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호명환 가롤로 신부님.
CAC 매일묵상
상실된 모든 것에 대해 애도합시다!
하느님의 숨
2025.03.06. 17:18
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 2025년 3월 6일 목요일 (호명환 번역) 열 번째 주간: 존재들의 눈물
하느님께서는 모든 존재가 당하는 고통에 동정심을 가지시는 분이십니다.
예술가이자 사회 활동가인 스티븐 페이비(Stephen Pavey)는 아모스 시대(기원전 8세기)의 이스라엘과 오늘날의 미국 사이의 유사점들에 대해 말합니다:
아모스 시대에 북 이스라엘 왕국은 영역을 넓혔고 주변 국가들과의 통상로를 증가시켰습니다. 그로 인해 이스라엘은 경제적 번영을 누렸습니다. 사회에 대한 하느님의 비전 - 부가 공유되고 사회의 구성원 모두의 필요가 충족되는 사회 - 은 걷잡을 수 없이 만연한 물질주의와 탐욕, 부패, 뇌물 등 때문에 금이 가 버렸습니다. 우리가 미국에서 보듯이, 부유한 극소수의 사람과 가난한 대중이나 억압받는 이들과의 격차가 더더욱 심해졌습니다. 공공 사회의 윤리 규범은 나락으로 떨어진 반면에, 종교 관습과 하느님 경배는 여전히 아주 중요한 사안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아모스 예언서 5장에서 아모스는 사람들의 이런 삶의 방식에 대해 슬픔의 눈물을 흘리며 애도하기 시작합니다: "광장마다 곡소리가 터져 나오고 거리마다 '아이고, 아이고!' 하리라."(5,16). 오늘날 우리 세상의 예언자 캘리 그리어(Callie Greer)는 미국 앨라배마의 셀마에 살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운동을 조직하여 국가를 향해 외칩니다. "제가 울부짖게 해 주십시오!" 2020년 2월에 그녀는 셀마에 모인 군중들에게 자기가 받는 고통과 억압에 대해 증언하였습니다: 몇 년 전 그녀의 딸이 가난으로 인해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해 자기 팔에 안겨 죽었답니다. 캘리는 외쳤습니다. "가난으로 인해 죽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울부짖게 해 주시십오. 우리 어머니들이 잃은 아이들을 위해 울부짖게 해 주십시오. 저는 제 아픔을 헛되게 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제가 여러분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기를 바랍니다. 저는 제가 여러분을 화나게 하길 바랍니다. 제게는 더 이상 아이들이 없기 때문에 저는 울부짖습니다."
리처드 로어는 우는 이들을 위한 예수님의 축복에 대해 깊이 성찰합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우는 이들은 복되다"(루카 6,21) 하신 말씀은 감상적인 어떤 것으로 만들거나 남들이 알아채지 못하게 하려고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비정함 혹은 즈카르야와 다른 예언자들의 말대로 "돌 같이 무정한 마음"(heart of flint)을 지녔기에 야훼께서 성령을 통해 말씀하신 법과 규정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돌 같은 마음은 그 마음이 세워 숭배하는 제국을 인식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애도(哀悼)하는 마음은 할 수 있습니다. 애도하는 마음은 우리로 하여금 화와 슬픔을 거쳐 언제나-비극인 지금의 울부짖음을 참으로 듣고 그에 응답할 힘을 우리에게 부여해 줍니다.
예언자 에제키엘은 말합니다. "(나는)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 너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겠다. 나는 또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가 나의 규정들을 따르고 나의 법규들을 준수하여 지키게 하겠다....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36,26-28). 이것이 바로 우리가 모두 갈망하는 영적인 심장 이식이요, 모든 영성이 추구하는 내면의 신앙심입니다.
물론 감정을 가지신 하느님을 묘사하는 언어는 늘 우리 인간 감정을 하느님께 투사한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의 상황을 두고 우시는 모습 -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두고 우셨고, 라자로의 죽음 앞에서 우셨으며, 게세마니에서 우셨던 것처럼 - 을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이 온 우주의 진리(보편적 진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어떤 것도 미워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연민(pity)이라는 말이 지닌 본래의 참된 의미로 모든 것에 연민을 느끼시는 분이십니다. 이 연민은 모든 것이 고통받을 때 그 모든 것에 대해 가지는 동정(同情: compassion)입니다. [2]
우리 공동체 이야기
저는 매일 아침 차를 내려 성찰하고 글을 쓰고 CAC 공동체와 함께하기 위해 그 찻잔을 들고 저의 신성한 공간으로 물러갑니다. 저에게는 이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시간입니다. 저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저를 끌어안아아 준다고 느낍니다. 그러고는 종종 제가 함께하는 이 공동체의 다른 이들의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이 묵상 시간 동안, 저는 하느님께서 제가 알고 있는 짧은 성경 구절로 제 영혼에 해 주시는 말씀을 종종 듣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말씀을 저의 특별한 일기장에 적습니다. 저는 또 종종 하느님 현존과 저에 대한 그분의 사랑에 압도되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태에 있기도 합니다.
—Janice D.
[1] Stephen Pavey, “You Must Let Us Wail,” in We Cry Justice: Reading the Bible with the Poor People’s Campaign, ed. Liz Theoharis (Broadleaf, 2021), 55–56.
[2] Adapted from Richard Rohr, The Tears of Things: Prophetic Wisdom for an Age of Outrage (Convergent, 2025), 8–9.
Image credit and inspiration: Noé Barnett, Untitled (detail), 2024, oil paint, Albuquerque. Click here to enlarge image. 노에 바넷(Noe Barnett)이 그린 위 그림의 이미지가 리처드 로어의 책 존재들의 눈물에 영감을 주었습니다. 특별히 엄청나게 다정다감하고 엄청난 배려심으로 눈물 한 방울을 붙들고 있는 저 손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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