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7주간 금요일 강론>(2024. 10. 11. 금)(루카 11,15-26)
복음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15-26
그때에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셨는데,
군중 15 가운데 몇 사람은,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고 말하였다.
16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느라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그분께 요구하기도 하였다.
17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18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한다.
19 내가 만일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말이냐?
그러니 바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20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21 힘센 자가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저택을 지키면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22 그러나 더 힘센 자가 덤벼들어 그를 이기면,
그자는 그가 의지하던 무장을 빼앗고 저희끼리 전리품을 나눈다.
23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24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면,
쉴 데를 찾아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지만 찾지 못한다.
그때에 그는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말한다.
25 그러고는 가서 그 집이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26 그러면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신앙생활은 ‘구경’이 아니라 ‘동참’입니다.』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고 말하였다. ......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한다. ......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면,
쉴 데를 찾아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지만 찾지 못한다.
그때에 그는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말한다.
그러고는 가서 그 집이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면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루카 11,15.17-18ㄱ.23-26)”
1) 여기서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예수님을 안 믿는
율법학자들(마르 3,22), 또는 바리사이들입니다(마태 12,24).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내시는 것을 많은 군중이 직접
보았기 때문에(루카 11,14), 그들은 그 일 자체를
부정하지는 못하고, 그 일이 ‘하느님의 힘’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부정하는 쪽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마귀는 ‘하느님의 힘’으로만 쫓아낼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힘’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싫어서, 예수님이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으로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억지 논리’를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도 싫고,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인정하는 것도 싫어서 억지로 생각해낸 ‘궁여지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억지 논리’를
상식적인 논리로 반박하십니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라는 말씀은, “너희의 주장은 ‘말이 안 되는
소리다.’ 라고 반박하신 말씀입니다.
2)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메시아입니다.
사람들을 마귀의 억압에서 해방시키는 일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인간 구원 활동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그 해방은,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해방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활동을 ‘선과 악의 싸움’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선’으로 ‘사탄의 악’을 제압하는 싸움.
이 싸움에는 중립이란 없습니다. 선이 아니면 악입니다.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중간지대는 없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안’이 아니면 ‘밖’이기 때문입니다.>
‘남의 일’처럼 구경만 해도 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구원 활동은 바로 ‘나를’ 위한 활동이기 때문이고,
‘나에게’ 해방과 자유를 주기 위한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3)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라는 말씀은,
당신이 하고 있는 일에 적극적으로, 또 능동적으로
동참하라고 촉구하시는 말씀입니다.
<신앙생활은 ‘구경’만 해도 되는 생활이 아니라
‘동참’해야만 하는 생활입니다.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입니다.>
‘죄만 안 지으면 된다.’ 라고 생각하면서,
수동적으로, 또 소극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는 죄만 안 지으면 들어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마태 7,21).
4) 24절-26절의 말씀은, 예수님 덕분에 자유와 해방을
얻었다면, 성령으로 가득 찬 생활을 하라는 가르침입니다.
<마귀 들렸다가 해방된 사람들에게만 하시는 말씀이 아니고,
모든 신앙인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세례를 받고 신앙인이 되면 예수님께서 주시는 자유와
해방과 평화를 얻어 누리게 되는데, 그것으로 만족하면서
아무것도 안 한다면, 마치 주인 없는 빈 집에 도둑이 드는
것처럼 마귀들이 다시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말씀 안에서, 말씀과 함께’
살아야 하고, 자기 자신을(또는 자신의 삶을)
성령으로 가득 채우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자신의 영혼과 정신과 마음을
무방비 상태로 방치하면 안 됩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써
이 세상의 더러움에서 벗어난 그 사람들이 그것에 다시
말려들어 굴복을 당하게 되면, 그들의 끝은 처음보다
더 나빠집니다. 의로움의 길을 알고서도 자기들이 받은
거룩한 계명을 저버린다면, 차라리 그 길을 알지 못하였던
편이 나을 것입니다. ‘개는 자기가 게운 데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돼지는 몸을 씻고 나서 다시 진창에 뒹군다.’는
속담이 그들에게 그대로 들어맞았습니다(2베드 2,20-22).”
예를 들면, 만일에 신앙인이 점쟁이나 무당을 찾아가서
점을 본다면, 그것은 십계명 제1계명을 어기는
큰 죄를 짓는 것이고, 그런 짓을 끊어버리겠다고 서약한
세례 서약을 어기는 죄를 짓는 것이고,
자기 안에 마귀를 다시 끌어들이는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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