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나는 나를 보내신 분께 간다. 그런데도
‘어디로 가십니까?’하고 묻는 사람이 너희 가운데 아무도 없다.“
오늘 주님께서는 나를 보내신 분께 간다고 말씀하시는데도
어디로 가시냐고 묻는 제자가 아무도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은 왜 묻지 않았을까요?
제 생각에 그것은 의도적 무관심일 것입니다.
묻고 싶지 않기 때문이고
묻기 이전에 자신 안에서 이런 생각은 아예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고,
주님께서 가시는 곳이 자기가 가야 할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의 경우 주님께서 가시는 곳은 하느님 아버지 계신 곳이고
제가 가야 할 곳도 주님 따라 하느님 아버지 계신 곳이라고
전에는 아주 주저함 없이 얘기해왔습니다.
그러나 나이를 먹을수록 그것을 자신 있게 얘기하는 데 주저합니다.
그것은 가야 할 곳을 모르기 때문이 아닙니다.
잘 알지만 얘기하고 싶지 않은 것이고,
얘기하고 싶지 않은 것은, 갈 곳이 아니라 죽음이며,
죽음을 얘기하고 싶지 않은 것은 또
죽음의 강을 건너기 전에 겪어야 할 고통 때문입니다.
수도자 입에서 이런 얘기가 나오면 안 되겠지만
안락사할 수 있다면 이런 고민이 없을 것입니다.
이 또한 나이를 먹어가기 때문일 텐데 갈수록
제 주변에 죽음을 앞두고 계신 분들을 뵙고 저를 볼 때
선종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을 얼마나 잘 감수해야 하는지 보게 됩니다.
그래서 요즘 선종 기도에 대해 자주 생각합니다.
고통 없이 죽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할까?
고통을 두려움 없이 맞이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할까?
그러나 이것도 또한 잘 압니다.
고통을 두려움 없이 맞이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하고,
그보다 더 고통을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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