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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성화, 미술

' 십자가의 성 요한의 그리스도 / 살바도르 달리 '


제 목 :십자가 성 요한의 그리스도( Christ of Saint John of the Cross: 1950) 작 가 :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1904- 1989) 규 격 : 유화 204.8cm X 115.9cm 소 재 지 : 영국 글라스고(Glasgow) 미술관

작가는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 출신이나 종교와는 거리가 먼 환경에서 성장했다. 교회가 다수가 되어 국교(國敎)의 분위기가 된 곳에서 생길 수 있는 여러 문제점들이 그림자로 드리우게 된다. 전통과 교리를 앞세운 개인의 자유제한과 사랑과 자비의 외침과는 거리가 먼 위선적인 면들이 종교의 영향 아래 있는 곳일수록 더 극명히 드러나게 마련이다.

교회가 보이는 그림자에 실망해서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더 극렬한 사람들은 종교를 인간 성숙의 방해물로 여겨 아예 없애야 한다는 견해를 지닌 반교회 주의자들이 생기게 되는데, 작가의 아버지 역시 무신론자로서 교회의 정치적 영향력이나 권위적인 태도에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이었다.

이러한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작가는 일찍부터 교회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키우게 되었고 당시 지성인들을 매료시켰던 독일 철학자인 칸트(E. Kant: 1724-1804)와 니체(F. Nietzsche: 1844- 1900) 프랑스 계몽주의자로서 해박하고 날카로운 역사의식으로 신랄하게 교회를 비판한 볼테르(Voltaire: 1694-1778)의 작품에 심취하면서 교회의 가르침과 거리가 먼 극단의 자유주의적인 경향에 빠지게 되었다.

이 자유로움은 미술을 공부하면서, 지난 회 연재된 <세 명의 증인들이 보는 앞에서 아기 예수님을 채벌하시는 성모>의 작가 막스 에른스트(Max Ernst)와 함께 그동안 인간의 사고를 지배하던 이성의 영역에서 벗어나 프로이드의 무의식과 꿈의 분석에서 야기된 무의식과 공포, 두려움, 강박관념의 표현을 중시하는 초현실주의(Surrealism)에 심취하게 된다.

그는 잠재의식의 심상(心像) 탐구로 현대미술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 잠재의식이 갖고 있는 성적 의미의 탐구를 위해 프로이드(S. Freud: 1856- 1939)의 무의식 이론을 수용하고, 인간 이성을 지배하는 잠재의식의 더 위대한 실체 확립에 노력했으며, 의도적으로 환각상태를 유발하면서까지 무의식 세계의 체험을 위해 노력한 결과, 그의 작품 양식은 놀랄만큼 발전해서 초현실주의자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으며, 그의 대표작으로는 유명한 <기억의 집념: The Persistence of Memory:1931년)이 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이성적 논리에 바탕을 두고 전통 안에 영글어진 것을 진리로 강조하는 종교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자유로운 표현들을 통해 나름대로의 진실을 표현하고자 했기에, 전통적인 종교인들과 교회에 불편한 심기를 남기기도 했다.

작가는 초현실주의자로서 일생 동안 기괴함을 추구하면서 과대 망상적인 과시욕을 보여 주었는데, 이 모든 것이 바로창조력의 원천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예술가는 편집증의 일종인 망상을 개발해야 하며, 동시에 이성과 의지의 조절이 의도적으로 중지되었음을 의식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으며 이 작품은 바로 이런 작가의 성향을 극명히 표현하고 있다.

작가의 이런 태도는 종교와는 거리가 먼 그런 처지의 삶에서 종교적 상상력을 발휘한다는 것이 가능함을 입증하는 예가 되었다. 이 작품은 20세기의 종교화로서 가장 많이 알려진 유명한 것으로 가장 많이 복사되었으며, 그 평가에 있어서도 극단의 찬반의 회오리에 휘말린 것이다.

이 작품이 처음 전시되었을 때 2개월 동안 시장판의 상인에서부터 학생들에 이르기 까지 약 오 만명의 관객이 몰렸다는 것만으로도 당시 이 작품이 사회에 주었던 충격과 파문을 이해할 수 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라는 주제는 교회 역사상 여러 다양한 형식으로 표현된 성 미술의 주제였으나 이 작품은 관객들에게 대단한 충격이 되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은 세상을 바라보며 우리 위에 달려 계신다. 먼저 그는 골고타라는 전통적인 십자가의 장소를 자기 삶의 많은 시간을 보낸 스페인의 포르트 리카드(Port Lligat) 바닷가로 설정했는데, 여기는 그가 열 살이나 연상의 연인과 지내던 곳, 자기 삶의 현장이었으며, 전통적인 골고타가 지닌 신성과는 거리가 먼 곳인데, 초현실주의가 의도하는 비현실의 세계에 대한 그리움을 엉뚱하기 짝이 없는 이런 착상으로 표현하면서 십자가 사건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하게 되었다.

