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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영성이야기

[스크랩] 1.글을 시작하며/정영식 신부님




- 1.글을 시작하며/정영식 신부님  -
가톨릭신문이 
정영식 신부(수원교구)의 ‘영성적 삶으로의 초대’를 새로이 연재합니다. 
이미‘형성적 영성’ 강의로 주목받고 있는 정 신부의 
쉽고 간결한 글은 영성의 생활화, 
삶 속의 영성, 통합 영성으로 이끄는 초대가 될 것입니다. 
이 초대에 응하심으로써 영적 목마름을 해소하고, 
멀게만 느껴졌던 영성의 생활화를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간은 ‘은총’과 더불어 사는 존재
사제서품을 받은지 올해로 23년이 된다. 
얼마 되지 않은 사제인생에서 6년 전 그날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신학교 영성지도 신부 소임을 맡고 있던 난 
우연히 ‘형성과학, 형성적 영성’이라는 주제의 특강을 들었다. 
심리학, 인간학 등 과학적 원리에 바탕해 영성을 설명하는 새로운 시도였다.
“그동안 애타게 찾던 것이 바로 이거야!” 
나는 즉시 형성적 영성의 창시자인 
‘아드리안 반 카암’(Adrian van Kaam) 신부를 찾아 미국으로 건너갔다. 
‘인간은 누구인가’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과학적 방법으로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벅찬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6개월 언어 코스를 마치고, 
대학원에 입학한 후 2년이 되던 날, 
드디어 반 카암 신부의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반 카암 신부는 참으로 온화하면서 섬세하며, 지성적이면서도 영적이신 분이셨다. 
얼음과 쇠붙이도 녹일 듯한 초월적 웃음을 가진 그런 분이셨다. 
이후 반 카암 신부의 강의를 듣던 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아는 것을 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반 카암 신부는 수십년간 정신적 차원의 지식과 정보들(Informations)을
영적 차원으로 형성(formation)화 하는 작업을 해 왔다. 
반 카암 신부는 형성과학이란 신학문을 통해 과학적 원리를 연구하면서 
매일의 일상적 삶 안에서 진지하게 영적인 삶을 실천하려고 투신하신 분이다. 
이러한 반 카암 신부의 이론과 삶은 나를 크게 변화시켰다.
▲ 나는 ‘무’(無, Nothing)임을 깨닫고 인정했다.
처음 미국에 도착한 나는 영어를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면서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겪었다. 
일주일을 굶으면서 육신적인 나약함도 함께 겪었다. 
결국 나의 존재는 새로운 상황에서 거의 ‘무’(無, Nothing)나 다름없었다. 
인간은 3중 구조, 즉 육신, 정신, 영으로 이뤄진 존재다. 
나는 과거의 삶의 대부분이 정신적 차원의 삶이었다. 
큰 행사 등을 통해 결실을 내며 잘했다고 자부심을 느꼈을 때 
조차도 하느님 뜻 안에서 영적으로는 거의 ‘무’의 상태에 불과했음을 깨달았다.
▲ 인간은 은총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존재임을 깨달았다.
반 카암 신부는 ‘모든 것이 은총’임을 늘 강조한다. 
인간은 형성의 장(formation field, 온 우주)안에서 
무엇보다 영적인 성향을 잘 닦아야 하며, 이것 자체가 은총이다.
반 카암 신부가 제기한 인간의 영적인 성향은 하느님 뜻에 합치, 
이웃관계에 대한 연민, 
주어진 상황에의 융화, 
보다 넓은 세상을 향한 역량의 성향이다. 
이 4가지 성향을 보조하는 성향이 하느님 뜻에의 인정, 
세상을 향한 개방성, 
세속적인 것에서의 초탈, 
사건(역사) 앞에서 순명, 
사물관계에서의 단순함, 인간관계시 외경의 성향, 
그리고 확고함과 부드러움, 세밀함의 성향이다.
그리고 이 성향들 각각을 의식할 때 마다 
하느님께 대한 경외(Awe)의 성향이 길러지며 
이로써 하느님 뜻 안에서 영적인 삶이 성장된다. 
나아가 사회적 차원에서는 하느님 뜻에 맞는 사회 정의, 
공동체 관계에서의 자비와 사회평화의 영적인 성향이 나의 마음 안에 형성된다. 
난 그동안 하느님 뜻이 모호한 상황임에도 늘 자신있어했고 교만했다.
▲ 매일의 일상적 삶 안에 하느님 은총이 충만함을 배웠다. 
하느님은 매일의 삶 안에서 당신의 뜻을 지시하신다. 
그러나 난 영을 의식하기 보다 나의 생각과 계획에 따라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아 왔다. 
내 생각과 계획을 하느님 뜻인 양 판단한 일도 많았다.
▲ 진리는 조금 더 나은(a little better) 상태임을 깨달았다. 
진리의 삶은 ‘형성의 장’(場) 안에서 궁극적 의미(당시의 하느님 뜻)를 살아가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우리는 매순간 형성되어가는(변화 성장하는) 
세상의 ‘지금 여기서’ 진리의 가장 높은 경지를 살아가야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정신적 육신적 차원에서 완전한 것을 추구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영적으로 묵상하면서 다가오는 사람, 
사건, 
사물, 장소 안에서 일차적인 궁극적 의미와 목적을 깨달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앞으로 독자들이 일상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도록, 
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가능한 한 쉽게 글을 쓰고자 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영적 목마름을 해소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지금도 영적 삶의 완성을 위해 생의 궁극적 소임을 다하고 계실 
반 카암 신부님을 위해 기도드린다. 
그리고 이 글이 나를 비롯한 많은 신자들을 
진정한 영적 삶으로 이끄는 밀알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 출처/가톨릭신문 
사랑과 평화의샘 http://cafe.daum.net/lcg420
출처 : 1.글을 시작하며/정영식 신부님
글쓴이 : jeosahp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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