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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성인의 꿈과희망

[스크랩] 성 프란치스코의 회개 여정

    성 프란치스꼬의 회개 여정

     

    1. 프란치스꼬는 인간을 형제로 발견한다


     성 프란치스꼬는 유언의 시작에

    자신이 먼저 걸었던 소명 체험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주님이 나 프란치스꼬 형제에게 이렇게

     회개 생활을 시작하도록 해주셨습니다 .

     

     내가 죄 중에 있었기에 나병 환자들을 보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역겨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 친히 나를 그들에게 데리고 가셨고

    나는 그들 가운데서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죄의 생활을 떠났을 때에는,

    역겨웠던 바로 그것이 내게 있어 몸과 마음의 단맛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얼마 있다가 나는 세속을 떠났습니다.”(유언 1-3)


     성인은 이와 같이 특별한 은총을 받아

    자신의 회개 과정의 체험을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체험은 회개자의 전생애를 비추고 인도하는 법이다.  

    성 바오로의 개종에서 그 체험은

    “나는 네가 박해하는 그리스도다”라는 소리가 들리는 그것이었다.  

     

    이 체험은 바오로 사도로 하여금 주님이신 그리스도의 신비에 대하여

    종합적이고 신학적인 비젼을 이해하도록 만들었고,  

    따라서 그는 신비체의 지체인 신자들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를

    서슴지 않고 전하게 된 것이다.  

     

    성 프란치스꼬는 가난한 사람을 통해서,

     특히 가난과 고통을 몸에 지니는 나병 환자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기에

    가난하게 탄생하시고 고통 중에 십자가에 못박히신 형제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전한 것이다.


     프란치스꼬는 타고난 연민한 성격과 크리스챤 자비심에 이끌려

     불쌍한 사람들을 동정하고 도와 주기를 좋아하였다.

     첼라노에 의하면, 프란치스꼬가 상점에서 옷감 장사로 바쁘던 어느 날

    거지 한 사람이 와서 ‘주님의 이름으로’ 애긍을 청했는데

    프란치스꼬는 빈손으로 그를 돌려 보냈다.  

    그러자 나중에 자기 행동을 반성하고 부끄러움을 느꼈다.

     

     한 거지의 청원을 거절했다는 것보다도

    ‘주님의 이름으로’ 청하는 청원을 거절하였음에 가책을 느낀 것이었다.  

    그래서 그 날부터 주님의 이름으로 청하는 누구에게나

    아무것도 거절하지 않겠다고 결심하였다.


     출세하고 이름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기사 생활을 꿈꾸면서,

    기사 복장을 하고 브리에네의 구알티에로 백작의 기사들과 함께

    아뿔리아의 전쟁터로 나가던 어느 날,

    기사 한 사람이 헌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고는

    성인은 즉시 자기의 새 복장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사람의 옷과 바꾸었다.  

     

    얼마 후에 꿈속에서 무장으로 가득찬 왕궁의 꿈을 꾸었고, 주님의 부르심을 들었다

     “프란치스꼬야!  주인을 섬기는 것이 좋으냐, 종을 섬기는 것이 좋으냐?  

    주인을 섬기기 위해서 아씨시로 돌아가라.”


    아씨시에 돌아온 후 변화가 일어났다 

     그동안 해왔던 쾌락 생활에 실증을 느끼면서

    가난한 사람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 그들과 함께

    식탁에 있을 때 기쁨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들을 동정하고 애긍을 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들의 말을 듣고 그들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성인은 애긍을 해서 궁핍한 사람들을 도와 주는 행동이

     별 뜻이 없음을 깨달았다.  

     

    가문과 돈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차별이 생기는 이상,

    애긍을 하는 것이 복음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무엇을 주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내주고

    가난을 함께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인식하게 되어

    가난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 무엇이고,

    누더기 옷을 입는다는 것은 무엇이며,

    애긍을 청할 때 당하는 부끄러움과 멸시가 무엇인가를

     자기 몸에 체험하기를 원했다.


