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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 반영억 신부님 ~

5월 3일 토요일 (홍)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요한14,6-14)


복음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4,6-14
그때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6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7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
8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자,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
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한마음 한 몸」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는 옛 말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짐작하여 알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오래도록 함께 지낸다 해도 마음의 문을 열어 서로를 내 보이지 않는 이상 상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내 보여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이 닫혀 있으면 상대를 알 수 없을 뿐더러 오히려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문을 열고 또 읽을 수 있는 관계형성을 다져야 하겠습니다. 비록 어둔 밤일지라도 마치 남의 이목이 집중된 장소에서 하듯 눈속임이 없는, ‘동상이몽’이 아니라 ‘이심전심’의 마음을 키워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를 뵙게 하여 달라고 청하는 필립보에게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단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요한 14,9).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동고동락하셨지만 아직도 믿지 못하는 필립보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오랫동안 함께 있었다고 해도 마음의 일치를 이룬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실 가정 안에서도 고부간, 부부간에, 부자지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함께 있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마음’으로 있었느냐가 중요합니다.
 
되찾은 아들의 비유(루카15,11-32)에서 보면 작은 아들이 방종한 생활을 청산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버지께서는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손에 반지를 끼워주고 신발을 신겨주며 잔치를 벌였습니다. 이때 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큰아들은 화가 나서 집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께서 그를 타이르자, 그는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하며 불만을 토로 하였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 그에게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큰 아들이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고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다고 하니 참으로 훌륭한 아들입니다. 그러나 그가 불평을 하는 것을 보면 아버지의 마음을 완전히 읽지 못한 것이 분명합니다.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아버지 곁에 있었으나 아버지와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버지를 섬겼으나 아버지의 마음과 하나 되지 못하였고 아버지의 명을 거역하지 않았으나 아버지의 뜻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너는 나를 모른단 말이냐?”하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주님을 믿습니다. 신앙생활을 합니다.’하고 말하면서도 주님의 마음에 드는 삶을 살지 못하고 있으니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요한14,12-13). 고 약속해 주셨음에도 바라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보면 주님의 이름으로 청하지 못하고 욕심을 부리나 봅니다.


그분이 하신 일보다 더 큰 일은 고사하고 그분의 일에도 접근하지 못하고 있으니 믿음이 부족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니 부족한 저의 믿음을 더해 주십시오. 당신을 안다고 고백할 수 있는 믿음의 은총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사랑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반영억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