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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부활 제 4주간 화요일 / 호명환 가를로 신부님 ~

부활 제4주간 화요일. 호명환 가롤로 신부님.

CAC 매일묵상

왜 "그녀"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 2025년 5월 12일 월요일 - 스무 번째 주간 (호명환 번역): 하느님의 신성한 여성성

하느님의 전적인 남성 이미지는 여성들과 남성들 모두에게 제한을 줄 수 있습니다.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매일 묵상은 그리스도교 관상 전통에 뿌리를 두고 리처드 로어와 CAC 운영진, 그리고 객원 교수들의 묵상 글을 제공해 주어 우리의 영적 수양을 심화시켜 주고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동정(compassion)을 구현하도록 도와줍니다.

소설가 수 몽크 키드(Sue Monk Kidd)는 하느님의 신성한 여성적 이미지를 잘 일구는 것이 특히 그리스도교 안에서 자라난 여성들에게 왜 그렇게 중요한지를 설명합니다:

어떤 어린 소녀가 성경의 이야기를 배우는데, 성경에는 생명력 넘치는 여성들이 별로 나오지 않거나, 나오더라도 그저 배경의 인물 정도로 나오거나, 힘도 전혀 없는 존재로 등장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소녀는 남성들이 하느님을 찾아 나서서 하느님을 만나고 역사를 바꾸는 반면, 여성들은 그들을 지지해 주고 그들을 기다리는 존재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설교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녀가 듣는 설교에서도 전통적인 (위협적이 않고, 수동적인) 여성들의 역할만이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이상처럼 들어높여집니다. 게다가 소녀는 교회 권력의 상위 계층에서는 여성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면 자기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는 이 소녀가 여성에게 복종과 침묵을 권고하는 성경의 모든 이야기들에서 어떤 영향을 받게 될까요? 그런 것들을 고대의 생산물이라고 "해명한다고" 해서 소녀가 경험하고 느끼게 된 불편함을 다 지워버릴 수는 없을 겁니다. 소녀는 또한 성서와 찬가, 그리고 기도에 나오는 대명사들에서 자기 자신이 빠져 있다는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하느님 "당신 자신(himself)"이 오로지 남성적인 면모만을 지니는 한, 소녀는 오직 하느님의 타자성(otherness)과 자기 자신의 열등함만을 경험할 것입니다; 여성들이 남성들과 동등해야 한다는 세상의 모든 신심 깊은 이야기는 소녀의 내면 더 깊은 곳에서는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으로 여성의 상징이 신성함을 담아내는 그릇이 될 수 있고, 또 하느님의 신성한 이미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참으로 깨닫게 되는 순간 우리의 삶은 그 중심으로부터 변화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신성한 여성성을 내면화하는 것은 여성들에게 자기들도 자기들의 권리를 지니고 있고, 자기들을 위한 선택을 할 수 있고, 합당하고 자격이 있으며 다른 누구로부터의 허락이 필요없다는 치유해 주는 확언을 제공해 줍니다. 신성한 여성성의 내면화는 우리의 성별이 소중하고 놀라운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1]

공공 신학자 크리스테나 클리블랜드(Christena Cleveland)는 오로지 백인의 이미지와 남성적인 이미지만을 하느님의 이미지로 둘 때 그것이 얼마나 제한적이고 심지어는 공격적이기까지 한지를 살펴봅니다. 그녀는 정성을 다하는 마음(mindfulness)을 주제로 하는 피정에서 신성한 흑인 여성의 이미지에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신비롭게 경험하게 된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저는 가부좌를 틀고 돗자리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눈을 감고 제 시선을 내면으로 향하는 순간 바로 사랑의 파도가 저에게로 밀려 들어왔습니다. 그 파도가 어찌도 어마어마한지 꼿꼿하던 제 몸을 제 뒤 바닥에 놓인 베게쪽으로 밀어냈습니다.... 이 힘은 제가 어떻게도 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이었습니다. 이 힘은 조종할 수도 없는 힘이었고, 통제할 수도 없는 힘이었으며, 어떤 수치심도 느끼게 하지 않는 힘이었습니다. 이것은 사랑의 힘이었습니다. - 이는 제가 백인 남성의 하느님 세계에서는 전혀 경험해 보지 못했던 힘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어마어마한 힘을 사랑의 형태로 경험해 본 적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제 안의 꼬여 있던 매듭을 풀어 주었습니다. 저는 두려움의 잡동사니로 차 있는 제 마음을 온 정성을 다해 정리하는 하루를 보낸 다음 그 밑에 놓여 있는 것이 백인 남성의 신에게서 온 또다른 해야 할 일 목록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희망했던 그대로 사랑이 그 모든 것 밑에 있었습니다. 그날 저는 현실 한가운데서... 저를 위해.... 사랑의 파도가 다시, 또다시 흐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저는 제 주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상관없이, 그리고 아무리 큰 두려움이 저를 집어 삼키려 한다 해도 아무 상관없이, 제 내면의 신성한 흑인 여성성이 언제나 저를 사랑으로 안내해 주기 위해 함께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 공동체 이야기

최근에 저는 환자들 사목을 준비하는 이들의 자그만 그룹과 그들이 환자들이나 환자 가족과 함께 기도할 때 하느님에 대해 특별한 성별을 사용하여 기도하는지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날 늦은 시간에 저는 저의 열여섯 살 난 딸에게 하느님께 기도드리면서 아버지나 어머니라는 호칭을 쓸 때 어떤 다른 점이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딸이 잠깐 생각하다 이렇게 말하더군요. "물론 다르지, 아빠. 아빠도 아빠의 아버지에게 말하는 것과는 다르게 아빠의 어머니에게 말하잖아." 이 대화가 저의 비전-보드(vision-board: 목표 시각화?)를 창출해 내는 데 큰 영감이 되었습니다. 즉 하느님 어머니를 위한 어떤 특별한 이미지가 제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된 것이지요. - 사실 이 경험이 하느님에 대한 저의 경험을 바꾸어주었습니다. 이제 저는 제가 하느님과 엄청나게 친밀하다는 경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하느님의 동정심이 지닌 그 따스함을 느낄 수 있고, 또 제 기도가 하느님께 가납되고 있고 제가 참으로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더 충만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Wes M.

References

[1] Sue Monk Kidd, The Dance of the Dissident Daughter: A Woman’s Journey from Christian Tradition to the Sacred Feminine, rev. ed. (HarperOne, 2016), 38–39, 117, 161.

[2] Christena Cleveland, God Is a Black Woman (HarperOne, 2022), 64, 65.

Image credit and inspiration: Jyothisha R, woman holds the sun in her hands (detail), 2025, photo, Unsplash. Click here to enlarge image. 하느님의 신성한 여성성의 강하고도 부드러운 빛은 우리 모두가 만질 수 있는 빛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