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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부활 제 3주간 토요일 / 정인준 신부님 ~

5월 10일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



제1독서
<교회는 굳건히 세워지고, 성령의 격려를 받아 그 수가 늘어났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9,31-42
그 무렵 31 교회는 유다와 갈릴래아와 사마리아 온 지방에서
평화를 누리며 굳건히 세워지고,
주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면서 성령의 격려를 받아 그 수가 늘어났다.
32 베드로는 모든 지방을 두루 다니다가
리따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가게 되었다.
33 거기에서 베드로는 애네아스라는 사람을 보았는데,
그는 중풍에 걸려 팔 년 전부터 침상에 누워 있었다.
34 베드로가 그에게 말하였다.
“애네아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고쳐 주십니다.
일어나 침상을 정돈하십시오.” 그러자 곧 애네아스가 일어났다.
35 리따와 사론의 모든 주민이 그를 보고 주님께 돌아섰다.
36 야포에 타비타라는 여제자가 있었다.
이 이름은 그리스 말로 번역하면 도르카스라고 한다.
그는 선행과 자선을 많이 한 사람이었는데,
37 그 무렵에 병이 들어 죽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시신을 씻어 옥상 방에 눕혀 놓았다.
38 리따는 야포에서 가까운 곳이므로,
제자들은 베드로가 리따에 있다는 말을 듣고 그에게 사람 둘을 보내어,
“지체하지 말고 저희에게 건너와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39 그래서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갔다.
베드로가 도착하자 사람들이 그를 옥상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그러자 과부들이 모두 베드로에게 다가가 울면서,
도르카스가 자기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어 준 속옷과 겉옷을 보여 주었다.
40 베드로는 그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내고 나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린 다음
시신 쪽으로 돌아서서, “타비타, 일어나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 여자가 눈을 떴다. 그리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았다.
41 베드로는 손을 내밀어 그를 일으켜 세운 다음,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다시 살아난 도르카스를 보여 주었다.
42 이 일이 온 야포에 알려지자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게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60ㄴ-69
그때에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60 말하였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6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의 말씀을 두고 투덜거리는 것을 속으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
62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
63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64 그러나 너희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이며
또 당신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것이다.
65 이어서 또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너희에게 말한 것이다.”
66 이 일이 일어난 뒤로,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67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다.
68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69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의 강론말씀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믿음에는 인간의 지성과 자유를 함께 하는 조건이 있습니다.

지성에는 당연히 의심이라는 것이 따르기 마련이지요. 갈등없는 믿음이 있을까요?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사랑하셔서 강제적으로 끌려가는 것이 없고 스스로 각자 신앙을
선택하도록 하셨습니다.

송이의 아름다운 들판의 꽃도 비바람에 흔들림 없이 피는 것이 없듯 인간에게도
신앙의 시련도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스승으로부터 모든 권한을 받았습니다.
베드로는 라따라는 곳에서 중풍에 걸려 침상에 누워있던 애네아에게
그리스도의 권한으로 말합니다.

"애네아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고쳐 주십니다.

일어나 침상을 정돈하십시오."(사도 9,34)


스승께서 그를 도와 애네아는 병이 낫게 해주십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이 놀라운 사실을 보고 주님을 믿게 됩니다.


주님의 놀라운 일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주님믿게 됩니다.

베드로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야포에 살던 타비타라는 여자를 죽음로부터 되 살려냅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을 선포하시면 병자들을 고쳐 주신 것처럼 베드로도 여러곳을 다니며 병도
고쳐주고 주님이 부활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고쳐준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선행을 베풀거나 이웃으로부터 고마워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신앙은 선행이나 자선,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는 사람을 전제로 하는 것이지요.

물론 그 반대의 사람은 회개하고 주님께서 가신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지만 그 사람도
이웃으로 부터 사랑을 받게 됩니다.

사도행전은 신앙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대한 이야기이고 요한복음사가는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은 각자의 결단에 의한 것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많은 유대인들 중에는 주님의 새로운 말씀과 기적에 이끌려 주님을 따릅니다.
그런데 결단을 내려야 할 순간이 왔습니다.

구약의 가르침과는 전혀 다른 ‘생명의 빵’에 대한 것입니다. 그들이 배우고 살아온 것과는
다르게 그 빵이 육신을 위한 것 뿐만 아니라 영적인 믿음으로도 받아 들여야 했습니다.

요한복음은 이 사실과 사람들의 반응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말하였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요한 6,59-60)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그러나 너희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61-64절)

이어서 주님께서는 중요한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너희에게 말한 것이다.”(65절)

우리는 우리 스스로 신앙을 선택하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 수 있다고 믿습니다.
다행이도 신앙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때가 많습니다.

물 한모금 마시려고 해도 일어나 냉장고나 물이 있는 곳까지 가야하는 수고스러움이
있는 것처럼 좋은 일을 하는 데에도 애써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물며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을 받는 데에야 그 보다 더 큰 어려움들이 없겠어요?

거저 얻는 신앙이 어디에 있습니까? 갈등 없는 신앙이 어디에 있을까요?

복음은 그 후의 제자들의 모습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일이 일어난 뒤로,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66절)

그래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을 떠날 것이냐?고 물어보십니다.
그때에 베드로가 나서서 대답합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68-69절)

가끔씩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확실하게 주님을 믿고 부활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글쎄요? 우리 각자의 대답이 필요하겠지요.

신앙은 어저쩡한 태도는 금물이지요.

주님을 믿으려면 확실하게 믿어야 하는데, 사도 베드로가 우리의 모델입니다.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분의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우리의 참된 신앙의
모습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정인준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