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 복음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39-42 그때에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 제자들에게 39 이르셨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40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 41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루카 6,39ㄴ-42).” 1)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라는 말씀은, 다음 말씀들에 연결됩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눈먼 인도자들아! ‘성전을 두고 한 맹세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성전의 금을 두고 한 맹세는 지켜야 한다.’고 너희는 말한다. 어리석고 눈먼 자들아! 무엇이 더 중요하냐? 금이냐, 아니면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마태 23,16-17)” “눈먼 인도자들아! 너희는 작은 벌레들은 걸러 내면서 낙타는 그냥 삼키는 자들이다(마태 23,24).” “너희가 눈먼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 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요한 9,41).”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것은, ‘남을 죄짓게 하는 죄’에 해당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남을 죄짓게 하는 죄를 짓는 자들’을 아주 엄하게 단죄하셨습니다(루카 17,1-3).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 지식을 자랑하다가 흔히 그렇게 잘못된 길로 갑니다. 신앙의 진리를 가르치는 일은, 지식을 전해 주는 일이 아니라 ‘삶’의 모범을 보이는 일입니다. 남을 가르치기 전에 먼저 기도하고, 묵상하고, 온 삶으로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가르치는 직무를 받지 않았더라도, 모든 신앙인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하는 사람들이고(마태 5,13-16), 세상 사람들을 하느님에게로, 또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임무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만일에 어떤 신앙인이, 또는 교회 전체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면, 그것은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하는 일이고, 남을 죄짓게 하는 죄를 짓는 일입니다. 뒤의 12장에 이런 경고 말씀이 있습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그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의 뜻을 모르고서 매 맞을 짓을 한 종은 적게 맞을 것이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루카 12,47-48).” 2)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 라는 말씀은, 가르치는 위치에 있든지 아니든지 간에 모든 신앙인은 스승이신 예수님의 뒤만 충실하게 따라가야 하는 제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아무도 예수님보다 위에 설 수 없고, 예수님보다 앞에서 갈 수도 없습니다. 신학이나 성서학 박사 학위를 몇 개씩 가지고 있더라도... 이 말씀은 최후의 만찬 때 하신 말씀에 연결됩니다. “너희가 나를 ‘스승님’, 또 ‘주님’ 하고 부르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나는 사실 그러하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요한 13,13-17).” 3) ‘티’와 ‘들보’에 관한 말씀은, 다음 말씀들에 연결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말씀입니다.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 그가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루카 17,4).”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그러나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마태 18,15-16ㄱ).” 죄를 짓는 형제를 꾸짖고 타이를 때, ‘티’와 ‘들보’에 관한 말씀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혹시 형제의 죄는 ‘티’이고, 그 형제를 타이르고 있는 나의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 것은 아닐까?” 형제를 꾸짖고 타이르는 일은, ‘의인’인 내가 ‘죄인’인 그를 꾸짖고 타이르는 일이 아니라, 같은 죄인으로서 ‘함께’ 회개하자고 권고하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에, “나의 눈 속에 티는 있어도 들보는 결코 없다.” 라고 아주 자신 있게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백 퍼센트 ‘교만한 위선자’입니다. 4)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라는 말씀은, 남의 죄를 꾸짖고 타이르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의 삶부터 회개하고 바로잡으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자기반성과 회개만 하면서 남을 타이르는 일을 아예 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잘못하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멸망을 당하든지 말든지 그것은 그들의 문제이고, 나에게는 내가 구원받는 일만이 중요할 뿐이다.” 라는 ‘사랑 없는 이기적인’ 생각도 역시 죄입니다.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라는 말씀은, 형제의 티를 빼내는 일도 소홀히 하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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