     로마로 순례를 가던 어느 날 마침 좋은 기회가 왔다.  

    베드로 대성당 문 앞에서 한 거지에게 자기의 옷을 주고

    거지의 누더기 옷으로 바꾸어 입었다.

    그리고 거지들 가운데 끼어 불어로 구걸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가난이 무엇이며 가난한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직접 체험하였다.  

    가난이란 천대와 낮은 자리, 사회적 신분의 박탈인 동시에 도덕적이며

     신체적인 타락함이라는 것을 체험하였다.


     다음 단계로서, 은총의 인도를 받아 프란치스꼬의 회개 생활에서

    결정적인 체험이 된 순간은 나병 환자들을 만나는 일이었다.  

    이것은 매우 어려운 시련이었다.

     민감한 성격과 기질 때문에 나병 환자의 부패된 모습을 보는 것조차

     그에게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버리면서 “그리스도의 뜻을 알고”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서

    이 어려운 시련을 이겨야만 했다.


     어느 날 아씨시의 벌판, 숲속에서 말을 타고 가던 프란치스꼬는

     자기에게 손을 내미는 나병 환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신속히 말에서 내려와 먼저 그의 손에 애긍의 돈을 내놓고

    다음에 그의 손에 입맞추었다.  

    그 후부터는 나병 환자가 자기에게 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나병 환자촌을 자주 방문하면서 그들과 함께 지내기를 좋아했다.


     프란치스꼬의 개인적인 추억을

    가장 충실하게 모아서 기록한

    “세 동료들의 전기”는 지금까지 나병 환자들을

    가까이 하도록 방해를 놓았던 이유,

     즉 그의 죄스러운 생활을 제시한 후,

    그의 회개의 과정과 관계되는 다음의 것을 덧붙인다

     

     “그가 나병 환자들에게 한 방문들이

    그를 한층 더 선한 마음을 갖도록 만들었다.”

     

     

    2. 프란치스꼬는 그리스도를  형제로  발견한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중세기의 가난한 자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인 나병 환자를 통하여

    프란치스꼬에게 자신을 드러내신 것이었다.  

    이제부터 프란치스꼬는 “크리스챤 형제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반가히 맞이하러 나갔다. 

     

     그는 고통을 견디어 내신 주님의 생생한 모습을 몸에 지닌 나병 환자들을

    특별히 “크리스챤 형제”라고 부르기를 좋아했다. 

     

    나병 환자들에 대한 성인의 동정심은 무엇보다도

    그들이 인간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처지에 있음을 안타깝게 여겼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 속에서

    성인이 유언 시작에 하신 말씀을 이해할 수 있다.

     주님은 회개에로 인도하기 위해 프란치스꼬를 “나병 환자들에게 데리고 갔습니다.”  

    “이 때는 프란치스꼬의 마음이 완전히 변했다”고

     첼라노의 토마스 전기 작가가 증언하고 있다.

     

     이 사건과 이어서 전기 작가들이 성 다미아노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먼저 가난한 사람 안에서 주님을 발견하신 프란치스꼬는

    이제 성 다미아노 성당의 십자가상에서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그분을 ‘형제’로 알아 모실 수 있었다.  이 두 사건은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다음에 세속을 떠나기 위해서 자기 아버지와의 결별이 있었다.

     주교 앞에서 나체로 자신의 옷과 돈을 아버지께 돌려줌으로써

    가족들과의 관계를 끊어버렸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과 나병 환자들을 돌봐주고

     성당을 수리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으로 여겼던 돈마저

    모두 버리고 오직 하늘의 아버지께 신뢰를 두면서 새 삶의 모험에 자기 자신을 던졌다.


     첼라노는 이 때의 프란치스꼬를, 마음이 자유로우며

    기쁨에 넘쳐 아씨시의 벌판을 돌아다니면서

    불어로 하느님을 찬미하는 모습으로 묘사한다.