주님은 작가가 생활하던 바닷가 삶의 현장에서 십자가에 달려 우리 가까이 계시는 내재적 존재로서의 친근성을 보이시면서도, 한편으로 구름 형상 속에 또 고개를 숙인 모습이 우리와 떨어진 삶의 공간에 계시는 분으로 묘사되면서, 하느님의 두 속성, 우리 가까이 계시는 내재성과, 우리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 차원에 계신 초월성을 표상하고 있다.

오른쪽 어깨에서 아래를 향해 떨어지고 있는 빛은 십자가에 달린 주님을 비추고 그 끝이 십자가 아래에 까지 떨어지게 함으로서 하느님의 권능이 지상에 까지 내리고 있음을 상징하고 있다.



제 목 : 십자가위의 그리스도 작 가 : 십자가의 성요한 (1572- 1577) 크 기 : 57X 44mm 소 재 지 :스페인 아빌라, 가르멜 수도원

이 작품의 제목은 <십자가 성 요한의 그리스도>인데, 신앙심이 없던 작가가 16세기 교회 학자로서 가르멜 수도회의 개혁자였던 이 성인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 인간 이성과 논리라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으로서는 설명되지 않는 작가의 자유분방한 사고의 결실이었다.

작가는 우연히 스페인 아빌라의 갈멜 수도원에 소장되어 있는 십자가의 성 요한(1542- 1592)의 작품으로 여겨지는 조그만 그림을 보는 순간, 그는 비현실적인 차원에서의 감동을 받으면서, 이것을 자기 나름대로 재생하고픈 유혹을 받게 되어 이 충동이 심화되면서 그는 이 작품을 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작가는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이라는 주제를 십자가의 성 요한과 전혀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고 있다. 성인 당시 스페인 가르멜은 어디서 부터 손을 써야 할지 모를 만큼 부패해 있었다. 고단위 단백질이 썩을 때 그 악취가 더 심하듯, 가장 맑고 순수한 복음이란 이상을 살아야 하는 수도자들이 부패할 때 그 악취는 세상의 어떤 집단과 비길 수 없을 만큼 고약하기 마련인데, 성인은 이런 공동체를 개혁하려다 동료들에게 미움을 사게 되고 그들로부터, 말할 수 없는 박해와 고문까지 당했으며 이때 생긴 욕창의 상처로 고생하시다가 세상을 떠났다.

부패와 안일에 찌든 자기 수도회를 개혁하려다 동료들의 박해를 받아 수도원 감옥으로 끌려가 고문을 당해야 했던 성인의 삶이 바로 주님의 십자가 체험으로 승화 되면서, 성인은 이 소품 뿐 아니라 여러 영적 저술을 남기게 되었는데, 작가는 이 성인의 작품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서 성인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이 세상의 어떤 어려움이나 고통으로도 지워질 수 없는 엄위로운 하느님의 권능과 초월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종교와 거리가 먼 그에게 이 작품이 감동과 충격을 주었다는 자체가 이상하나, 작가는 초현실주의가 추구하는 환상적인 신비의 세계에 몰입함으로서 전혀 새로운 차원에서 십자가 사건의 의미성을 재현하게 되었다. 그는 십자가 성 요한의 작품을 본 후 “네가 이 작품을 재현해야 한다.”는 강한 내적인 소리를 들었기에 이 작품에 손대게 되었다는 고백을 했다.



작가는 다른 사람이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과대망상적인 환상으로 자기만의 독특한 작품세계에 몰두하다가 1950년부터 세계적인 경향이 되고 있는 종교에 대한 관심을 자기 작품 세계에 투사하게 된다.

1945년 끝난 2차 세계대전은 인류 전체에게 끔찍한 충격을 주었다. 평화와 행복을 갈망하는 인류들이 서로의 힘을 좋은 곳에 투사하는 것이 아니라 파괴로 끝날 전쟁에 투자함으로서 엄청난 살상과 파괴가 이루어진 것을 본 인류는 행복과 평화로운 사회건설의 수단으로서 종교와 예술과 문화의 가치에 눈뜨게 되면서 이 분야에서 나름대로의 종교적인 접근을 하게 되었다.

