가셨고, 결국 죄인까지 끌어 안는 사랑 때문에 수난과 죽음을 당하셨으니까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내가 복음을 통하여 여러분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1코린 4, 15)
그들이 그리스도인으로 태어나도록 도운 영적 "아버지"가 이처럼 고군분투하며 하늘 나라를 확장해 나가고 있는데, 그 자녀들이 그토록 쉽사리 자기 주제와 복음의 정신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아버지"에게 참 가슴 아픈 일이겠지요.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언젠가 후회를 할 것을 알면서도 지금은 따끔한 말로 코린토 신자들을 일깨웁니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루카 6,5)
예수님 역시 바리사이들에게 단호히 선언하십니다. 예수님께 올가미를 씌우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그들에게 어쩌면 선전포고일 수도 있고,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수도 있지만 예수님은 돌려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세상에 사람의 생명과 인격과 존엄성 위에 군림할 수 있는 법은 없습니다. 자의로 또는 타의로 법의 해석을 그르치는 오류가 있을 따름이지요. 하느님께서도 사랑이라는 기반 위에 율법을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신 당신이 안식일의 주인이시라고 당당히 선언하십니다. 당신이 율법의 정신을 바로 세워 완성하실 것이니까요.
안타까워서 하는 사족 같은 말씀입니다만, 바리사이들이 사람의 생명을 존중하고 약자들을 보듬는 율법의 정신을 수호하는데 자기들에게 부여된 지식과 특권을 집중했다면, 그들은 더욱 겸손하고 포용력 넓은 현자로 이스라엘의 진정한 스승이 되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듭니다. 그러했다면 예수님께 대한 불필요한 저항과 소모적인 선동, 무고와 무죄한 사형 따윈 없었을 테니까요. 오늘날의 기득권층의 행태가 이들의 모습과 겹쳐 떠오르는군요.
무엇이 진리인지 헷갈릴 때는 본질로 돌아가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삶의 곳곳에서 밀려드는 다양한 요구와 도전들 속에서 자신이 제대로 반응하고 있는지 혼란스럽다면, 잠시 멈추어 "내가 사랑하고 있는가?"를 성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이는 일부러 말씀을 거스르거나 이웃에게 해를 입히지 않지요. 앞질러 단죄하지 않고 스스로를 심판자라 착각하지도 않으니까요. 그러니 아직 사랑하고 있다면 괜찮은 겁니다.
사랑하는 벗님! 돌판에 새긴 법을 넘어서 우리 심장에 새겨 주신 사랑의 법이 우리를 온전히 지배하기를 주님께 청합시다. 그 사랑 안에서 더욱 자유롭게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연민하며 나아갑시다. 사랑으로 사랑을 완성해 나갑시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아멘.
▶ 작은형제회 오 상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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