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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파노의기도및 신앙

성 다미아노 십자가 앞에서 드리는 기도

성 프란치스코의
성 다미아노 십자가 앞에서 드리신 기도(1)


"지극히 높으시고
영광스러운 하느님이시여,
내 마음의 어둠을 밝혀 주소서.
주님, 당신의 거룩하고
진실한 뜻을 실행하도록
올바른 신앙과
확고한 희망과
완전한 사랑을 주시며
지각과 인식을 주소서, 아멘."

 

‘성 다미아노 십자가 앞에서 드린 기도’는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문 가운데 첫째 기도문이다. 이 기도문은 프란치스코가 주님의 인도로 나환자를 만나, 마음은 이미 세속을 떠났지만 몸은 아직도 세상에 머물러 있을 때 지었다. 당시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삶에 개입하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체험하고 있었지만 그분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는 영적 여정의 초기단계에 있었다. 그래서 이 기도문은 ‘프란치스코가 회개시기에 드린 기도’라고도 불린다.

작성 배경과 필사본 전통
‘성 다미아노 십자가 앞에서 드린 기도’를 담고 있는 모든 라틴어 필사본은 프란치스코가 이 기도문을 회개 생활 초기(1205-1206)에 바쳤다고 전한다. 특히 프란치스코가 성 다미아노 성당의 십자가로부터 “허물어져 가는 나의 집을 고쳐라”(토마스 첼라노의 제2생애기 10; 세 동료의 전기 13)라는 사명을 받았던 사건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이 기도문은 라틴어로도 번역되었으나 본래 중세 이탈리아 방언(움브리아 지방언어)으로 작성되었다. 따라서 이 기도문은 ‘태양의 찬가’, ‘성 다미아노의 가난한 여인들에게 준 권고적 찬가’와 더불어 성인이 생존할 당시 일반인들이 쓰던 이탈리아 방언으로 작성된 기도문 가운데 하나이다.
이 기도문을 전해 주는 필사본 모두가 시기적으로 상당히 후대의 것이어서, 진짜 성 프란치스코의 작품인지에 대해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없지 않았다. 스타니슬라오 다 캄파뇰라(Stanislao da Campagnola)가 이 기도문의 친저성에 대해 주저하는 반면, 파올라치(C. Paolazzi)는 이 기도문이 성 프란치스코의 사상을 담고 있다고 본다.
‘성 프란치스코의 글’ 비판본 편집자인 에세르(K. Esser)는 이 기도문이 프란치스코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보고 그의 참된 작품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 기도문을 담고 있는 수많은 필사본 가운데, 1406-1409년경 이탈리아 베네토 지방의 프란치스칸들이 만든 필사본에 이탈리아 방언으로 쓰인 ‘성 다미아노 십자가 앞에서 드린 기도’를 문헌학적으로 가장 신뢰하고 있다. 그러나 ‘성 프란치스코의 글’에는 라틴어로 된 기도문을 수록하여 비판본 작업을 사실상 포기했다.

성 다미아노 십자가 : 사도 요한의 전통에 따라 그려진 그리스도의 수난
길이 2.1미터, 폭 1.3미터로 현재 아시시의 성녀 글라라 대성당에 있는 성 다미아노 십자가는 진정한 의미에서 동방 이콘이다. 이 십자가는 성화 논쟁 기간에 이탈리아에 도착했고 스폴레토 계곡에 있는 몬테 루코(Monte Luco)에 수도원을 건립했던 시리아 수도승의 영향을 보여주고 있으며 사도 요한의 전통에 따라 그리스도의 수난을 묘사하고 있다.
이콘에서 나타나는 요한계 전통의 대표적인 특징은 마리아와 요한을 십자가의 오른편에 함께 배치하는 데 있다. 또 다른 특징은 십자가 위에 적혀 있는 ‘IHS’, 즉 'nazare rex iudaeor'(유다인의 왕 나자렛 예수, 요한 19, 19)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오른쪽 옆구리가 열려있는 것도 본래 시리아의 요한계 전통에서 나온 특징이다. 실제로 12세기경 이탈리아에서 제작된 십자가들은 그리스도의 수난 상처를 묘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성 다미아노 십자가는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하고 시리아의 요한계 전통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기도문 묵상
이 기도는 프란치스코가 회개시기에 하느님께 마음의 빛과 더불어 주님의 뜻을 실행할 수 있도록 믿음, 희망, 사랑 그리고 지각과 인식을 구하는 청원 기도이다.

“지극히 높으시고 영광스러운 하느님이시여, 제 마음의 어둠을 밝혀 주소서.”

프란치스코는 성 다미아노 성당의 십자가에 못 박힌 분의 위엄 가득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으로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에게 하느님은 십자가의 고통을 겪는 중에도 지극히 높으신 분이었다. 사실 그의 다른 글에도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이라는 인식이 자주 나타난다(성무일도 전에 바치는 찬미경 11; 인준 받지 않은 회칙 23, 1;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 2; 태양의 노래 1). 프란치스코는 사랑이신 하느님의 손길을 늘 체험하였지만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놓여 있는 헤아릴 수 없는 거리와 인간의 보잘 것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프란치스코는 또한 하느님을 높은 곳에서 밝은 빛과 아름다운 광채를 발하시는 “영광스러운” 분으로 고백했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하느님의 빛 앞에서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마음이 온통 어둠과 의혹으로 가득 차 있음을 인식했다. 흔히 마음이란 인간 정신의 근원이고 양심이 자리한 곳이며 모든 선한 것과 악한 것의 뿌리이자 인간 의지의 중심이다. 이 기도에서 프란치스코가 말하고 있는 ‘마음의 어둠’이란 빛 자체이신 하느님 앞에 서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밖에 없는 존재론적인 어둠이다. 뿐만 아니라 이 기도가 작성될 당시 프란치스코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느끼면서도 가야 할 길을 찾지 못해 동요한 내면의 혼란과 어둠도 의미한다. 결국 “내 마음의 어둠을 밝혀 주소서”라는 청원은, 빛은 오직 하느님으로부터 올 수 있으며 하느님의 빛이 인간을 비출 때 우리 삶이 변모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프란치스코의 생각을 잘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