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16일 (자) 성주간 수요일
제1독서 <나는 모욕을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주님의 종’의 셋째 노래).>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50,4-9ㄴ 4 주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제자의 혀를 주시어 지친 이를 말로 격려할 줄 알게 하신다. 그분께서는 아침마다 일깨워 주신다. 내 귀를 일깨워 주시어 내가 제자들처럼 듣게 하신다. 5 주 하느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6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7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내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8 나를 의롭다 하시는 분께서 가까이 계시는데 누가 나에게 대적하려는가? 우리 함께 나서 보자. 누가 나의 소송 상대인가? 내게 다가와 보아라. 9 보라,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는데 나를 단죄하는 자 누구인가?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사람의 아들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6,14-25 14 그때에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유다 이스카리옷이라는 자가 수석 사제들에게 가서, 15 “내가 그분을 여러분에게 넘겨주면 나에게 무엇을 주실 작정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은 은돈 서른 닢을 내주었다. 16 그때부터 유다는 예수님을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 17 무교절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께서 잡수실 파스카 음식을 어디에 차리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18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도성 안으로 아무개를 찾아가, ‘선생님께서 ′나의 때가 가까웠으니 내가 너의 집에서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축제를 지내겠다.′ 하십니다.’ 하여라.” 19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 20 저녁때가 되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식탁에 앉으셨다. 21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22 그러자 그들은 몹시 근심하며 저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기 시작하였다.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나와 함께 대접에 손을 넣어 빵을 적시는 자, 그자가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24 사람의 아들은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25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가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하고 대답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배신의 죄 중에도 희망을 가집시다! 혹시 누군가로부터 크게 배신당해 본 적 있으신가요? 내가 그토록 믿고 신뢰하고, 사랑을 건네고 지지하고 격려했었는데, 내 인생 전체를 걸었는데, 결국 돌아온 것은 배신이요, 큰 뒤통수 한방일 때, 그 참담함과 치욕감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내 인생이 와르르 소리를 내며 무너지는 느낌입니다. 제자 유다 이스카리옷의 배신 앞에 스승 예수님께서 느끼셨을 배신감과 당혹스러움, 안타까운 심정이 손에 잡힐 듯 느껴지는 성주간입니다. 유다도 배신했지만 수제자 베드로 사도도 배신했습니다. 더구나 베드로는 세 번씩이나 배신했습니다. 그런데 배신의 최종적인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베드로는 돌아왔지만 유다는 떠나갔습니다. 베드로는 하늘나라에서 영영세세 스승님과 함께 하며, 천국의 열쇠까지 쥐고 있습니다만, 유다의 영혼은 하느님 자비의 품마저 걷어차 버렸습니다. 똑같은 배신자이면서도 두 사람의 미래가 그토록 차별화된 배경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배신의 죄 중에도 희망을 가졌습니다. 스승님의 큰 사랑과 자비 앞에 내 죄는 반드시 용서될 것임을 희망했습니다. 반대로 유다는 자신이 저지른 배신의 죄 속에 파묻혀 희망조차 버렸습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희망이 없어 보여도 희망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의정부 교구장이신 손희송 베네딕토 주교님 말씀이 참으로 은혜롭습니다. “전통적으로 지옥은 불이 훨훨 타오르고, 머리에 뿔이 돋고 궁둥이에 꼬리 달린 마귀가 꼬챙이로 사람들을 불 속으로 계속 밀어 넣는 것이라고 상상해 왔다. 그러나 지옥은 다른 곳이 아니라 믿음과 희망이 사라진 곳이다.” “중세 이탈리아 작가 단테 알리기에리(1265-1321)가 저술한 ‘신곡’ 지옥편에 보면, 지옥의 문간에는 ‘이곳에 들어오는 자들이여!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라는 글귀가 있다. 실낱같은 희망조차 없는 곳이 바로 지옥이라는 말이다. 이런 의미의 지옥은 이미 현세에서도 시작될 수 있다. 한 가정 안에서 부부간에, 부모와 자식이 서로 믿지 못하고 의심하면서 미움과 증오 속에 산다면, 또 그런 뒤틀린 관계가 개선될 희망이 전혀 없는데도 계속 얼굴을 맞대고 살아가야 한다면, 그것이 바로 ‘생지옥’이 아닐까? 인간에 대한 신뢰와 희망이 사라진 곳에서 지옥은 그 모습을 드러낸다.”(손희송,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가톨릭출판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양승국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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