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과 멋 그리고 성지순례]수원교구 이천시 어농성지*
자신을 살라 신앙의 새벽 밝힌 순교혼 '활활'
1794년 12월14일.
마침내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압록강을 건너 '복음의 불모지' 조선에 입국했다.
당시 신자들에게 사제는 한가닥 희망이었다. 윤지충의 조상제사 문제로 촉발된 신해박해(1791년)에 철퇴를 맞은 신앙 선조들은 성직자를 모셔와 다시 일어서려고 했기 때문이다.
목숨을 걸고 중국 베이징을 네차례나 오가며 성직자 영입을 성사시킨 밀사는 권철신의 제자 윤유일(바오로), 그리고 동료 최인길(마티아)과 지황(사바)이다.
그러나 배교자의 밀고로 주 신부 입국사실이 관가에 알려졌다. 그 바람에 3명은 즉시 체포됐지만 혹독한 매질을 당하면서도 주 신부 행방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다.
이들은 얼마나 매를 맞았던지 붙잡혀 온 지 하루 만에 숨을 거뒀다. 포졸들은 세 순교자 시신을 거적에 싸서 지금의 한양대학교 동쪽 살곶이다리 부근 강에 던져버렸다.
주문모 신부는 양반댁 과부 강완숙(골룸바) 집에 6년간 몸을 숨기고 사목활동을 폈다. 하지만 박해의 칼날에 쓰러지는 교우들을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어 1801년 3월 자수해 두달 뒤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아, 이들의 순교혼을 감쌌던 뼈와 살과 피묻은 옷자락은 어디로 흘러갔는가. 어디에 가야 티끌만한 흔적이라도 찾을 수 있을까.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어농성지(전담 이건복 신부)는 참 고마운 곳이다. 또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이들은 교회사의 주춧돌 아닌 모퉁잇돌 같은 존재이기에 후손들은 제대로 기억조차 못하고 사는데 성지는 어머니 품처럼 아늑한 동산에 그들의 혼백을 모시고 있다.
어농성지는 을묘박해 때 순교한 밀사 3명을 비롯해 신유박해(1801) 순교자 주문모 신부ㆍ윤유오(윤유일 아우)ㆍ윤점혜(윤유일 사촌 여동생)ㆍ강완숙 등 9명을 현양하기 위해 조성된 성지다. 이들 9명은 모두 '하느님의 종'으로 인정돼 시복이 추진 중이다.
성지 입구 왼편 순교자 묘역에 이들 묘가 있다. 윤유일의 아버지 윤장과 윤유오의 묘를 제외하고는 시신이 없는 의묘(擬墓)다.
너른 잔디밭에 조성된 순교자 묘역은 아늑한 어머니 품 같은 형세다. 묘역 입구에 성모 마리아상이 서 있어 더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일까. 천상의 어머니는 매질에 만신창이가 된 육신을 강물에 떠내려 보내고 찾아온 순교자들을 틀림없이 눈물로 맞아주셨을 것이다.
순교자 묘역에는 36살에 순교한 '고난의 밀사' 윤유일 동상이 서 있다. 윤유일은 오른손에 성서, 왼손에 성작을 들고 있는데 자세가 그렇게 늠름할 수가 없다. 장사꾼으로 위장하고 베이징에 가서 구베아 주교에게 성직자 파견을 요청하고, 극심한 매질에도 주 신부 행방을 밝히지 않았던 기백이 늠름한 자세에서 풍겨 나온다.
순교자 묘역에서 나와 위쪽으로 걸어가면 십자가의 길 14처가 있는 소나무숲으로 들어가게 된다.
순례객들이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면 항상 '깜순이'가 다음 처로 안내한다. 깜순이는 성지에서 기르는 검정색 강아지인데 순례객이 1처에 도착하면 2처로, 4처에 도착하면 5처로 달려가 기다린다. 깜순이는 그 일이 신나는 모양이다.
십자가의 길이 끝나면 산 능선을 따라 20여분간 걷는 순례의 길이 나온다.
