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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스테파노)추기경님회고전

[스크랩]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도록 /사제 총회 강론 - 1988. 11. 17.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도록
[사제 총회 강론 - 1988. 11. 17. / 김수환 추기경]

그리스도의 생활한 증거자
성체 대회가 잘되느냐, 안 되느냐는 우리들 사제에게 달렸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성체의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사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사제는 성체 성사를 거행함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in Per- sona Christi) 행합니다. 그리스도를 대리합니다. 때문에 사제는 누구보다도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 되어야 합니다.

사제는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할 때, 그렇게 말함으로써 빵과 포도주를 주님의 몸과 피, `성체와 성혈'로 변화시킬 수 있는 권능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그런 권능을 가진 그만큼 그리스도와 참으로 내적으로 일치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사제 자신의 몸과 피를 그리스도의 그것과 합하여 신자들을 위해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정신과 마음을 늘 지녀야 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지극히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을 남김없이 주셨듯이 그렇게 사제도 신자들을 사랑한 나머지 자신을 주는 사람 되어야 합니다.

성체 성사, 성찬의 전례를 통해서 사제의 역할, 구실이 무엇이며 거기서 나오는 사제의 영성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것을 위해서는 지난 9월 초에 있은 교구 사제 피정에서 지도 신부인 니콜라스 신부님이 말씀하신 것이 많이 참고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1. 사제는 먼저 그리스도의 생활한 증거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사제는 그리스도를 충실히 따르는 제자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사제는 성체 성사 거행에 있어서, 한편 대사제이신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주인이면서 동시에 다른 신자들과 똑같이 주님의 식탁에 초대된 사람입니다.

즉 주인이면서 제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인으로만 의식하고 제자 됨을 잊기 쉽습니다. 그 때문에 신자들에게 복음에 따라 살도록 가르치기만 하고 자신이 먼저 이것을 살 줄을 모르는 우(愚)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말과 행실, 삶 전체를 통해 그리스도의 생활한 증거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분명히 사제인 우리 안에 현존하십니다. 이 현존을 우리는 증거해야 합니다.

2. 사제는 참으로 살아 있는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 제물이 된다는 것은 금욕, 고신 극기를 주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금욕과 극기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부정적 의미의 금욕, 고신 극기 그보다도 사랑으로 자신을 비우는 긍정적인 의미의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이가 매일 대재를 지키며 고신 극기를 한다 해도 자기를 비울 줄 모르는 고집으로 가득 차 있다면, 또 금욕하는 그만큼 성인연(聖人然)하고 권위주의적이면 그것은 참된 의미로 제물(Sacrificium)은 못 됩니다. 그보다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신성을 비우시고 낮추셨듯이 그렇게 비우고 낮춘다면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봉사받으러 오지 않으시고 봉사하러 오셨듯이 그 정신으로 봉사한다면 이것이 참으로 Sacrificium이 될 것입니다.

진실로 자신을 비우느냐 아니냐의 바로미터는 "내가 사제로서 참으로 남을, 신자들을 수용하느냐? 나의 가까운 협력자, 보좌 신부, 수녀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느냐 아니냐? 나의 주장, 나의 의견도 양보할 줄 아느냐? 또 내가 물질적인 이익을 초월하고 있느냐? 미사 예물의 다소(多少)에 아무런 구애도 받고 있지 않느냐? 나는 참으로 언제 어떻게 되든지 그것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

이 모든 점에 있어서 마음의 자유를 느낀다면 우리는 진정 예수님과 같이 마음으로 가난한 자일 수 있겠습니다.

가난한 자들에 대한 관심
3. 사제의 역할은 무엇보다도 일치입니다. 우리 본당 구성원은 수적으로도 너무 많고 너무나 다양합니다. 연령으로 노소가 있고 성별로 남녀, 또 빈부의 차이, 혹은 지역 간의 차이가 우리 본당 안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밖에 정신적, 심리적으로 소외된 사람들, 상처입은 사람들, 이혼한 사람들, 재혼한 사람들, 남편을 여윈 과부들, 올드미스들, 욕구 불만이요 저돌적인 청소년들, 이 모든 이를 어떻게 일치시키느냐 또 성체 성사 곧 성찬 전례를 어떻게 이 모든 이가 참으로 마음으로 참여할 수 있게끔 거행하느냐, 이를 위하여 사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전례 헌장은 도대체 성체 성사를 정의하여 자비의 성사요 일치의 표징이요 사랑의 끈이라고 천명했는데 우리가 거행하는 미사 성제는 과연 그런 구실을 하고 있는가?" 여기에 저는 묘방을 제시할 수는 없습니다. 사제는 전례적으로 미사 성제가 자비, 일치, 사랑의 성사가 되도록 협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이에게 친절하고 봉사적이고 아버지이며, 형제 되고 또 친구되도록, 한마디로 그리스도와 같이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그리고 기도로써 주님께 의탁하는 것입니다.

