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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연중 제 2주간 수요일 / 조재형 신부님 ~

 

제1독서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7,1-3.15-17
형제 여러분,
1 멜키체덱은 “살렘 임금”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사제”로서,
“여러 임금을 무찌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그에게 축복하였습니다.”
2 그리고 아브라함은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먼저 그의 이름은 ‘정의의 임금’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또한 살렘의 임금 곧 평화의 임금이었습니다.
3 그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으며 족보도 없고
생애의 시작도 끝도 없는 이로서 하느님의 아들을 닮아,
언제까지나 사제로 남아 있습니다.
15 멜키체덱과 닮은 다른 사제께서 나오시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16 그분께서는 육적인 혈통과 관련된 율법 규정이 아니라,
불멸하는 생명의 힘에 따라 사제가 되셨습니다.
17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 하고
성경에서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안식일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3,1-6
그때에 1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그곳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2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3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 하시고,
4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5 그분께서는 노기를 띠시고 그들을 둘러보셨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손을 뻗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6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곧바로 헤로데 당원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목사님이 ‘개신교 신자들이 가톨릭으로 가는 이유’를 이야기했습니다. 목사님은 최근의 통계를 설명하였습니다. 한때 개신교 신자는 천만 명이 넘었는데, 지금은 팔백만 명이 안 된다고 합니다. 반면에 가톨릭 신자는 이백만 명이 조금 넘었는데 지금은 오백만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가톨릭 신자의 증가는 세례받는 새 신자도 있지만, 개신교에서 개종한 신자가 많았다고 합니다. 이런 추세로 가면 한국에서 가톨릭 신자가 개신교 신자보다 많아질 거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개신교회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사람들을 심층 인터뷰한 자료에서 두 가지 이유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하나는 ‘명품성’이었다고 합니다. 개신교회는 말씀, 친교, 봉사, 나눔이 있어서 좋은데 허전한 무엇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허전함이 ‘영성’인 경우도 있습니다. 반면에 가톨릭은 개신교처럼 다양하지도 않고, 친절하지도 않지만, 명품 같은 느낌이 있었다고 합니다. 2000년 동안 같은 전례를 이어오는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전례와 성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개신교 신자들에게 가톨릭의 전례, 성사, 수도자, 성직자의 모습은 마치 명품처럼 느껴졌다고 합니다.

 

다른 하나는 ‘접근성’이었다고 합니다. 개신교회는 봉사하면서 직급이 있는데, 가톨릭은 그런 직급이 없다고 합니다. 가톨릭은 어느 곳이나 같은 전례와 말씀으로 미사가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여행을 가도, 출장을 가도 성당만 찾아가면 미사에 참례할 수 있습니다. 그날 전례는 세계 어디에서나 같기 때문입니다. 저도 성지순례 다닐 때는 제의만 가지고 다녔습니다. 다른 미사 도구는 모두 성당에 있기 때문입니다. 원래 명품은 비싸기도 하고, 쉽게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명품 같은 가톨릭은 쉽게 찾을 수 있고, 큰 비용이 필요 없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과부의 작은 정성을 칭찬하셨듯이, 가톨릭은 헌금을 강조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톨릭이 지닌 소중함을 새삼 알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천주교인이요?” 179년 전에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심문하던 관원의 말입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는 당당하게 ‘나는 천주교인이요.’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사제로서 1년 짧게 사셨지만, 순교로서 신앙을 지켰고, 목자로서 모범을 보였습니다. 지상에서의 삶은 짧았지만, 천상에서 빛나는 별이 되어 한국천주교회를 위해 전구하고 계십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한국천주교회의 수호자가 되셨고, 사제들의 모범이 되셨습니다. 179년 전에 ‘나는 천주교인이요.’라고 대답하는 것은 모든 것을 버린다는 의미였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바친다는 의미였습니다. 성공, 명예, 권력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포기한다는 의미였습니다. 한국천주교회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을 맞이하면서 “당신이 천주교인요?”라는 말을 ‘주제어’로 삼았던 것은 우리들 또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따라서 세상이 주는 평화와 기쁨을 포기하고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살겠다는 다짐입니다. 가난, 병고, 죽음의 골짜기를 간다고 할지라도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두려움 없이 십자가를 지고 간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물어보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합니까?” 제자들은 저마다 이야기하였습니다. “선생님을 엘리야라고도 합니다. 선생님을 예언자라고도 합니다. 선생님을 세례자 요한이라고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이 엘리야가 했던 일과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예언자들이 했던 일과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이 세례자 요한이 했던 일과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렇게 물어보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제자 중에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칭찬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베드로이니 내가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울 것입니다. 나는 이제 천국의 열쇠를 주겠습니다.” 오늘 두 가지를 묵상하면서 하루를 보내면 좋겠습니다. 하나는 “당신은 천주교인이요?”라는 질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입니다. 나는 천주교인답게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는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아들 구세주로 믿고 있는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그분께서는 육체적인 혈통이 관련된 율법 규정이 아니라, 불멸하는 생명의 힘에 따라 사제가 되셨습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