작가도 이런 영향에 힘입어 1950년 경부터 종교적 주제에 접근해서 이 작품과 함께 <포르트 리가트의 성모: 1950>, <십자가 책형: 1954>, <최후의 만찬: 1955>등을 제작함으로서 다른 화가들과 전혀 다른 신앙이 없는 상태에서 종교화에 접근하게 된다.

이 작품에서 주님은 공중에 달려 얼굴을 땅으로 떨어트리고 계시기에, 그의 얼굴을 관객들이 볼 수 없게 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작가의 천재성이 드러나게 된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주님의 신성(神性)을 표현하는데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바로 그분의 얼굴이다.

얼굴은 어떻게 표현하던 바로 인성(人性)의 상징이기에 신성 표현에 방해가 되게 마련이기에 작가는 의도적으로 주님의 얼굴이 관객들에게 드러나지 않게 함으로서 비록 비참하게 십자가에 달리셨지만 권능을 지닌 하느님으로 드러내고자 했으며, 르네상스 미술에서 표현하고 있던 고전적인 이상미를 완벽히 표현함으로서 초월자로서 구세주의 모습이 강하게 부각되도록 했다.

작가는 르네상스의 대가이며 <다윗>상으로 육체의 이상미를 완벽히 표현했던 미켈란젤로처럼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육체의 모든 부분의 완벽한 묘사로 그분 신성의 능력을 드러내고자 했으며, 어깨, 팔의 근육, 등 부분 근육의 강인한 묘사를 통해 하느님으로서의 위엄과 권능을 표현하고자 했으며 이것을 더 실감 있게 묘사하기 위해 당시 헐리웃의 곡예 영화 대역 배우로 인기 있던 루스 손더(Russ Saunders)를 모델로 했다.

대부분의 십자가를 주제로 한 작품은 이 천년전 주님의 십자가 사건을 재현하는 것이지만 이 작품에서의 주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사차원의 세계에 서 계신다. 작가의 여러 작품 중 이것은 가장 종교적인 신비의 영역을 표현한 것이며 십자가에 달려 계시면서도 대단히 힘 있는 존재로서의 위엄을 지니고 있는 주님의 모습을 통해 십자가 사건은 1945년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위력과 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있는 사건임을 강조하고자 했다.

작가는 초현실주의가 지닌 상상력을 고전주의 양식과 잘 결합시킴으로서 생경스러운 거부감으로 다가올 수 있는 그의 작품이 다른 작가가 주지 못하는 감동을 느끼게 만들었다. 작가는 종교에 대한 강한 거부와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으나, 그가 모든 기성관념이나 종교적 신조에서 자유로운 초현실주의자로서 작품 활동에 몰두하면서 자연스럽게 하느님께로 접근하게 되었으며, 이것은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과 같았다.

“인간의 모든 갈망은 결국 하느님을 향한 갈망”이라고 하신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고백처럼 그 역시 하느님을 향한 거부로 시작된 그의 작가로서의 여정이 결국 하느님을 찾게 만든단 역설적 모순을 현실화시켰다. 하느님을 삶의 정점으로 여기며 매일 그를 본받고자 하는 수도자들은 주일 아침마다 다음 기도를 바친다.

“하느님, 내 하느님 당신을 애틋히 찾나이다.

내 영혼이 당신을 목말라 하나이다.

물기 없이 마르고 메마른 땅 이 몸은 당신이 그립나이다.”(시편 62편)

작가는 모든 것에서 자유로운 상태에서 만이 진실의 표현이 가능하다고 여겼기에 진실의 절대적인 원천인 하느님도 거부하는 몸짓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나, 아름다움 추구에 대한 그의 끝없는 집념과 광기는 결국 하느님의 엄위 앞에 무릎 꿇게 만들었고, 인간적으로 철저한 실패의 상징인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도 하느님의 능력을 찬양하게 만든다.

아래 가운데에 있는 배는 17세기 프랑스 화가였던 루이 르 나인(Louis le Nain)의 작품에서 따왔으며 조그맣게 있는 어부는 그 지역에 있던 어부를 모델로 했기에 하느님의 권능은 골고타에서만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부들이 고기를 잡으며 살아가는 평범한 삶의 현장에서 나타남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자기 나름대로 교회가 가르치는 신앙을 꼬집고 부정하면서도, 종교가 지닌 맑고 순수한 힘의 위력을 제시하고 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과 같이 <궁극적 아름다움의 추구는 결국 하느님께 이르게 된다.>는 진리를 그는 종교를 거부하는 역설적인 몸짓으로 표현했고, 이 작품이 줄 수 있는 종교적 감동과 설득력은 깊은 신앙체험으로 영근 어느 작가의 작품 못지않게 강렬하다.

< 작은 예수회 이 요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