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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넘치는 친구방

가을이 오는 날

  
 
   

가을이 오는날

          시/김현승

           

           

          구월에 처음 만난 네게서는
          나프탈린 냄새가 풍긴다.
          비록 묵은 네 양복이긴 하지만
          철을 아는 너의 넥타인 이달의 하늘처럼
          고웁다.


          그리하여 구월은 가을의 첫입술을
          서늘한 이마에 받는 달.
          그리고 생각하는 혼(魂)이 처음으로
          네 육체 안에 들었을 때와 같이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너의 눈은 지금 맑게 빛난다.


          이달엔
          먼 수평선이
          높은 하늘로 서서히 바꾸이고,
          뜨거운 햇빛과
          꽃들의 피와 살은
          단단한 열매 속에 고요히 스며들 것이다.


          구월에 사 드는 책은 다 읽지 않는다.
          앞으로 밤이 더욱 깊어질 터이기에
          앞으론 아득한 별들에서
          가장 가까운 등불로
          우리의 눈은 차츰 옮아 올 것이다.


          들려오는 먼 곳의 종소리들도
          이제는 더 질문하지 않는다.
          이제는 고개 숙여 대답할 때다.
          네 무거운 영혼을 생명의 알맹이로 때려
          얼얼한 슬픔을 더 깊이 울리게 할 것이다.


          그리고 구월이 지나 우리의 마음들
          갈가마귀처럼 공중에 떠도는 시월이 오면,
          이윽고 여름의 거친 고슴도치는
          산과 들에 누워
          제 털을 호올로 뽑고 있을 것이다