4. 그런데 근본적으로 사제는 예수님이 그러하셨듯이 가난한 사람에게 대하여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성찬 전례, 곧 미사 성제는 반(反)구조적(Anti Structual)임을 알아야 합니다. 구약의 제사에서는 신분과 계급의 구별, 남녀의 구별 그리고 유다인이냐 아니냐의 민족의 구별이 엄격했습니다.

그것은 구조적 제사입니다. 즉 제사가 사회의 구조와 질서를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신약의 제사, 주님의 식탁인 미사 성제에서는 계급도 없고 남녀의 차, 빈부의 차, 민족의 차가 없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때문에 갈라디아서 3장 28절과 골로사이서 3장 11절에서 "유다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차별이 없고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와 여자나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은 한몸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또 사도 행전에서 보듯이 초대 교회 신자들은 가진 모든 것을 서로 나누어 그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은 없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같이 교회 안에도 아무런 차별이 없어야 합니다. 공의회 교회 헌장 32항에서 이 점이 대단히 강조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모든 이가 하나 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 사제는 가난하고 약한 이들이 공동체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자연히 사제 편에서 그들에게 적극적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가진 사람들은 우리가 앉아 있어도 찾아옵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구걸하러 오는 경우도 있겠으나) 인간적으로 신부님에게 접근하고 인간적인 대접을 받기는 힘듭니다. 그래서 우리 편에서 그들을 찾아 나서지 않으면 결국 그들은 소외되고 우리는 대하기 쉬운 사람들, 가진 사람들과 접촉하기 쉽습니다.

제가 얼마 전 신림동 본당을 사목 방문했는데, 산동네 달동네라고 하는 신림10동의 신자 퍼센트가 10퍼센트였습니다. 서울 대교구의 대부분의 가난한 지역의 신자 수가 3, 4퍼센트에 불과한데 중산층이 사는 강남 지역의 10퍼센트와 같았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거기에 그 사람들과 함께 사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에 그 신부님이 나와 있는 것 같아서 그분이 누구라고 소개를 하지 않겠습니다. 그분은 지금 고개를 숙이고 계십니다. 제가 여러 해 전에 그곳을 찾아갔을 때, 거기서 미사를 같이 드렸습니다.

`사랑의 집'이라고 20여 평도 안 되는 작은 집에 사람들이 가득 차서 성탄 전야 미사를 드릴 때, 신자들은 아주머니들과 할머니들이 많았습니다. 미사 중 `신자들의 기도' 시간에 그곳 신부님 두 분을 위한 내용이 꼭 들어 있어서 이분들이 굉장히 신부님들을 사랑하고 있다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참고로 알려 드리는 것은, 본당으로서는 신설 본당에 속하고 활동은 특별한 것이 없고 매일 그냥 거기서 사는 것입니다. 신부님은 이 집 저 집 방문하여 그들의 모든 이야기를 듣고 그들과 희로 애락을 나누며 함께 합니다.

그리스도처럼 종의 모습으로
5. 종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사목자로서 지도자입니다. 공동체의 지도자, 그러면서 영성적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이 종이 되는 소명을 받고 있습니다. 지도자로서 동시에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에게 이율 배반적인 갈등을 가져옵니다. 어떻게 우리가 종이 될 수가 있는가? 더욱이 우리는 지도자로서의 습성이 있기 때문에 신자들 앞에서 체면이 깎인다든지, 권위가 무시된다 할 때 이를 받아들이기가 굉장히 힘듭니다.

그러다 보면 종이 되어야 하는 영성을 잃고 맙니다. 그러나 결국 사제의 영성은 성체 성사의 예수님처럼 종의 모습입니다. 그리스도는 거듭거듭 우리에게 당신과 같이 종이 되라고 가르치십니다. 종으로서 봉사할 때 참된 지도자가 된다고 하시며 "누구든지 윗사람이 되고자 하면 종이 되어 섬겨야 한다."고 하십니다.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는 분명히 야훼의 종으로서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말씀의 봉사자로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자신을 하느님의 말씀의 봉사자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느님 말씀에 자신을 송두리째 바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말씀이 그 안에 육화하고 계셨습니다. 아마도 사도 바오로가 "내 안에 사는 이는 내가 아니고 그리스도이시다." 또는 "그리스도는 나의 생의 전부이시다."라고 힘 있게 말씀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신자들에게 성경을 읽기를 권합니다마는 우리 자신이 성경을 읽고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이 우리 안에 육화되어 오시도록, 그리하여 우리도 "내 안에 사는 이는 내가 아니고 그리스도이시다."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6. 성령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물질 문명의 메마름 속에 많은 이들이 영적인 것에, 곧 성령에 굶주리고 있습니다. 그들이 교회와 사제들로부터 기대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영적인 것, 성령에 대한 굶주림, 이것을 채워 달라는 것입니다. 우리 사제는 성령으로써 사제로 축성되었기 때문에 성령에 의하여 또한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려 파견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의 전달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반드시 성령 운동 봉사자가 되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자신의 삶이 성령으로 차 있는 사람답게 성령으로 인도되고 성령으로 살고 성령으로 충만된다면 자연스럽게 다른 이에게 성령을 전달할 수가 있겠습니다.

