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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 송영진 신부님 ~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강론>
(2025. 1. 4. 토)(요한 1,35-42)


복음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35-42
그때에 35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서 있다가,
36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보며 말하였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37 그 두 제자는 요한이 말하는 것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38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
“무엇을 찾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라삐’는 번역하면 ‘스승님’이라는 말이다.
3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보아라.” 하시니,
그들이 함께 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날 그분과 함께 묵었다.
때는 오후 네 시쯤이었다.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간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였다.
41 그는 먼저 자기 형 시몬을 만나,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하고 말하였다.
‘메시아’는 번역하면 ‘그리스도’이다.
42 그가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가자, 예수님께서 시몬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앞으로 너는 케파라고 불릴 것이다.”
‘케파’는 ‘베드로’라고 번역되는 말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믿음과 삶은 하나이고, 믿음과 증언도 하나입니다.』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그곳에 다시 서
있다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보며 말하였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그 두 제자는 요한이 말하는
것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 ‘무엇을 찾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라삐‵는 번역하면 ′스승님‵이라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보아라.’ 하시니,
그들이 함께 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날 그분과
함께 묵었다. 때는 오후 네 시쯤이었다.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간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였다. 그는 먼저 자기 형 시몬을 만나,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하고 말하였다. ′메시아‵는
번역하면 ′그리스도‵이다. 그가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가자,
예수님께서 시몬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앞으로 너는 케파라고 불릴 것이다.’
′케파‵는 ′베드로‵ 라고 번역되는 말이다(요한 1,35-42).”


1)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라는 말은,
“예수님은, 당신의 목숨을 속죄 제물로 바쳐서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메시아” 라는 증언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 두 사람이 요한의 증언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간 것은, 요한의 증언을 믿었음을,
즉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믿기 시작했음을 뜻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이 메시아를 갈망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과 메시아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기를
희망하고 있었다는 것도 나타냅니다.
“무엇을 찾느냐?”는 “나에게서 무엇을 찾느냐?”인데,
전후 상황을 생각하면, 이 질문은 “너희가 인생에서 찾는
것이 무엇이냐?”, “너희는 어떤 인생을 살고 싶으냐?”입니다.


2) 이 질문의 뜻을 제대로 알아들었다면, 그 두 제자는
“저희는 메시아를 찾고 있습니다.”, 또는 “메시아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어야 할 것
같은데, 그들은 예수님의 숙소가 어디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표현만 보면 동문서답 같지만, 사실 이 대답은
그들의 믿음과 심정을 나타냅니다.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라는 말은,
뜻으로는 “저희는 스승님의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싶다는 것은, 이미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기 시작했음을 나타내고, 메시아께서 주시는
구원을 찾고 있고, 그것을 받기를 바란다는 것도 나타냅니다.
“와서 보아라.” 라는 말씀은, 제자가 되고 싶다는 두 제자의
요청을 받아들이신다는 뜻인데, 이 말씀은 15장에 있는
다음 말씀과 합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16).”
제자들이 예수님을 스승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들을 제자로 부르셨고,
그들이 그 부르심에 응답함으로써 제자가 되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을 통해서
그 두 사람을 부르셨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도들뿐만 아니라, 모든 신앙인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해서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의식했든지 아니든지 간에......
<종교를 선택한 것도, 또 신앙을 갖기로 결정한 것도
자기가 한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더러 있는데, 그 생각은
아주 오만한 생각이고, 교리에 어긋나는 생각입니다.>


3) 두 제자는 예수님과 함께 가서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았고, 예수님과 함께 하룻밤을 지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삶을 직접 보았고,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다는 뜻인데, 예수님의 ‘삶’을 보고, ‘말씀’을 들으면서,
믿음이 확신으로 바뀌게 됩니다.
제자들의 변화 과정은 모든 신앙인이 거치게 되는
변화 과정이기도 합니다.
누구든지 신앙인이 먼저 된 사람들의 증언과 인도를 받아서
신앙의 길로 들어서고, 그 다음에 성경과 교리를 공부하게
되고, 준비가 되었을 때 세례를 받는데,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하려면 예수님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지내는 동안
그들의 믿음이 오락가락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믿음이 확신으로 바뀌었다고 해도
완성 단계에 도달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믿음이 완성 단계에 도달한 것은 예수님의 수난,
부활, 승천, 성령강림을 체험한 후에 이루어졌습니다.>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안드레아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다른 하나는 사도 요한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4) 제자들의 믿음이 확신으로 바뀐 다음에
첫 번째로 한 일이 다른 사람에게 ‘증언’하는
일이었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믿음은 “믿는 대로 사는 것”이고,
동시에 “자신의 믿음을 말과 삶으로 증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라는 안드레아 사도의 말은,
실제 상황에서는 기쁨에 가득 차서
큰 소리로 외치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는 예수님이 메시아라고 확신하는 순간
기뻐하면서 자기 형에게 달려갔을 것이고,
형을 보자마자 큰 소리로 외쳤을 것입니다.
<단순한 증언이 아니라 ‘큰 기쁨’을 전하는 ‘선포’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