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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minic Ko 신부님

~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님 ~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님.

 

 

 

✝️ 교부들의 말씀 묵상✝️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완전한 길

 

우리는 ‘길’을 완전함으로 가는 길로 이해합니다. 우리는 그 길에서 복된 목적지, 곧 주님께서 당신을 믿는 이들에게 축복으로 주신 하느님에 관한 지식에 도달할 때까지, 의로움의 말씀과 지식의 비추임을 통해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며 언제나 그 앞에 놓인 것을 갈망하고 한 뼘이리도 더 가까이 가려고 애씁니다. 진정 우리 주님은 바른길이며, 갈림길도 굽은 길도 없이 우리를 곧바로 아버지께로 인도하는 곧은 길입니다 . 그래서 그분은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느님의 아들을 통해 하느님께로 가는 길입니다.

 

-대 바실리우스-

 

 

✝️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둘째 오솔길】

버림과 그대로 둠

 

설교 18

지성을 버리면 지식의 변모가 일어난다

 

유대인 왕으로 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마태 2,2).

 

이 진리야말로 감추어진 보화다. 우리가 부정의 길을 통과하여 거기에 이르려면, 우리의 모든 감각, 우리의 모든 힘, 우리의 모든 지성, 우리의 모든 기억을 그러모으고, 그런 다음 이 모든 것을 보화가 감추어져 있는 터에다 집중시켜야 한다. 그렇게 하다가 머리가 잘린 학자처럼, 우리에게도 철저한 집중이 필요하다. 한 가지의 것, 예컨대 하느님에게 집중하려면, 다른 모든 것을 알아서는 안 된다. 이 보화를 찾으려면, 무지에 이르러야 한다. 영혼의 터와 존재의 터는 소란스럽고 분주하고 피상적이며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이 세상사에 자신의 비밀을 열지 않는다. 침묵과 고요,무지와 무를 아는 자에게만 그 비밀은 열린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자 한다면, 고요와 침묵 속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거기, 곧 무지의 상태에서만 하느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는 그곳에서 말씀이 분명하게 제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381)

 

 

 

✝️ 토요일 이웃 종교(생태)의 날✝️

 

이름 없는 하느님, 김경재

하느님 신앙과 원불교의 일원상

 

원불교의 중심 교의인 ‘일원상진리' 와 ‘사은실천 진리' 의 상호 관계성은 원시 불교의 근본 종지인 ‘상구보리 하화중생' , 곧 ‘뒤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섬긴다'는 진리와 같은 것이다. 만물의 영원한 원리인 인연생기의 근본 실상을 확연히 깨닫는 ‘프라쥬나’ (반지)를 얻었다면 그 구도자의 삶은 자연히 이타적 ‘카루나 (보살행)인 실천적 삶으로 나타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한민족 문화사 속에 면면히 흐르는 종교사 과정에서 무교, 불교, 유교, 천도교, 원불교 그리고 근현대 들어 그리스도교가 서로 공존하고 교체하는 가운데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종교적 다양성을 보유하는 한편으로, 한민족 심성의 밑바닥에 원형적 종교 심성으로서 실재하는 하느님 신앙 과 각 종파의 고유한 특성이 서로 해석학적으로 지평 융합을 이루며 뿌리를 내려왔음을 살펴보았다. 다음으로 우리는 현대 해석학의 이론을 침고하면서 , 왜 역사 속에는 다양한 종교들이 존재하는가를 좀더 심층적으로 이해해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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