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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2월 23일 복음 말씀

    2008년 12월 23일 - 대림 제4주간 화요일 말씀의 초대―································º································― 주님께서는 필요한 때에 ‘당신의 사자’를 보내 주신다. 레위의 자손들을 정화시킬 사람들이다. 그들이 오면 유다와 예루살렘 역시 깨끗하게 될 것이다. 마침내 주님께서는 ‘그날’을 대비해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 주실 것이다. 파멸을 막기 위해서다(제1독서) 아기를 못 낳는 여자라 일컫던 엘리사벳이 어머니가 되었다. 이웃과 친척들이 더 기뻐한다. 그들이 아기 이름 때문에 걱정하고 있을 때 즈카르야는 벙어리에서 해방된다. 요한의 탄생은 기적이며 축복이었던 것이다(복음) 제1독서―····································º····································― <주님의 날이 오기 전에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 ▥ 말라키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1-4.23-24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너희가 좋아하는 계약의 사자, 보라, 그가 온다.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2 그가 오는 날을 누가 견디어 내며, 그가 나타날 때에 누가 버티고 서 있을 수 있겠느냐? 그는 제련사의 불 같고, 염색공의 잿물 같으리라. 3 그는 은 제련사와 정련사처럼 앉아 레위의 자손들을 깨끗하게 하고, 그들을 금과 은처럼 정련하여 주님에게 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하리라. 4 그러면 유다와 예루살렘의 제물이 옛날처럼, 지난날처럼 주님 마음에 들리라. 23 보라,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 24 그가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리리라. 그래야 내가 와서 이 땅을 파멸로 내리치지 않으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º········································― <요한 세례자의 탄생>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7-66 57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58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59 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60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61 그들은 “당신의 친척 가운데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 하며, 62 그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63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64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65 그리하여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서 화제가 되었다. 66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º·································― 가브리엘 천사는 즈카르야에게 나타나 요한의 탄생을 알립니다. 그 순간, 즈카르야는 의심에 휩싸입니다.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루카 1,18). 아이를 잉태할 수 없는 ‘생리적 상황’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의 의심은 합리적입니다. 하지만 요한의 잉태는 주님의 기적입니다. 그분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인간의 계산으로 판단하려 했던 것이 즈카르야의 잘못이었습니다. 더구나 그는 사제였습니다. 보속으로 그는 벙어리가 되지요. 처음엔 놀랍고 부끄러웠을 겁니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피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차츰 은총을 느끼게 됩니다. 왜 이런 고통을 주셨는지 깨닫게 됩니다. 그는 아들의 탄생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아기를 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어떠했을까요? 요한의 탄생을 기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아들을 주셨던 것입니다. 즈카르야는 벙어리로 있으면서 이것을 깨치게 됩니다. 그러자 보속은 해제됩니다. 벙어리의 삶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입니다. 고통이 없으면 깨달음은 오지 않습니다. 똑똑한 사람들에겐 더욱 그렇습니다.
출처 : 12월 23일 복음 말씀
글쓴이 : jeosahp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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