     

     그 후 일감을 구하러 분도회 수도원을 찾아가 거기서 얼마 동안 고생하였으며,

     얼마 후에 굽비오에 사는 친구에게서 입을 옷을 구했다.  

    그리고 다시 “나환자들에게 가서

    하느님을 위해 성의를 다하여 시중들면서 함께 살았고,  

    온갖 썩은 곳을 씻어주며 상처와 고름도 깨끗이 닦아주었다.”


     나병 환자들과 보냈던 기간은 프란치스꼬의 수련기였다.  

    그리고 그분의 첫 제자들의 수련기도 마찬가지였다.

     궁핍한 자 가운데서 주님을 찾는 사람에게는,

    그리스도께서 항상 자기 자신을 드러내 보이신다는 것을

    사부님은 먼저 체험하셨기 때문에,

    자신의 체험을 자기의 제자들도 느낄 수 있도록 그들을 나병 환자들에게 보냈던 것이다.


     가난한 사람 안에서 그리스도가 ‘성사’처럼 현존하신다는

     이 사실은 사부님의 전생애를 통하여 생생하게 살아남아 있었다.

     

     첼라노에 의하면, “그가 궁핍한 사람에게서 무엇을 보든지,

     또는 그것이 어떠한 빈곤이든지 간에

    프란치스꼬는 그 궁핍을 즉시 마음으로 그리스도와 연결시켰다.  

     

    그래서 그는 모든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가난한 부인의 아들을 보았고” ......

    어느 형제에게 “오, 형제여, 형제가 가난한 사람을 볼 때

     거기에는 주님과 주님의 가난한 어머니의 모습이

    형제 앞에 마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병든 사람에게서는

    우리를 위해서 주님께서 떠맡으신 병약한 모습을 생각하시오.”


     회개의 과정에서 형제인 가난한 사람을 통하여

    하느님께로 가는 은총의 길은 성 프란치스꼬의 경우 외에도

     하느님의 구원의 역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일이다(참조:이사 58,1-12).

     

     그리스도는 항상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참조:마태 25,31-46).
          

                                                                                         

    3. 복음을 “생활 양식으로” 발견하다

     성 프란치스꼬의 회개의 세째 과정은

     고독과 기도를 통하여 정화가 이루어진 긴 기다림이었다. 

     

     프란치스꼬는 스스로 고독함을 체험하면서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당하였고

     모든 이로부터 정신 나간 불쌍한 자로 여겨졌다. 

     

     정식으로 “회개자들”의 집단에 속하고 “회개자”의 옷을 입었지만,

     어떤 사제나 어떤 수도원 지도를 받으면서

    특별한 생활 양식을 따랐던 당대의 회개자들의 집단에

     입적하기를 원치 않았을 뿐더러 다른 누구의 조언을 청하거나

    누구와 상의할 필요성도 느끼지 않았다. 

     

    이는 하느님 친히 자기를 인도하심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세 동료들의 전기”가 증언해 주고 있다.


     “그는 끊임없이 주님께 자기의 걸음을 인도하여 주실 것을 애원하였다.  

    그는 실은 아무에게도 자기의 비밀을 밝히려고 하지 않았고

    자기의 걸음을 인도하기 시작하신 하느님의 말씀이 아니고서는

    어떤 사람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다만 때때로 아씨시의 주교에게 조언을 청하긴 하였다.”
     성인의 삶이 전적으로 전환된 이 기간은 약 2년 반이 걸렸고

    내적인 고통이 매우 심한 시기였다.  


     “그는 자기가 체험한 총독의 결실을 보기까지는

    안식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내적으로 큰 아픔과 당황을 겪었다.  

    서로 엇갈린 생각이 그 머리에 귀찮게 떠오르긴 하였다.

     

    그 마음에는 신성한 불이 타올라 외적으로 그 열기를 감추지 못했다.  

    그는 과거에 큰 죄를 지었음을 몹시 아파하고 있었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악행에 즐거움을 느끼지는 않았으나

    장래의 악행을 피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은 아직도 얻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서 회개자의 상태가 잘 묘사되고 있다.

