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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부활 제 4주간 월요일 / 호명환 가를로 신부님 ~

부활 제4주간 월요일. 호명환 가롤로 신부님.

CAC 매일묵상

사랑을 보는 우리의 첫 눈길(Our First Glimpse of Love)!

 

 

 

 

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 2025년 5월 11일 일요일 - 스무 번째 주간 (호명환 번역): 신성한 여성성

하느님 안에 있는 여성적 요소들은 남성적인 요소들과 중요한 균형을 맞추어 줍니다.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매일 묵상은 그리스도교 관상 전통에 뿌리를 두고 리처드 로어와 CAC 운영진, 그리고 객원 교수들의 묵상 글을 제공해 주어 우리의 영적 수양을 심화시켜 주고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동정(compassion)을 구현하도록 도와줍니다.

리처드 로어 신부는 하느님에게서 우리가 받는 첫 메시지의 중요성에 대해 말합니다:

사람들 대부분은 처음에 남자의 이미지를 통해서가 아니라 여자의 이미지를 통해 무조건적인 사랑을 경험합니다. - 대부분의 경우는 자기들의 어머니를 통해서요. 인류 대부분에게는 어머니가 든든함과 친밀함, 다정함, 그리고 안전함 - 우리를 하느님의 가장 선한 모습과 연결시켜 주는 것들 - 의 경험을 통해 사랑의 베일을 벗겨주고 사랑이 무언지를 옅보게 해 주는 존재입니다. 제가 사제로서, 그리고 영적인 지도자로서 목격한 실망스러운 것들 중 하나는 수많은 사람이 이와는 반대쪽으로부터 시작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 하느님의 부정적이고 독한 이미지로부터요. 그렇다면 어떤 놀라운 일도, 어떤 변모의 상황도 전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남성들을 위한 일련의 영적인 작업으로 영적인 여정을 시작하는 이유들 중 하나는 제가 그리도 많은 사람이 남성성을 통해 그런 사랑의 관계성을 경험하지도 못하고 기대하지도 못하며 신뢰하지도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더 많이 돌아나니면 다닐수록 저는 아버지-상처라고 부르는 보편적인 본질을 더 많이 확신하게 됩니다. 이 상처는 많은 사람이 헤어 나오지 못하는 상처처럼 보입니다; 사람들은 여기에서 사랑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지 못합니다.

저술가 섀논 이반스(Shannon K. Evans)는 우리가 하느님을 경험할 때 남성적 특징과 여성적 특징을 둘 다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합니다:

하느님 안에 있는 여성적 요소들은 남성적인 요소들과 중요한 균형을 맞추어 줍니다. 만일 신성하신 하느님에 대해 아는 것이 아버지 하느님뿐이라면 우리는 영적인 절름발이가 될 것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이는 심지어 "그분"을 무관심하고 엄중한 분으로가 아니라 사랑스럽고 다정한 분으로 보며 자라난 이들에게도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하느님의 남성성이 문제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을 남성으로 상상하는 것은 우리의 영적 자아에게 가치 있는 것이고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균형이 맞추어지지 않은, 오로지 남성적인 하느님에 대한 믿음은 우리를 율법주의, 완벽주의, 두려움, 자아-비판, 그리고 부당함의 고통스러운 느낌으로 이끌어갈 수 있습니다. 슬프게도 우리의 많은 종교 체험의 특징은 대개가 이런 것들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하느님의 신성한 여성성을 우리의 하느님 이해에 통합시킬 때 우리는 동정심, 포용성, 급진적 수용성, 내쳐진 이들에 대한 정의감, 그리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내면화하기가 더 수월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제 삶의 경험에서 볼 때 하느님의 신성한 여성성은 저에게 편안하게 현존해 주는 어머니적인 이미지를 갖도록 초대해 주었습니다. 안간힘을 써서 희생만 해야 하는 것이 제 영적인 성장에 언제나 요구되는 전부라고 생가하는 삶을 어느 정도 살고 있던 저에게는 이것이 얼마나 기쁜 소식이었는지 모릅니다. [1]

리처드는 이렇게 결론짓습니다:

하느님이 누구신지든간에, 하느님은 어떻게든 여성적인 면모와 남성적인 면모 둘 다로 심오하게 계시되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하느님의 여성적인 얼굴을 인식하고 그 여성성과의 사랑에 빠지고 그 여성성을 신뢰하는 방법을 찾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대부분 교회를 통해 하느님의 여성적인 얼굴을 찾지 못했습니다. 물론 가톨릭교회는 성모님을 통해 기발한 방식으로 하느님의 이 문제를 해결했지만 말입니다. 성모님은 많은 사람에게 다다가기 쉽고 신뢰할 만하고 안전한 하느님의 얼굴이 되었습니다.

우리 공동체 이야기

최근에 저는 환자들 사목을 준비하는 이들의 자그만 그룹과 그들이 환자들이나 환자 가족과 함께 기도할 때 하느님에 대해 특별한 성별을 사용하여 기도하는지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날 늦은 시간에 저는 저의 열여섯 살 난 딸에게 하느님께 기도드릴 때 아버지나 어머니라는 호칭을 쓸 때 어떤 다른 점이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딸이 잠깐 생각하다 이렇게 말하더군요. "물론 다르지, 아빠. 아빠도 아빠의 아버지에게 말하는 것과는 다르게 아빠의 어머니에게 말하잖아." 이 대화가 저의 비전-보드(vision-board: 목표 시각화?)를 창출해 내는 데 큰 영감이 되었습니다. 즉 하느님 어머니를 위한 어떤 특별한 이미지가 제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된 것이지요. - 사실 이 경험이 하느님에 대한 저의 경험을 바꾸어주었습니다. 이제 저는 제가 하느님과 엄청나게 친밀하다는 경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하느님의 동정심이 지닌 그 따스함을 느낄 수 있고, 또 제 기도가 하느님께 가납되고 있고 제가 참으로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더 충만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Wes M.

References

[1] Shannon K. Evans, Rewilding Motherhood: Your Path to an Empowered Feminine Spirituality (Brazos Press, 2021), 165.

Adapted from Richard Rohr, “The Maternal Face of God,” On Transformation: Collected Talks (St. Anthony Messenger Press, 1998), Audible audio ed.

Image credit and inspiration: Jyothisha R, woman holds the sun in her hands (detail), 2025, photo, Unsplash. Click here to enlarge image. 하느님의 신성한 여성성의 강하고도 부드러운 빛은 우리 모두가 만질 수 있는 빛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