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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분이 네어머니이시다

성모님은 고단한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시면서 보호자가 되어 주신다. 우리에게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아버지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든든하고 어머니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따뜻하다. 하느님 아버지를 믿고 성모 마리아의 전구를 청할 수 있는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다.

내 어머니의 노래, 묵주기도

오래 전, 신학교에 들어갔을 때, 어머니는 내가 신학생들과 다툴까봐 걱정을 하셨고, 보좌 신부로 있을 때는 주임 신부와 잘 지내지 못할 까봐 걱정하셨다. 그리고 주임 신부가 되었을 때는 신자들과의 관계 때문에 염려하셨고, 교구청에 몸담고 있는 지금은 주교님들과 잘 지내는지를 걱정하신다. 나도 어느새 반백 년을 살았지만, 아흔을 바라보는 어머니에게 있어서는 여전히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어린아이를 물가에 세워둔 것 같이, 어머니의 걱정은 끝이 없었다.

자녀에 대한 걱정 때문에 어머니의 손에서는 하루도 묵주가 떠날 날이 없었고, 묵주기도는 어머니의 노래가 되었다. 젊은 신부였을 때, 어머니의 기도는 내가 하루빨리 늙는 것이었다. 신부는 빨리 늙어야 걱정이 줄어들 것이라고, 그래야 세상의 온갖 유혹에서도 벗어날 수 있고 갈대 같은 마음도 편안해 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일까? 어느새 나의 머리는 반백으로 물들어 있다.

흰머리와 얼굴의 주름살을 보시곤 조금 안심이 된다며 좋아하시던 어머니였지만, 이제는 나를 잘 알아보지 못하신다. 지금 시골에 살고 계시는 어머니는 몇 년 전에 치매에 걸리셔서 가족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시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집에 들어서면, 어머니는 맨발로 뛰어나와 나를 얼싸안고 춤을 추며 좋아하셨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집에 내려가도 낯선 손님처럼 멍하니 바라보시는 경우가 많다.

그런 나의 어머니는 거의 모든 기억을 다 잃어버리셨지만 모든 기도문은 또렷이 기억하고 계신다. 어머니의 기도는 머리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골수에 박혀 있나 보다. 그래서 어떤 종류의 치매로도 지울 수 없는 것인가 보다. 어머니의 기도에 힘입어, 이 혼탁한 세상에서 그래도 이렇게나마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어머니의 자리

그런데 몇 달 전, 주교관 식탁에서 어머니와 관련된 대화가 나온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어머니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주교님이 "어머니가 살아 계신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비록 병들었다 하더라도 어머니가 곁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참으로 감사하고 또 감사할 일일세. 어머니는 무슨 일을 우리에게 해 주어서 힘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곁에 계시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큰 힘이 되고도 남는다네. 아픈 부모님이라도 곁에 계신다면 참으로 좋을 텐데..."라며 말끝을 흐리셨다.

나는 신앙과 관련된 모든 것을 어머니로부터 전해 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는 하느님과 성모님, 아기 예수님과 성인들, 천국과 지옥 등에 대한 교리를 재미있는 이야기처럼 내게 들려 주셨다. 그 후, 신학교에서 배운 것은 어머니의 가르침에 대한 반복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신앙에 대해서만큼은 어린 시절 어머니의 품안에서 모든 것을 다 배웠다. 어머니는 육신의 생명을 낳아주신 분이시면서, 동시에 나로 하여금 내적인 신앙을 갖도록 해 주셨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이 세상엔 어머니가 있고 천국에는 성모 마리아가 계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살아있을 때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 성모님이 나를 지켜 주실 것이라고 말이다. 또한 성모님만 계신 것이 아니라, 수많은 천사들과 수호천사가 나를 악으로부터 지켜 주신다고도 하셨다. 그래서 한밤중에 어디를 가거나 홀로 남게 되더라도 결코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성모님, 그 따뜻한 이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의 길을 걸으신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조금도 남김없이 모든 것을 내어 주셨다. 그것도 모자라 예수님은 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당신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어머니를 우리에게 선물로 내어 주셨다. 예수님은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서 있는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먼저 어머니에게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하셨다. 그리고 어머니 옆에 있는 제자에게는 "이분이 네 어머니이시다." 하고 말씀하셨다(요한 26-27). 이처럼,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면서도 홀로 남게 될 어머니와 고아들처럼 떠돌게 될 제자들을 위해서, 성모님과 제자들을 혈연보다도 더 강한 신앙의 관계로 엮어 주신 것이다.

그리하여 성모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이면서 동시에 우리 신앙인의 어머니가 되신 것이다. 복음을 보면, 성모님은 항상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그 말씀을 따라 사셨다. 또한 가나의 혼인잔치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도와주기 위해서 늘 따뜻한 마음을 지니고 계신 분이었다. 무엇보다도 성모님은 아들이신 예수님과 철저하게 함께하셨다. 나자렛과 갈릴래아에서, 고통과 십자가의 길에서도 끝까지 동행하셨고 십자가 아래에서 예수님이 숨을 거두실 때에는 함께 내적으로 죽음에까지 동참하셨다. 하느님께서는 그토록 철저하게 신앙 안에서 사셨던 성모님을 거두어 주셨으니, 그것이 바로 '성모승천'인 것이다.

이렇게 철저하게 하느님을 믿고 이웃을 사랑한 성모님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모범이 되신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성모님을 남겨 주신 것은, 그분의 발자취를 본받아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성모님은 고단한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시면서 보호자가 되어 주신다. 우리에게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아버지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든든하고 어머니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따뜻하다. 그러므로 하느님 아버지를 믿고 성모 마리아의 전구를 청할 수 있는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이다. * 정웅모 신부 서울대교구 홍보실장

출처 : 이분이 네어머니이시다
글쓴이 : 바나비존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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