     

     회개자는 이 때 자기 삶에 무엇이 끝장이 났고,

    하느님이 자기 삶에서 무엇을 받아들이지 않으신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으나,

    아직도 갈 길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즉 알지 못하는 방향으로 밀려가면서 하느님의 작용에 자기 자신을 내맡기는 상태이다.


     자기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의 인도하심에 내맡긴 사실을

    프란치스꼬 친히 형제회의 초기 역사를 기록하는 유언에서 확인한다.  


     “그리고 주님이 몇몇 형제들을 나에게 주신 후

    아무도 내가 해야 할 것을 나에게 보여 주지 않았지만,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친히 거룩한 복음의 양식에 따라

     살아야 할 것을 나에게 계시하셨습니다”(Test 14).

     


     결정적으로 계시를 받기 전에도,

     그의 준비의 과정으로 중요한 사건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십자가에 못박히신 분이 성 다미아노의 작은 성당을 수리하라는 명을 내리자,

    그 명을 기사다운 재빠른 행동으로 실행하려는 사건이 그렇다.

     

     프란치스꼬는 즉시 집에 돌아가서 아버지의 옷 창고에서 가장 값진 천을 꺼내고

    말에 실은 후에 폴리그노에서 옷과 말을 팔아버렸다.  

    그리고 아씨시에 돌아와서 성 다미아노 성당 담당 사제를 찾아가

    성당을 수리할 돈을 갖다 주었다.

    그러나 그 사제는, 착한 신자로서 행동하는 프란치스꼬의 정성을 무시한 채

    이상하게도 그 돈을 거절하였다.


     젊은 프란치스꼬는 이러한 거절을,

    주님께서 자기의 인간적인 재산을 거절하시면서

    재산이 아니라 자기의 봉헌을 원하신다고 해석하였다.  

    그래서 돈주머니를 창 안으로 던지면서 돈을 먼지인 양 저주하였다.

     

    그는 실은 이 “돈 전부가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성당을 수리하는데 사용되었으면”

     하고 바랐지만, 이제는 가난한 자의 참된 형제가 되려면

    가난한 자와 같이 가난한 자가 되어야 하고,

    하느님의 업적은 돈이 아니라 자신의 봉헌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자기 육적인 아버지 손에 모든 재산을 다 포기하고

     얼마 동안 기쁨 중에 가난을 살아가는 고생스러운 체험을 거친 후

    아씨시에 돌아와서 자기 손으로 그리스도의 명을 실행하기에 착수했다.

     그러기 위해 미장이의 기술을 배우고, 집집마다 건축 자료를 동냥하며

    가난한 이들과 애긍물을 나누면서 그들의 협조를 바라야만 했다.  

    이렇게 돈 없이도 성당을 하나뿐만 아니라 세 개까지 수리할 수 있었고,

    새로운 계시를 받지 않았던들 계속 성당 수리에 날들을 보냈을 것이다.

     

     실은 성당을 수리하면서 가난하신 그리스도께 바친 봉사는

     장래에 거룩한 어머니 교회 안에서 수행할

    위대한 사명을 상징하는 훈련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후로는 돈이 프란치스꼬의 삶에 아무 의미가 없었고

    나중에 회칙을 쓸 때 형제들의 생활과 활동의 수단에 있어

     돈을 제외시킨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때에 새로운 계시를 받았다.

     프란치스꼬는 자기가 세 번째로 수리한 뽀르찌웅꿀라 성당에서

     미사에 참석하는 중 “파견”의 복음 말씀을 듣고 새로운 부르심을 받았다.  

    날짜는 아마 1208년 4월 25일, 성 마르꼬 복음사가의 축일 아니면 같은 해 10월 18일,

     성 루까 복음사가의 축일이었다.