7. 사제는 궁극적으로 오늘 이 시대에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원이시며 생명이심을 증거해야 합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찾는 모든 것,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원이요 평화이심을 믿고 증거해야 합니다.

참으로 그리스도께 대한 굳은 믿음, 이것이 사제의 삶의 바탕, 힘이 되어야 합니다. 그분이 내 안에 현존하심을 믿고 나의 죄나 부족, 과실 여하에 상관없이 나를 사제로 부르시고 당신 성령으로 나를 사제로 축성하신 그분은 내 안에 사시고 나와 함께 일하신다, 나는 그분께 모든 것을 내맡기고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는 믿음을 우리는 지니고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그분은 우리를 통해서 당신이 하실 일을 다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태산 같습니다마는 그리스도께서 해주시기 때문에 우리 자신을 그분께 나날이 맡기면 맡길수록 그분의 영광은 더욱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http://cafe.daum.net/cci2004c

 

 

[속보] 김수환 추기경 선종
김수환 추기경이 16일 오후 6시 12분경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선종했다. 향년 87세.

1922년 5월 대구에서 태어난 김추기경은 서울 가톨릭대학 신학부와 독일 뮌스터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1951년 사제로 서품됐다. 안동본당과 김천 황금동본당 주임을 거쳐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열리고 있던 1964년 가톨릭신문 사장을 지냈고, 1966년 4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마산교구 주교로 임명됐으며, 1968년 서울대교구장에 착좌한 이듬해 1969년 4월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한국교회 최초의 추기경으로 서임됐다.

◆ 김수환(金壽煥)추기경 연보

1922년 5월 8일(음력) 대구출생
1941.3. 서울 동성상업학교 졸업
1941.4. 일본 동경 상지대학교 입학
1942.9. 위 대학 문학부 철학과 진학
1944.1. 제2차 세계 대전으로 학업 중단
1947.9~51. 6. 서울 가톨릭대학 신학부에서 신학전공
1956.10~63ㆍ1ㆍ독일 퀸스터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학전공
1951ㆍ9ㆍ 사제서품
1951ㆍ9~53ㆍ4ㆍ대구대교구 인동천주교회주임신부
1955ㆍ6~56ㆍ7ㆍ대구대교구 김천 황금동 천주교회 주임신부 겸 성의중·고등학교장
1964ㆍ6~66ㆍ5 가톨릭시보(현 가톨릭신문)사장
1966ㆍ 마산교구 주교 서임
1966ㆍ6 주교서품, 마산교구장 착좌
1968ㆍ4 서울 대주교 승품.
1968ㆍ5 서울대교구장 착좌
1969ㆍ4 교황 바오르 6세에 의해 추기경서임
1970ㆍ10-75ㆍ2ㆍ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1차 역임)
1970~73 아시아 주교회의 구성 준비위원장
1974ㆍ2ㆍ명예문학박사(서강대학교)
1981ㆍ5-87ㆍ11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2차역할)
1967ㆍ71ㆍ74ㆍ80ㆍ83ㆍ85ㆍ교황청 시노두스(세계 주교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석
1977ㆍ5 명예 법학박사(미국 노틀담대학교)
1988ㆍ11ㆍ명예 신학박사(일본 상지대학교)
1990ㆍ5ㆍ명예 철학박사(고려대학교)
1990ㆍ10ㆍ명예 법학박사(미국 Seaton Hall대학교)
1944ㆍ5ㆍ명예 신학박사 (연세대학교)
1995ㆍ6ㆍ명예 철학박사 (타이완Fu Jen 가톨릭대학교)
1997ㆍ7 명예 인문학박사(필리핀 Ateneo대학교)
1998ㆍ4ㆍ로마에서 열린 아시아 특별 주교시노드 공통의장대리로 참석..
1998ㆍ5월29일. 서울대교구장 착좌 30주년.
1998. 5월 30일. 서울대교구장직 은퇴.

기사입력일 : 2009-02-16

출처 :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도록 /사제 총회 강론 - 1988. 11. 17.
글쓴이 : 풀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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