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다른 것들은 제쳐 놓고서라도, 모든 교회에 대한 염려가 나를 짓누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11,18.21ㄷ-30 18 많은 사람이 속된 기준으로 자랑하니 나도 자랑해 보렵니다. 21 누가 감히 자랑한다면, 어리석음에 빠진 자로서 말하는 것입니다만, 나도 자랑해 보렵니다. 22 그들이 히브리 사람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입니까? 정신 나간 사람처럼 하는 말입니다만, 나는 더욱 그렇습니다. 나는 수고도 더 많이 하였고 옥살이도 더 많이 하였으며, 매질도 더 지독하게 당하였고 죽을 고비도 자주 넘겼습니다. 24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유다인들에게 다섯 차례나 맞았습니다. 25 그리고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 돌질을 당한 것이 한 번,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입니다. 밤낮 하루를 꼬박 깊은 바다에서 떠다니기도 하였습니다. 26 자주 여행하는 동안에 늘 강물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에게서 오는 위험, 이민족에게서 오는 위험, 고을에서 겪는 위험, 광야에서 겪는 위험, 바다에서 겪는 위험, 거짓 형제들 사이에서 겪는 위험이 뒤따랐습니다. 27 수고와 고생, 잦은 밤샘, 굶주림과 목마름, 잦은 결식, 추위와 헐벗음에 시달렸습니다. 28 그 밖의 것들은 제쳐 놓고서라도, 모든 교회에 대한 염려가 날마다 나를 짓누릅니다. 29 누가 약해지면 나도 약해지지 않겠습니까? 누가 다른 사람 때문에 죄를 지으면 나도 분개하지 않겠습니까? 30 내가 자랑해야 한다면 나의 약함을 드러내는 것들을 자랑하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19-2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9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간다. 20 그러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거기에서는 좀도 녹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며 훔쳐 가지도 못한다. 21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22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맑으면 온몸도 환하고, 23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도 어두울 것이다. 그러니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면 그 어둠이 얼마나 짙겠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3박 4일 동안 꾸르실료 교육을 다녀왔습니다. 본당에서 16명, 중남부 지역에서 22명, 모두 38명이 꾸르실료를 체험했습니다. 그중 한 자매님의 고백이 마음에 깊이 남았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피정에 참여하려 했지만, 이상하게도 자꾸만 일이 생겼다는 겁니다. 단체 내에서는 오해로 갈등이 생기고, 막내 자녀에게는 중요한 일정을 챙기지 못해 상처를 주게 되었습니다. 자매님은 말했습니다. “하느님께 가까이 가려 하면 악의 세력이 더욱 집요하게 방해하는 것 같습니다.” 이 말은 단순한 심리적 위안이 아닙니다. 인간의 영혼과 육신은 때때로 선을 향해 나아가려 할 때 강한 저항을 받습니다. 이를 현대 심리학에서는 ‘금단현상’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담배를 끊으려 할 때, 술을 끊으려 할 때, 우리의 몸은 두근거리고, 집중이 안 되고, 잠도 잘 오지 않는 증상을 겪습니다. 새로운 질서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습관이 저항하는 것입니다. 마치 영혼이 새로운 빛을 향해 걸어가려 할 때, 과거의 어둠이 끈질기게 발목을 붙잡는 것과도 같습니다. 신라의 장군 김유신의 일화가 있습니다. 어릴 때 읽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젊은 시절, 김유신은 말 위에 앉아 길을 나섰지만 정작 가야 할 집이 아니라 평소에 자주 드나들던 술집 앞으로 향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말이 그 방향으로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순간 그는 깜짝 놀라 말에서 내려, 부끄러움을 느끼고 자신을 뉘우쳤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다시는 그런 일에 빠지지 않겠다는 각오로 말의 목을 베어버렸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이 일화는 김유신 장군의 기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도 익숙한 유혹과 습관의 힘 앞에서 방심하면 쉽게 끌려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순간에 자신의 방향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결단을 내렸다는 점입니다. 익숙한 유혹은 늘 우리를 이전의 삶으로 끌어당깁니다. 회개와 결단, 신앙과 순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때로 말의 목을 베듯, 단호한 결단과 행동을 요구합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은 괴로움을 견딜 수 있다. 하지만 변화는 두려워한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꾸르실료나 피정, 또는 깊은 회개의 순간에는 그 변화의 첫 발걸음을 내딛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체험합니다. 그러나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깝고, 어둠이 짙을수록 곧 태양은 떠오릅니다. 그것이 희망의 논리이며, 구원의 방식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우리는 왜 하늘에 보물을 쌓아야 할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가 영원한 존재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단순히 현재를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언제나 미래를 바라보며, ‘더 나은 나’를 꿈꾸는 존재입니다. 가브리엘 마르셀은 인간을 “희망하는 존재”라고 표현했습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는다는 말은, 바로 우리의 ‘영원한 정체성’을 기억하라는 초대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누가 약해지면 나도 약해지지 않겠습니까? 내가 자랑해야 한다면 나의 약함을 드러내는 것들을 자랑하렵니다.” 세상은 강함을 자랑하지만, 복음은 약함을 자랑하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약함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꾸르실료 교육을 받으며 마음의 상처가 드러나고, 갈등이 떠오르고, 잠이 오지 않는 것조차도 치유의 시작이요, 빛을 향한 전환의 과정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려 할 때 시련이 다가온다면 그것은 우리가 정말로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포기하면 안 됩니다. 금단현상은 지나갑니다. 새벽은 반드시 오고, 태양은 떠오릅니다. 우리는 땅에 보물을 쌓기보다, 하늘을 바라보며 믿음과 사랑과 희망으로 영원한 삶을 준비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의인들을 모든 곤경에서 구해 주셨네. 주님께 청하는 오직 한 가지, 나 그것을 얻고자 하니, 내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사는 것이라네.” 이 말씀이 우리의 삶이 되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조재형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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