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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 조재형 신부님 ~



제1독서
<그들은 죽기까지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12,10-12ㄱ
나 요한은
10 하늘에서 큰 목소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제 우리 하느님의 구원과 권능과 나라와
그분께서 세우신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다.
우리 형제들을 고발하던 자,
하느님 앞에서 밤낮으로 그들을 고발하던 그자가 내쫓겼다.
11 우리 형제들은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
그자를 이겨 냈다.
그들은 죽기까지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12 그러므로 하늘과 그 안에 사는 이들아, 즐거워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24-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25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26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찬미예수님


가끔 축성을 부탁받습니다얼마 전에는 도넛 가게를 축성했고또 다른 날에는 헤어스파를 축복했습니다사업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도 있지만그 사업을 통해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도넛 가게는 새벽같이 문을 열어 하루를 시작합니다


땀 흘리는 이민자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곳입니다도넛 하나에도 사랑과 정성이 담겨 있기를 기도했습니다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를 축복하셨듯이 말입니다또 다른 곳은 새로 시작한 헤어스파였습니다문을 열자향기가 은은하게 퍼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지친 이들은 모두 나에게 오너라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그 공간을 찾는 이들이 단지 몸만 아니라마음까지 쉬어 갈 수 있기를 청했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세상에서의 성공만 기억하려 합니다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기억하지만은메달리스트는 쉽게 잊어버립니다그러나 꽃밭을 가보면 다릅니다모든 꽃은 1등을 자랑하지 않습니다저마다 색깔을 내며 피어납니다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1등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실패하고 넘어졌던 이도낙오자도슬퍼하던 이도모두를 품는 것이 신앙입니다저도 흔들렸던 순간들이 있습니다서품받고 나서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고, IMF로 대출을 받기도 했고다리가 부러져 수술을 받기도 했습니다그런데 돌아보니그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구나 싶습니다


지금 꽃이 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언젠가 열매 맺을 수 있다면 말입니다도종환 시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다.”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흔들리면서비에 젖으면서 피어나는 꽃그것이 신앙인의 삶입니다.
 
오늘은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선교사가 없이 시작된 한국 천주교회는 100년 동안 50년은 사제 없이 신앙생활을 했습니다신유기해병오병인박해가 있었습니다글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참혹한 박해와 시련이 있었습니다


순교자도 있었지만배교자도 있었고밀고자도 있었습니다순교자들의 뜨거운 피와 숭고한 신앙이 열매 맺었고오늘 한국 천주교회가 있는 것입니다오늘 기념하는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은 꽃이었습니다흔들림 속에서 피어난 꽃이요비에 젖으며 드러난 향기였습니다윤지충 복자는 조선시대 양반 출신으로유학을 공부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천주교를 접하면서 그는 전통 제사를 거부했고자신의 어머니 장례에서 신앙을 지켰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순교하였습니다함께 순교한 권상연 복자도 그의 동료였습니다당시엔 조선이라는 사회 자체가 거대한 바람이고믿음을 시험하는 장대비였습니다


그 속에서 그들은 자신의 믿음을 지켰습니다우리는 순교자를 영웅처럼 여기지만그들도 우리처럼 고민하고 흔들렸던 사람들이었습니다믿음과 충성 사이에서부모의 뜻과 하느님의 뜻 사이에서전통과 진리 사이에서 그들도 아팠을 것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그대로 남고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주님의 이 말씀처럼그들은 죽음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생명을 심은 것입니다그들의 피는 씨앗이 되었고그 씨앗에서 우리는 지금 한국 교회의 믿음이라는 열매를 보고 있습니다.
 
우리 삶에도 바람이 있고비가 있습니다병으로경제적 어려움으로가족 문제로 고통받는 분들이 있습니다하지만 그 속에서 꺾이지 않고흔들리면서도 살아내는 신앙인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드리는 순교의 향기입니다오늘 우리가 기리는 윤지충 바오로 복자와 동료 순교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 생명을 바쳤습니다


우리는 그분들처럼 생명을 내어놓지는 못하더라도오늘 하루 작은 선택 하나라도 하느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무례한 말 한마디를 참는 인내상대의 고통에 귀 기울이는 연민그리고 기도 속에서 묵묵히 하느님을 기다리는 믿음


그 작은 선택들이 모여결국 우리의 삶도 흔들리며 피는 꽃이 됩니다그러니 조금 흔들려도 괜찮습니다하느님은 흔들리며 피는 꽃을 누구보다 사랑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시련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행복하다시험을 통과하면 생명의 화관을 받으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조재형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