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6주간 화요일.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님.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달마누타지방에서 바리사이들과 표징에 대한 논쟁이 있은 후에, 배를 타고 벳사이다로 건너가던 중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제자들이 빵을 가져오는 것을 잊어버려, 그들이 가진 빵이 배 안에는 한 개 밖에 없었다.
~제자들은 자기들에게 빵이 없다고 서로 수군거렸다.”(마르 8,14-16)
그러나 분명, “그들이 가진 빵이 배 안에는 한 개”(마르 8,14) 있었습니다.
그 한 개의 빵은 대체 어떤 빵인가? 사실, 그 빵은 마르타에게 “실상 필요한 것은 한가지 뿐”(루카 10,42)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오직 필요한 하나인 빵’입니다. 그것은 더 이상 다른 것이 필요하지 않는, ‘전부인 하나인 빵’ 입니다. 비록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가졌다하더라도 이 ‘하나’를 가지지 못하면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것이 되고 마는, 이 “한 개”만 가지게 되면 모든 것을 가지는 것이 되는, 그런 ‘빵’입니다.
여기서, ‘배’가 교회의 표상이라면, ‘빵’은 바로 예수님의 표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마르 8,15)
대체 바리사이와 헤로데의 누룩이란 무엇인가? 그들의 삶의 방식, 곧 ‘말만하고 실행하지 않고, 남에게 보이기 위하여 행동하며, 잔치에 가면 윗자리에 앉으려 하고, 길에 나서면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이 스승이라 불러주기를 바라는 위선적인 바리사이들의 삶의 방식과 소유와 권력과 화려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헤로데의 삶의 방식입니다. 바로 이러한 그들의 삶의 방식을 조심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녀야 할 누룩은 무엇인가? 그것은 ‘말씀’이 아니고서야 무엇이겠는가? 비록 씨앗으로 뿌려지지만 육십 배, 백배의 열매를 맺을 그 ‘말씀의 누룩’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이 우리의 모든 삶을 부풀리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누룩인 말씀의 빵’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빵이 없다고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의 마음이 그렇게도 완고하냐?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마르 8,17)
그리고 오늘 <복음>의 마지막 구절에서 거듭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마르 8,21)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깨닫다”(σινιετε)라는 단어는 ‘나란히 서다’, ‘함께(같이) 서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한 개의 빵”을 깨닫기 위해서는 항상 ‘말씀이신 우리 주님, 그리스도 곁에’ ‘나란히 함께’ 서 있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그들이 가진 빵이 배 안에는 한 개 밖에 없었다.”(마르 8,14)
주님!
실상 필요한 빵은 한 개면 충분합니다.
제게는 이미 당신이 있고,
당신만이 더 이상 다른 것이 필요하지 않는,
진정 필요한 한 개의 빵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가져도 당신이 아니면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것이오니,
오로지 제게는 당신만이 전부입니다. 당신이 저의 임, 저의 주님이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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