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양승국(스테파노) 신부님 말씀 강

~ 연중 제 23주간 목요일 / 양승국 신부님 ~

2024년 9월 12일  연중 제23주간 목요일


제1독서
<약한 형제들의 양심에 상처를 입히는 것은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8,1ㄷ-7.11-13
형제 여러분, 1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성장하게 합니다.
2 자기가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아직 알지 못합니다.
3 그러나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께서도 그를 알아주십니다.
4 그런데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과 관련하여,
우리는 “세상에 우상이란 없다.”는 것과
“하느님은 한 분밖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5 하늘에도 땅에도 이른바 신들이 있다 하지만
─ 과연 신도 많고 주님도 많습니다만 ─
6 우리에게는 하느님 아버지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나왔고 우리는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또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있고 우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합니다.
7 그렇지만 누구나 다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아직까지도 우상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정말로 그렇게 알고 먹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약한 양심이 더럽혀집니다.
11 그래서 약한 그 사람은 그대의 지식 때문에 멸망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형제를 위해서도 돌아가셨습니다.
12 여러분이 이렇게 형제들에게 죄를 짓고 약한 그들의 양심에 상처를 입히는 것은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13 그러므로 음식이 내 형제를 죄짓게 한다면,
나는 내 형제를 죄짓게 하지 않도록
차라리 고기를 영영 먹지 않겠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27-3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7 “내 말을 듣고 있는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29 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두어라.
30 달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주고,
네 것을 가져가는 이에게서 되찾으려고 하지 마라.
31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32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은 사랑한다.
33 너희가 자기에게 잘해 주는 이들에게만 잘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그것은 한다.
34 너희가 도로 받을 가망이 있는 이들에게만 꾸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요량으로 서로 꾸어 준다.
35 그러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에게 잘해 주고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
그러면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분께서는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기 때문이다.
36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37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38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천상적 사랑, 참사랑을 요구하시는 주님!


너무나 억울하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랑하는 사람들 먼저 떠나보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제가 몸 담고 있는 피정 센터를 찾은 분들 가운데 참으로 많은 분들이 그런 사연 한 보따리를 안고 오십니다.


그를 떠나 보낸 이후 내 삶이 내 삶이 아닌 그분들 바라보며 너무 환하게 웃고 다녀도 안 되겠구나, 너무 행복한 표정 지어도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그가 없는 이 세상, 더 이상 의미가 없는 분들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를 불시에 떠나보내고 난 후 사는게 사는게 아닌 분들, 차라리 내가 그를 대신해서 먼저 갔으면 하는 마음에, 밥숫가락 뜨는 것조차 송구스런 분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게 한 그 웬수는 또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요? 참으로 풀리지 않는 숙제입니다. 복음의 가르침, 머리로는 알겠는데, 몸으로는 도저히 용납이 안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대목을 접할 때 마다 화딱지가 하늘 끝까지 솟구치니 참으로 큰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는 말씀은 너무나 기가 막힌 말씀이어서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막막할 정도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치고 무리한 요구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원수는 보통 어떤 사람을 두고 원수라고 합니까? 국어 사전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나 자기 집에 해를 입혀 원한이 맺히게 된 사람.’


결국 원수는 나를 헤어날 수 없는 깊은 수렁 속으로 밀어트린 사람, 잘 나가던 내 인생을 끝장나게 만든 사람, 내 가정을 산산조각나게 만든 사람,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몹쓸 짓을 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사랑하라니 참으로 납득하기 힘든 요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적당한 선에서의 양보,너그러운 관용, 신사다움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 보다 더 적극적인 천상적 사랑, 참 사랑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결국 바보처럼 살라는 말씀,이 세상에 살아가지만, 이 세상을 초월하라는 말씀,더 이상 이 세상 것들에 대해 기대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요청에 제대로 응답하기 위해서는 인간을 넘어서야 가능합니다. 자아를 완전히 초월해야만 가능합니다. 협소한 인간적 관점, 인간의 시선을 벗어나 하느님 눈으로 바라보고 하느님의 마음을 지닐 때 가능한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적당히 한걸음이 아니라 크게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인간을 넘어 하느님처럼 되라고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인성을 극복하고 신성을 획득하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요원해 보이겠지만 언젠가 세월이 좀 더 흐르고, 우리의 시야가 좀 더 광대해지고, 우리 안에서 신성이 점점 성장해가는 어느 순간, 불가능해보이던 예수님의 권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 현실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참으로 나약하고 부족한 존재가 인간이지만 우리 인간 안에 하느님의 성령께서 힘차게 활동하실 때, 우리 인간은 비루함에서 위대함으로 이기적 성향에서 이타적 성향으로, 인간적 사랑에서 신적 사랑으로 나아가 마침내 기꺼이 원수를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날, 우리가 원수를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그날, 우리 삶 안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기적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양승국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