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3주간 토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믿음의 여정, 믿음의 전사
“믿음이 답이다”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주님께 노래하여라, 온 세상아.”(시편96,1)
다산어록 2월 주제는 형창설안(螢窓雪案)으로, ‘책상 안 반딧불과 창밖의 눈빛을 등불 삼아 공부한다’는 뜻으로 갖은 고생을 다해 가며 학문을 연마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공부란 환경에 굴하지 않는 꾸준함’이란 뜻으로 이런 공부야말로 한결같은 믿음의 자세를 뜻합니다. 옛 현자의 말씀이 깊은 묵상자료가 됩니다.
“시는 시대의 진실한 울음이다. 우리는 시를 닮기 위해 시를 읽는다.”<다산>
“시경(詩經)에 있는 시삼백편의 시를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생각이 거짓이 없다’는 것이다.”(詩三百 一言以幣之 曰 思無邪)<논어>
새롭게 마음에 와닿는 참신한 말마디입니다. 영혼에 깊은 울림을 주는 시들이야 말로 그대로 구원입니다. 사랑하면 누구나 시인이 되기 마련입니다. 우리 수도자들이 평생 날마다 끊임없이 공동 시편성무를 기도로 바치는 ‘믿음의 훈련’은 얼마나 믿음생활에 큰 축복인지요!
역시 믿음의 훈련, 믿음의 습관화입니다. 제 평생 정주수도생활에 항구할 수 있도록 결정적 도움을 준 것도, 힘들 때 마다 ‘찾아 온 반가운 손님’과도 같은 무수한 자작시自作詩들의 선물 덕분임을 깨닫습니다. 두 짧은 애송 자작시 나눔입니다.
“나무에게
하늘은
가도가도 멀기만 하다
아예
고요한 호수가 되어
하늘을 담자!”
“밖으로는 산
천년만년 님기다리는 산!
안으로는 강
천년만년 님향해 흐르는 강!”
오늘 강론 주제는 믿음입니다. 믿음보다 수행생활에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참으로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불신불립, 믿음이 없으면 도대체 설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도대체 불안과 두려움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요, 건강을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요, 믿음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것입니다. 인간관계에도 한번 신뢰를 잃으면 회복하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해도 신뢰를 받는 믿음의 사람은 선한 이웃의 도움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믿음’을 주제로 한 제1독서 히브리서 11장은 정말 장관입니다. 40절까지중 일부를 다루지만 마치 믿음의 찬가처럼 들립니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믿음의 전사들의 실화를 읽다보면 우리도 저절로 용기백배, 믿음의 전사가 된 기분입니다.
수도원 주변에는 이런 ‘믿음의 장군’같은 자매님들이 많습니다. 또 우리 가톨릭교회는 믿음의 순교자들이 참 많습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이런 믿음의 도반들이 우리의 믿음 생활에 큰 도움이 됩니다. 오늘 제1독서 히브리서 내용을 일부 소개합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사실 옛 사람들은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곧 이어 믿음으로 살았던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요셉, 모세, 창녀 라합, 무수한 판관들 이름들이 하늘의 별처럼 떠오르고 이 계보는 가톨릭교회를 통해서도 오늘까지 면면히 계승됩니다. 오늘 히브리서는 특히 아브라함의 믿음을 강조하며 결론같은 다음 말마디가 깊은 감동을 줍니다. 믿음의 선배들의 실상을 대하는 느낌입니다.
“이들은 모두 믿음 속에 살다가 믿음 속에 죽어갔습니다.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멀리서 그것을 보고 반겼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은 이 세상에서 이방인이며 나그네일 따름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본향을 찾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실상 그들은 더 나은 곳, 바로 하늘 본향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향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homesick at home) 역설적 존재의 인간임을 깨닫게 되고, 이런 깨달음은 더욱 하느님을 찾게 하니 ‘믿음의 여정’에 큰 도움이 됩니다. 오늘 복음은 저절로 타고난 믿음이 아님을 깨닫게 합니다. 거센 돌풍속 호수 한복판 예수님과 제자들이 타고 있는 배가 풍전등화의 위기상황입니다. 흡사 세상바다를 항해여정중의 교회공동체는 물론 다양한 공동체들을 상징합니다.
얼마나 많은 공동체란 배들이 세상 바다의 격랑 속에 조난당하거나 파선당하는지요! 이런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가득 차게 되었는데도 예수님께서는 천하태평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십니다. 문제는 외부의 풍랑이 아니라 내면속 마음의 풍랑입니다. 제자들의 내면은 그대로 공포와 두려움에 혼비백산 혼란상태인데, 반면 예수님은 지극히 침착한 모습에 내적고요를 누리시니 참으로 깊은 믿음을 반영합니다. 제자들의 반응과 주님의 응답이 대조적입니다.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예수님은 깨어 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Be silent! Be still!)
명령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집니다.
그대로 하느님의 현존인 예수님은 하느님의 위력을 발휘합니다. 이런 예수님을 곁에 두고 믿음 부족으로 경거망동하는 제자들입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Why are you afraid? Have you still no faith?)
그대로 믿음 약한, 믿음 없는 우리들을 두고 하는 말씀같습니다. 제자들은 아직도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서로 묻습니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우리가 평생 믿음 생활에 화두로 삼고 살아야할 물음이자 예수님이심을 깨닫습니다.
애당초 타고난 믿음은 없습니다. 믿음의 여정중에 주님과 날로 사랑의 일치가 깊어지면서 믿음도 날로 성장, 성숙되어갈 것이며, 언제 어디서나 내적고요와 평화를 누릴 것입니다. 복음의 제자들 역시 이런 구사일생의 체험이 믿음의 여정에 결정적 도움이 됐을 것입니다. 탓할 것은 주님이 아니라 우리의 부족한 믿음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의 믿음을 북돋아 주시어 성공적 믿음의 여정을 살도록 해 주십니다.
“찬미받으소서,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
주님은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네.”(루카1,6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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