     이 날 들은 복음은 루까 복음 10,1-9에 나오는 파견의 복음으로써,

     주께서 제자들을 하늘 나라를 선포하기 위하여 파견하시면서

    양과 같이 양순하고, 돈이나 자루 없이 다니고, 평화의 인사를 전하며,

    주는 음식을 먹고, 병든 이들을 고쳐주라는 등의 내용이었다.  


     미사가 끝나자 사제에게 복음의 내용을 설명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이 날은 프란치스꼬에게 긴긴 밤을 지낸 후에

    빛나는 새 아침이 밝아오는 듯했다.  첼라노가 이것을 증언한다.  


     “프란치스꼬는 즉시 하느님의 영 안에서 기뻐 외쳤다.

     이것이 바로 내가 찾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원하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 온 정성을 기울여 하고 싶어하던 바다.”


     이어서 그는 지체없이 지금까지 회개 생활의 공적인 표시로

    입었던 회개자의 옷을 벗어버리고 띠로 매는 간단한 투니카를 입고

     맨발로 하느님의 나라를 전하면서 사람들에게 회개하도록 설교하기 시작하였다.

     이 때는 “회두한 지 3년째 되는 해였다.”


     복음적인 소명을 발견하고 나서

    그 첫째 결실로, 프란치스꼬는 주님께서 관상의 비밀 중에 자기에게 밝혀주신

     모든 신비를 사람들에게 전해야 할 긴급한 요청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만민이 꼭 알아야 할 “좋은 소식을” 발견하여 간직하고 있듯이

    “큰 영광과 기쁨으로”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였다.  


     또한 이제는 드디어 자기가 살아갈 삶과 타인들과 나누어야 할 삶을 발견하게 된다.

     실은 이런 일이 있고 나서 며칠 후에 프란치스꼬와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생활 양식을 택할 마음으로”  

     최초의 제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이로써 프란치스꼬는 예상도 못한 채 창설자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하느님 뜻의 새로운 표시에 놀라지 않았고

    자기를 찾아온 최초의 제자인

     

    Quintavale의 베르날도를 포옹하면서 반갑게 맞이하였다.

     첼라노가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
     “성 프란치스꼬는 그렇게 장한 사람이 와서 회두한 것을 몹시 기뻐하였으니,

    그는 필요한 동료와 충실한 친구를 보내주심으로써

    주께서 염려해 주신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격상 우정이 그립고 사교성이 뛰어난 그는 그렇게도 오랜 고독을 받아들여야 했으니,

    동료와 친구를 만난 이 때에 얼마나 기뻤을까?

     생애의 마지막에 유언을 쓰면서 이 순간을 회상해 본다 :

     

    “주께서 나에게 형제들을 주셨습니다.”
     프란치스꼬는 한 번도 영적인 우월감을 느끼는 지도자의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그에게 형제들은 자기 제자들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복음의 모험을 살아가는 동료들이었다.

     

     단지 그분은 처음부터 자기를 찾아온 사람들이 자기와 같은 생활 양식을 택하도록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는가를 확인하려고 했을 뿐이다.  

    그래서 베르날도와 두 번째로 찾아온

     

     Cattani 베드로를 데리고 성 니꼴라오 성당을 찾아가

     오랫동안 열심히 기도한 후, 프란치스꼬는 세 번이나 복음서를 폈다.

     그 때마다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요청되는

    완전한 포기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기사를 만났다.


     “복음서를 매번 펼 때마다

    프란치스꼬는 가지가 오래전부터 품었던 이상을

    주께서 확인해 주신다는 것을 보고

     

    하느님께 감사드렸다.

    세 번째 확인이 알려지자 그는 베르날도와 베드로에게 말했다 :

    형제들이여, 이것이 우리의 생활과 회칙이고,

     

    이것이 우리와 합치기를 원하는 모든 이들의 생활과 회칙입니다.  

    그러므로 가서 들은 것을 실행합시다.”

     

     

    -신 대건  안드레아 신부 -

     

    사랑과
    사랑과 평화의샘 http://cafe.daum.net/lcg420
출처 : 성 프란치스코의 회개 여정
글쓴이 : jeosahp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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