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3주간 수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희망의 순례자
<이미 지상地上에서 시작된 천상天上의 삶>
대한민국 어디나 하느님의 아름다움에 감동하는 단풍 황홀한 11월 만추의 위령성월입니다. 눈만 열리면 온통 우리를 감동시키는 하느님의 위업을 발견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아름다움으로 표현되고 이에 감격한 우리들은 찬미와 감사로 응답합니다. 이런 감동은 결코 값싼 감동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며 사회 현실에 민감히 깨어 있게 하고 정의와 평화가 실현된 천국 삶의 실현으로 이끌 것입니다. 오늘 옛 어른의 가르침도 새롭게 마음에 와 닿습니다.
“욕심을 비우라는 성현들의 말은 욕심으로 잃었던 나다움을 회복하라는 뜻이다.”<다산>
참으로 하느님을, 진리를 사랑할수록 욕심은 저절로 비워져 나다움의 회복이요 지상에서 시작될 천상의 삶이겠습니다.
“성誠에서 명明에 이르는 것은 본성本性이라 하고, 명明에서 성誠에 이르는 것은 가르침이다. 진실하면 밝아지고, 밝히면 진실해진다.”<맹자>
이래서 하느님 공부와 참나의 공부는 함께 가는 평생공부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과 가까워 질수록 밝아지고 진실해 지고 성실해 짐으로 참나가 되겠기 때문입니다.
만추의 단풍 아름다운 계절, 땅위에 깔린 단풍잎들이 참 장관입니다. 20년전 이때쯤 ‘마침내 별들이 되어’라는 제 시를 읽고 감동한 두 자매들이 자기들의 심정을 고스란히 반영했다며 감사를 표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해의 단풍은 유난히 풍성했고 곱고 밝게 빛났습니다.
“별들이
땅을 덮었다
땅이
하늘이 되었다
단풍나뭇잎들
하늘 향한
사모思慕의 정情 깊어져
빨갛게 타오르다가
마침내
별들이 되어
온땅을 덮었다
땅이 하늘이 되었다
오!
땅의 영광,
황홀한 기쁨
...
죽음도
축제일 수 있겠다.”<2005.11.20.>
2005년은 제 어머님이 돌아가신 해입니다. 이미 지상에서 시작된 천상의 삶이요, 천상을 향한 희망의 순례자되어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시공을 초월하며 참 성인들은 언제나 천상을 향한 여정에 희망의 순례자로 살았습니다. 천상의 하느님께 궁극의 희망을 두고 진리이자 생명이요 길이신 주님을 따라 살아갔습니다. 사막이 빛나는 것은 우물을 품었기 때문이라는 어린왕자에 나오는 대목처럼 사막의 순례 여정중에도 희망의 주님을 품고 살았기에 환희로 빛나는 삶을 살았던 성인들입니다.
오늘 복음의 ‘미나의 비유’가 참 적절합니다. 예수님은 천상여정을 상징하는 예루살렘 여정중에 참 의미심장한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그대로 지상에서 천상을 향한 여정중의 우리에게 교훈이 되는 말씀입니다. 열미나를 열 사람에게 한 미나씩 나눠줬고 왕권을 받고 돌아온 주인은 결과를 확인합니다. 지상에서 천상을 향한 여정중이었던 종들중 천상의 꿈과 비전, 희망을 지니고 기쁘게 최선을 다함으로 열미나를, 또 다섯 미나를 남겼던 종들은 주인의 극찬과 더불어 넘치는 상급도 받습니다.
“잘 하였다, 착한 종아!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져라...너도 다섯 고을을 가져라.”
천상의 하느님께 궁극의 희망을 두고 자기 역량을 다했던 이들의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지상의 삶이 참 아름답고 보기 좋습니다.
그러나 한미나 그대로 였던, 천상의 하느님을 잊고, 희망을 잃고 절망중에 무기력하고 나태하게 지냈던 의심많고 소심한 종은 주인의 호된 질책을 듣고 한미나까지 빼앗겨 버립니다.
“이 악한 종아, 나는 네 입에서 나온 말로 너를 심판한다...”
이어 곁에 있는 이들에게 명령합니다.
“저자에게서 그 한미나를 빼앗아 열미나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 마저 빼앗길 것이다.”
과연 나는 어느쪽입니까? 이미 지상에서 시작된 천상여정의 삶이요. 생생한 희망과 꿈을 지니고 자기 몫의 인생에 최선을 다해야 함을 배웁니다. 희망을 잃고 시간을 낭비하면서 하나도 성취하지 못한 한미나 그대로의 인생이라면 얼마나 쓸쓸하고 허전하겠는지요! 텅빈충만이 아니라 텅빈공허의 삶이겠습니다.
그러나 좋은 수확을 끝낸 우리 수도원 배밭의 텅빔은 넉넉하고 편안한 텅빈충만의 분위기입니다. 이런 노년이라면 참 행복할 것입니다. 쏜살같이 흐르는 세월입니다 받은 한미나를 얼마나 남기고 있는지 매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미 지상에서 시작된 천상 여정의 삶이요 우리는 희망의 순례자되어 살아갑니다. 과연 생생한 희망을 지니고 의욕적으로 내 역량을 발휘하여 한미나를 잘 부풀리고 있는지요?
이의 빛나는 모범이 파트모스 섬에 유배되어 고립과 고독의 삶중에도 풍성한 천상체험을 통해 내적풍요의 지상천국을 살았던 요한사도입니다. 천상체험중 절정부분을 인용합니다. 하느님 어좌 한가운데와 그 둘레에 있는 네 생물은, 저마다 날개 여섯에 안으로는 눈이 가득 달린 네 생물은, 밤낮 쉬지 않고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또 앞으로 오실분!”
바로 이 부분은 미사전례중 '거룩하시다'를 통해 우리가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부분으로 우리의 영적풍요의 원천이 됩니다. 이어 스물네 원로는 어좌에 앉아 계신 분 앞에 엎드려 영원무궁토록 살아계신 그분께 경배하며 찬미합니다.
“주님, 저희의 하느님, 주님은 영광과 영예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셨고, 주님의 뜻에 따라 만물이 생겨나고 창조되었습니다.”(묵시4,11)
바로 우리 가톨릭교회 수도공동체는 이 성구를 매주 화요일 저녁성무일도시 찬미가로 바칩니다. 그러고 보닌 성전 제대를 중심으로 하여 공동으로 바치는 교회공동체의 찬미와 감사의 전례기도는 그대로 천상 어좌 곁의 천사공동체의 찬미를 닮았음을 봅니다. 파트모스 유배중인 사도 요한이 이런 내적풍요의 영적체험으로 광야의 여정을 살아냈듯이 우리 또한 미사공동전례 은총이 천상희망을 키워주면서 맡은 바 책임에 최선을 다해 살아갈 수 있는 지상천국의 삶의 동력이 됨을 깨닫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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