박해시대에 이천과 용인 일대 깊은 산속에는 교우촌이 많았다. 김대건 신부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골배마실 은이공소, 김 신부가 사제품을 받고 돌아와 잠시 사목했던 유서깊은 교우촌 단내 등이 어농성지와 가깝다.
그 옛날 이 일대 교우들이 공소예절에 참례하기 위해, 혹은 지게에 한가득 옹기를 지고 걸었을지도 모르는 길이다. 그런 생각에 잠겨 순례의 길을 걸으면 애틋한 마음이 새록새록 솟는다.
어농성지에는 특이하게도 성지 한가운데 논이 있다. 길게 늘어선 논배미를 가운데 두고 양 옆으로 성지가 조성된 형세다. 하루가 다르게 모가 쑥쑥 자라는 여름과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가을에는 장관이 펼쳐진다. 성지 관리사무실 직원은 "눈물 나게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극찬한다. 또 주위 솔밭은 한여름에도 그늘막이 필요없는 시원한 휴식처다.
성지지기 이건복 신부는 어농성지를 청소년 신앙교육장으로 꾸미고 있다. 청소년들 가슴에 순교영성과 성소를 불어넣어 주기 위해서다. 어농성지가 자신을 불살라 신앙의 여명을 밝힌 순교자들 혼이 살아 숨쉬는 성지이기 때문이다. 또 성직자를 영입하기 위해 목숨까지 바친 순교자들 삶은 사제 성소의 고귀함을 알려주기에 충분하다.
이 신부는 "어농성지는 소유와 빠른 속도에 쫓겨 사는 현대인들에게 '영혼의 정원'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며 "특히 내년 초부터는 청소년 피정 및 순교체험 프로그램을 본격 가동할 계획"이라고 말한다.
글=김원철 기자3D3Dwckim@pbc.co.kr">3Dwckim@pbc.co.kr">3Dwckim@pbc.co.kr">wckim@pbc.co.kr
사진=전대식 기자 jfaco510@
<<맛자랑- 성지 유기농쌀 >>
성지에 있는 논에서 올해 쌀 80가마(80㎏짜리)를 수확했다.
성지측이 농약과 화학비료를 전혀 쓰지 않고 오리농법으로 정성껏 재배한 100% 유기농쌀이다. 논에 풀어 놓은 오리 700마리가 봄, 여름 내내 잡초와 해충을 먹어 치워 농약을 칠 필요가 없었다.
이건복 신부는 이 쌀을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쌀"이라고 장담한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천쌀'이야 원래 유명하지만 그 중에서도 어농리 쌀은 인근 농부들도 인정할 만큼 밥맛이 뛰어나다. 어농리 지명은 여기 혹은 장소를 뜻하는 '어(於)'에 농사 '농(農)'자를 써서 "농사짓기에 알맞은 땅"이란 의미다.
더구나 수확량이 절반밖에 안 나오는 손해를 감수하고 유기농법을 고집했으니 품질이야 더 설명해서 무엇하겠는가.
성지측은 가을걷이를 막 끝낸 유기농 현미 한포대(10㎏)를 5만5000원, 유기농 백미 한포대를 6만원에 판매하고 있다. 성지 관리사무실(031-636-4061)로 주문하면 전국 어디든 택배로 보내준다. 수익금은 전액 성지개발에 쓰인다.
김원철 기자
평화신문 기자 3D3Dpbc@pbc.co.kr">3Dpbc@pbc.co.kr">3Dpbc@pbc.co.kr">pbc@pbc.co.kr
(사진설명)
1. 한 순례자가 순교자 묘역 윤유일 동상 앞에서 순교혼을 기리고 있다.
뒤로 주문모 신부 동상과 순교자들 의묘가 보인다.
2. 순교자 묘역에서 절을 올리는 순례자들.
3. 노약자를 위해 입구에도 십자가의 길 14처를 만들어 놓았다.
4. 어농성지 유기농쌀을 자신있게 권하는 이건복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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